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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파공작에 참여한 신대철 시인 <실미도> 혹평
2004-02-03

영화 <실미도>는 현실감 떨어진 액션물

"영화 <실미도>는 북파 공작원들의 실상을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다뤄 현실감이 떨어집니다. 한마디로 블록버스터형 액션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중진시인 신대철(59.국민대 교수)씨는 극장가의 흥행신화를 새로 쓰고 있는 영화 <실미도>에 대해 혹평을 서슴지 않았다.

1960년대말 최전방 부대에서 장교로 복무하면서 북파공작에 참여했던 그는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으면서도 등장인물이 살인병기로만 다뤄져 실제인물같은 느낌을 주지 않는다"면서 "공작원들이 자폭하기 전에 혈서로 이름을 쓰면서 자기 존재를 드러내는 부분은 사건의 진상을 흐리게 하고 감상으로 몰아간다. 뒷부분으로 갈수록 긴장감도 떨어져 신파조로 흐른다. 너무 과장되고 흥분한 이 영화는 당시 사건을 마치 단순한 폭도들의 감상적인 자살극처럼 묘사하고 있다"고 평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 영화가 흥행에 성공함으로써 잊혀졌던 국가폭력과 분단상황 아래서의 비극적 사건에 사회적 관심을 갖게 했고, 그늘속에 살았던 북파공작원들이 일상으로 돌아와 정상적으로 살 수 있도록 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신씨는 북파공작의 체험을 담은 시 '실미도'를 계간 문예지 「창작과 비평」2001년 가을호에 발표한 바 있다. 이달 중순 발간되는 같은 잡지에 영화 <실미도>에 대한 감상을 적은 '실미도에 대한 명상'을 기고하기도 했다.

다음은 신씨와의 일문일답.

북파공작원과는 어떤 인연이 있나?

▲1968년 1.21사태 후 한달만에 군에 입대했다. 최전방에서 장교로 복무하면서 북파공작원들에게 길을 터주고 다시 데려오는 임무를 맡았었다. 낮에는 아름다운 노래를 틀어 남쪽으로 넘어오라고 대북방송을 한 뒤 밤에는 공작원들을 북파시키는 등정반대의 일을 했다. 동족을 향해 벌인 이런 일에 인간적으로 커다란 갈등을 느꼈고 급기야 자아분열상태에 이르렀다.

군제대후 당시 기억으로 고통을 겪다가 이를 극복하려고 무인도를 찾아다니다가 첫시집 「무인도를 위하여」를 발표했다. 그러나 마음속에 있는 것을 드러내지 못해 글쓰기를 유보했다. 이로 인해 23년간 시집을 발표하지 못했다.

상처가 얼마나 컸길래 오랫동안 글을 쓰지 못했나? 2년전 내놓은 두번째 시집「개마고원에서 온 친구에게」로 제4회 백석문학상을 받았는데..

▲글을 쓰지 못하고 수년간 알래스카의 얼음사막과 몽골의 고비사막 등을 돌아다녔다. 북극에서 우연히 북한 사람을 만났는데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당시 상처를 얼마간 치유했다. 두번째 시집은 바로 그 북한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당시 북파공작 체험을 담은 작품은 어떤 것이 있나?

▲1972년 이문구 선생이 편집장을 하던 「한국문학」에 비무장지대 체험을 담은 장시 '우리들의 땅'을 발표한 적이 있다. 그러나 겸열이 심하던 때라 앞부분은 지워졌다. 비무장지대는 막연하게 노루가 뛰노는 곳으로 인식되던 때에 그곳의 구체적 현실을 담은 시를 발표한 것은 국내 문단에서 처음이었을 것이다.

당시 보급차량으로 대북방송대본을 전달받았는데 사고가 나면 직접 원고를 써서 방송을 하기도 했다. 그런 내용은 두번째 시집에 일부 들어 있다.

그동안 시를 전혀 안썼던 것은 아니다. 발표를 못했을 뿐이다. 군사분계선을 오간 얘기라든지, 실미도와 관련된 것을 포함해 세 권 분량의 원고가 있다. 1980년대 들어 초고를 다듬어 발표를 해보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자아분열에서 벗어나지 못해 아침에는 의욕이 생겼다가 밤이 되면 자포자기 심정이 되는 세월이 오랫동안 반복됐다. 올해와 내년 안에 그동안 내지 못한 시집을 발표할 계획이다.

영화 「실미도」를 본 소감은 어땠나?

▲계간 「창작과 비평」이 영화평을 써달라고 해서 15년만에 본 영화였다. 영화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너무 과장되고 흥분해 작품성이 떨어진 느낌을 받았다. 북파공작원들은 실제로 매우 냉철하다. 북파 현장에서 만난 그들은 차갑고 눈이 매서웠다. 그러면서 초조하고 불안한 기색을 내비쳤다. 그들은 생을 바꿔보려고 공작원이 된 것이다. 임무가 끝나면 보통의 가정으로 돌아가 소박하게 살고 싶어하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영화 촬영장도 가봤는데 빈터로 있을 때가 더 좋았다. 우물터 등이 남아있는 스산하고 황량한 풍경이 오히려 당시 느낌을 더 많이 간직하고 있었다. 영화 세트장의 망루 위치 등도 자연스럽지가 않았다.

시창작활동은 어떤가?

▲10여년 전부터 '빗방울 화석'이라는 모임을 구성해 현장을 방문해 그 체험을 시로 쓰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동안 「산늪」 「빙폭」 등 세 권의 공동시집을 냈다.

해발 1천m 정도 산에 오르면 늪이 더러 있다. 그곳은 수억년전의 생태계가 그대로 보존돼 있다. 잠자리나 물방개 등이 진화가 되지 않아 바늘이나 눈곱 정도의 작은 크기이다. 그것들이 산아래로 내려오면 덩치가 커진다. 현장에서 얻은 이런 경험을 쓴 시들은 일종의 실험시들이다. 관념이나 아이디어로 쓴 시들과는 다르다.(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