영화인들이 대마초 합법화 운동에 나서고 있다. 대마를 처벌하는 법규정에 위헌소송을 낸 배우 김부선(사진)을 비롯해 배우 지진희와 김동원, 장선우, 이현승, 김기덕, 송해성 감독 등은 지난 9일 있었던 ‘대마 합법화 및 문화적 권리 확대를 위한 예술인 모임’에 동참했다. 비슷한 시기에 문인들은 국가보안법 폐지 성명을 발표하고, 영화인들은 대마초 합법화를 주장한 것도 이채롭다. 대마 합법화가 일반 대중들에게 생소한 이야기이기 쉬움을 감안하면 영화인들의 주장이 더 위험 부담이 클지 모른다. 그래서 영화담당 기자를 하는 게 왠지 뿌듯(?)하기도 하지만, 본론인 즉 이와 관련해 떠오른 영화 한 편이 있다. 2001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본 <대마초>(원제 ‘grass’)라는 다큐멘터리이다.
배우 우디 해럴슨이 음성해설을 맡고, 론 맨이 연출한 1999년 캐나다 영화 <대마초>는 대마의 유해성 여부 논란뿐 아니라 대마를 둘러싼 미국 사회의 정치 역학을 제대로 보여준다. 루스벨트·카터·레이건 대통령, 대마 처벌을 주도한 미국 연방마약단속국장 해리 앤슬링어, 대표적인 약물 옹호론자인 앨런 긴즈버그와 티머시 리어리 같은 학자들, 존 레논과 오노 요코 등 실제 인물의 자료 영상에 재치 있는 해설을 곁들이며 미국의 대마 단속 100년 역사를 훑는다.
20세기 초 멕시코인들이 미국 남서부에 철도노동자로 이주해 왔고, 이들은 하루의 노동이 끝나면 피로를 대마초로 풀었다. 이 생경한 풍습이 미국인들에겐 거슬렸다. 대마초를 피운 한 멕시코인이 백인을 공격하려 한 사건이 벌어지자 1914년 엘파소에서 조례로 대마 소지를 금지시킨다. 그리고 1937년 루스벨트 대통령은 납세필 인지가 없는 마리화나 소지를 금하는 마리화나 특세법에 서명한다. 그러자 라가르디아 뉴욕 시장은 그해부터 6년 동안 전문가들을 동원해 사회학적, 의학적으로 대마의 유해여부를 검증하는 대대적인 실험을 했다. 그 결과는 대마가 폭력을 유발하지 않고, 자제 불가능한 성적 충동을 유발하지도 않으며, 기본적 인성 구조를 변화시키지도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대마는 공산주의와 한 통속으로 묶이기 시작했다. 매카시 선풍이 불던 당시 해리 앤슬링어는 “모든 마약상의 배후에는 공산주의 세력이 있다”면서 “중국이 공산화되고 나서 마약유통이 급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70년대 들어 미국의 몇몇 주는 대마 처벌 완화를 추진했고 오레곤주는 투표로 대마를 허용했다. 이어 카터 대통령이 대마처벌법 개정 의지를 밝히지만 자신의 특별 고문이 코카인 복용혐의로 체포되면서 개정은 물 건너갔다. 후임 레이건 대통령은 대마가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마약’이라고 웅변한다. 그 기조가 이어져 클린턴 대통령 취임 뒤 300만명 이상이 체포됐다는 소식을 전하며 영화는 끝난다. 논쟁이 제대로 되려면 우선 알아야 한다. 이 영화가 빨리 한국에 수입, 개봉돼 대마 논쟁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