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을 맞아 가벼운 ‘틴 무비’들이 스크린을 장악한 최근 2~3주 동안 스크린 밖의 충무로는 여느 때보다 무거운 이야기로 분주했다. (‘틴 무비’ 식으로 말하면) 충무로의 ‘짱’들끼리 한판 붙었기 때문이다. 투자·배급에서 충무로의 두 짱은 씨네마서비스(이하 CS)와 씨제이엔터테인먼트(이하 CJ)이다. 두 영화사의 지난해 배급물량을 합치면 전체 영화의 70%에 이른다. 자본력은 대기업 계열사인 CJ가 앞서지만, 다른 대기업인 동양과 롯데 그룹의 영화계 진출을 견제하려는 CJ는 이따금씩 CS에게 자금을 지원했다. 그래서 다른 업계에서는 보기 드물게 1·2위 회사간의 평화친선 관계가 이어져오다가 최근 신생 멀티플렉스 극장인 프리머스의 소유권을 놓고 두 회사가 결국 붙고 말았다.
워낙 덩치 큰 공룡의 싸움이다보니 군소 제작자들의 촉각이 곤두설 수밖에 없다. 먼저 충무로 토종인 강우석 감독이 이끄는 CS쪽이 제작가협회에 에스오에스를 쳤다. CGV 극장체인을 갖고 있는 CJ가 프리머스마저 거머쥐면 사실상 독점 상태가 형성돼 제작 상황이 더 나빠질게 뻔하니 CS에 지원사격을 해달라는 거였다. 여기엔 삼성, 현대 등 대기업이 잇달아 영화계에 뛰어들었다가 빠져나간 지난 8년 동안 강 감독이 ‘충무로 파워 1위’를 유지하며 충무로를 지켜왔다는 ‘영화인’으로서의 자부심도 작용했을 터이다. 그러나 반응은 CS쪽의 기대와 달리 냉정했다.
제작자들의 입장은 ‘CJ 독점 방지론’과 ‘CS 지원 불가론’ 사이에서 다양한 스펙트럼을 드러냈다. ‘CS 지원 불가론’은 “당장은 극장이 없는 CS가 프리머스를 가지는 게 힘의 균형상 좋지만 3년 뒤 CS가 프리머스를 되팔 거라는 얘기가 오가는 상황에서 제 3자가 끼어들 만큼 둘 사이의 차별성을 인정하기 힘들다”는 논리였다. 제작가협회 차원에서 통일된 입장이 나오지 않았고, 그 와중에 한 영화인 상가에서 마주친 차승재 사이더스 대표와 강우석 감독이 ‘CS 지원 불가론’을 놓고 언쟁을 벌이는 일도 생겼다. 프리머스가 CJ로 넘어갈 가능성이 커지자 한쪽에선 “제작·배급과 극장업의 겸업을 금지한 40년대 미국의 반독점법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제작자들의 ‘CJ 줄서기’가 시작됐다는 말도 나돌았다.
독점 논란에 부닥친 CJ와 충무로의 지원을 얻는 데 실패한 CS는 재협상에 나서, CS가 프리머스 극장의 지분을 일부 양보하고 3년간 소유권을 가진 뒤 CJ에 되판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계약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결국 해프닝처럼 됐지만 이번 사건은 앞으로 이어질 영화계 강자들의 합종연횡의 전초전을 보여준 셈이다. 이 사태로 절대 강자 강우석 감독의 위치가 흔들렸고, 동양과 롯데 그룹은 예정대로 세력확장을 꾀할 것이다. 바야흐로 강호에 새로운 세력 재편의 바람이 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