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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상영관은 열렸다, 시네마테크는 없다
김소미 2026-03-20

서울영화센터 개관 100일 이후. 보이콧 선언한 영화인연대와 공론장 마련할까

개관 100일까지, 서울영화센터는 수차례 보이콧에 직면 중이다. 지난 3월5일 열린 경제실 업무보고를 통해 영화산업 위기극복 영화인연대(이하 영화인연대)는 보이콧 성명서를 발표했고 박유진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의원은 주무처인 경제실장에게 “지금이 영화인들과 만나 민관 협력안을 다시 설계할 마지막 기회”임을 강조했다. 서울시가 상영관 운영 용역 입찰 공고를 낸 2025년 8월부터 43개 단체와 박찬욱, 변영주, 봉준호, 오승욱, 이경미 감독 등이 ‘서울시네마테크 원안 복귀와 입찰 공고 철회’ 서명운동에 동참했고, 이후 한국독립영화협회를 비롯한 영화·시민단체 10곳이 협력 거부 선언을 이어갔지만 서울시가 여전히 약속한 조치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는 취지다.

영화인연대는 시네마테크 원안 복구가 최우선임을 거듭 역설하고 있다. 2023년 서울시가 사전 협의 없이 사업명을 서울영화센터로 변경한 이후 필름 아카이브, 시민 열람실, 연구·교육 공간 등 시네마테크의 핵심 기능이 약화되거나 삭제되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600억원의 세금이 투입되었음에도 공공 문화시설로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기능 부전 상태에 빠졌다”는 진단이다. 요구의 골자는 크게 네 가지로 ▲지난 15년간 논의된 서울시네마테크 핵심 기능의 복원 방안 제시 ▲현행 서울영화센터의 운영 구조 및 예산 집행 현황 공개 ▲중장기 계획의 공유 ▲시민이 참여하는 공개 토론 구조의 마련이다. 백재호 영화인연대 공동대표는 “2025년 11월 말 첫 보이콧 선언 이후 서울시 경제실과 비공개 간담회를 가졌고 공론장 마련을 약속받았으나 지금까지 진전 상황이 없었다. 과거에 협의한 시네마테크에 대한 완전한 복원이 어렵다면, 새로운 취지에 대해서라도 시민들과 함께 토론하고 협의해보자는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능 부전” VS “완벽하게 수행”

운영 대행을 맡은 김현우 서울경제진흥원(SBA) 대표이사는 3월5일 경제실 업무보고에서 “서울영화센터가 시네마테크의 세 가지 기능 중 두 가지는 완벽하게 수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상업영화가 아닌 독립영화를 상영”하고 있으며, “교육 프로그램은 성명서를 발표한 주요 세력인 시네마테크협의회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AI 교육 등의 경우 오히려 다른 기관이 더 잘한다”고 답했다. 시네마테크가 단순히 ‘비상업 영화를 상영하는 공간’으로 환원될 수 없음은 파리의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볼로냐의 치네테카 디 볼로냐 등 민간 영화문화운동에서 출발해 공공기관으로 제도화한 시네마테크의 사례가 잘 보여준다. 필름의 수집·보존·복원·연구를 지속하며 이를 통한 상영과 시민 교육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공공 문화시설로 뿌리 깊게 자리한 곳들이다. 경제 논리로 시네마테크의 정체성을 회피 중인 서울영화센터의 현재는 신규 상영관 운영에 그치게 됐다. 개관 이후 서울영화센터가 발표한 교육 프로그램은 ‘AI X CINEMA Conference 2026: 창작과 기술의 경계’가 유일하다. 서울경제진흥원 소속 기정구 서울영화센터 TF팀장은 “공동 용역을 맡은 동국대학교 산학협력단과 진행한 내부 교육 외 공식적인 대외 교육 프로그램은 AI 콘퍼런스 하나가 맞다”고 확인했다. 1월12일부터 13일까지 단 이틀간 접수를 받은 100석 규모의 1회차 콘퍼런스엔 신청자가 12명에 그쳤다. 서울영화센터 관계자 A씨는 “홍보가 부족했던 문제도 있었고, 첫 공식 교육 프로그램으로서 AI라는 주제가 시네마테크적 정체성과는 다소 엇갈려 소구성이 떨어진 것 같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한편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한국영화감독조합, 영화수입배급사협회 등 20개 유관 단체가 보이콧에 함께하고 있음에도, SBA 대표이사가 “주요 세력인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라고 지칭한 것을 두고 현재의 논란을 특정 단체의 이권 싸움으로 규정하는 시도라는 우려도 나온다.

무료 상영에 텅 빈 시간표, 대관이 능사일까

서울영화센터 홈페이지 메인 화면의 무료 상영 공지와 시간표.

상영관은 잘못이 없다. 문제는 개관 3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상영관 프로그래밍과 상영 편수 및 횟수에 관한 관객들의 아쉬움이다. 총 3개관으로 이루어진 서울영화센터의 하루는 현재 하루 총 1~2회 상영과 대관 행사가 전부다. 독립단편영화 시사회, 각종 작은 영화제가 서울영화센터 상영관을 통해 대관의 기회를 얻는 측면은 긍정적이지만 프로그래밍의 공백을 대관 확보로 채우는 것이 아니냐는 문제 제기도 뒤따른다. 실무자들의 입장은 어떨까. 우선 서울시가 공공기관이라는 이유로 무료 상영을 고수하는 이유가 거론된다. 서울영화센터 프로그래밍 담당자 역시 문제의식에 일부 동의했다. “무료 상영의 영향인지 노쇼가 많은 것은 사실”이라며 “소액이더라도 관람료를 지불하면 관객이 영화를 대하는 태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공공성과 개방성 측면에서 무료 상영의 이점을 고려하더라도, 영화인들의 중론은 최신 개봉작을 무료로 상영하는 것이 영화산업의 발전과 관객을 위한 양질의 향유 문화에 이바지하는 결정인지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쪽이다. 서울시는 “평균 예매율 90%”, “전석 매진 작품이 잇따른다”고 홍보하고 있는 상황. 실제 관람객 수와 현장 점유율에 대한 공개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이 또한 의문을 사고 있다. 서울영화센터 역시 기타 여러 독립예술 전용관들과 마찬가지로 예매 사이트 디트릭스를 활용하고 있어 개인정보를 제외한 데이터 공개가 가능한 실정이므로 향후 체계적인 공개가 필요해 보인다.

오태혁 서울영화센터 본부장에 따르면 용역 기관인 한국영화인협회, 동국대학교 산학협력단을 통해 실무에 관여하는 인원은 현재 단 4명이다. 이들은 서울시 경제실과 대행 기관인 서울경제진흥원, 용역 기관인 영화인협회의 저마다 엇갈리는 입장 속에서 공개적인 답변을 극도로 조심스러워했다. 기정구 서울영화센터 TF팀장은 “지속적인 보이콧 영향으로 작품 수급, 전시 IP 확보뿐 아니라 영화제 및 제작 지원 사업 등을 위한 후원 모집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아카이빙 시설에 관해서는 “방향성 문제도 있지만 현실적인 공간 부족 문제가 크다. 아카이브 마련을 위해서는 8층 공유오피스를 없애야만 하는데 쉽지가 않다. 서울시에서 예산과 인력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외부 공간을 새로 찾는 등 현실적인 대안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고 답했다.

주체도 방향도 모호한 행정

서울영화센터 AI 교육 프로그램 현황.

이 모든 혼란의 근저에는 주체도, 방향도 정권에 따라 요동치는 공공기관 행정의 구조적 문제가 있다. “비공개 간담회가 이어지는 동안 서울시는 주체를 서울영상진흥위원회 소관으로 넘기고, 서울영상진흥위원회는 서울시 조례를 명목 삼으며, 서울영화센터 운영위원회는 자문기구라 결정권이 없다고 한다.”(백재호) 이처럼 책임의 공회전 속에서 서울시는 영화인연대의 보이콧 선언에 팩트브리핑으로 답하며 “영화산업 교류, 교육·체험 프로그램 등 다양한 기능을 결합한 복합 플랫폼으로서 3월부터 본격 운영할 계획”이라고 알렸다. 그러나 복잡한 현안이 산적한 와중에 경제실의 서울영화센터 담당자들은 전원 교체된 상황이다. 용역 기간 역시 올해 12월까지로 2026년 8, 9월 중 공개 모집할 예정이다.

이쯤 되면 영화인들도 혼란스럽다. 영화인연대는 공식 보이콧 선언 외에 개별 영화인들의 판단에는 관여하지 않지만, 서울영화센터가 각종 행사와 상영 건으로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접촉을 이어가는 상황에서 서울시의 입장을 명확히 재확인해달라는 영화인들의 요청이 영화인연대를 통해 접수되고 있다. 600억원이 투입된 공공 문화공간의 100일이 합의도 공론도 없이 흘러가고 있다. 3월25일, 다시 비공개 간담회가 예정된 상황으로 이후 공론장 마련에 진척이 있을지,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시네마테크의 토대가 새롭게 재편될지 주목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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