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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선을 넘지 않는 호기심으로, <비형전: 도깨비의 주인> 박지윤 감독
이유채 사진 오계옥 2025-10-17

편집감독이던 박지윤 감독이 첫 연출을 하기까지를 거슬러 올라가면 ‘막걸리’가 나온다. 지역 특산물을 소재로 한 콘텐츠 공모전에 “주정뱅이 도깨비가 배우 지망생을 시간 여행을 하며 도와주는 이야기를 기획서로 제출”했으나 떨어지고 만다. 그래도 아이디어를 발전시켜보고 싶던 차, 친구들이 “BL 드라마의 가능성이 크다”며 도전을 권했다. 신라시대 도깨비 설화와 BL 장르를 결합한 드라마 <비형전: 도깨비의 주인>은 그렇게 탄생했다.

- 두 주인공을 남자로 바꾼 뒤 작업 과정이 궁금하다.

본격적으로 설화 자료 조사를 시작했는데 정말 재밌었다. 귀신이 된 신라 진지왕과 평민 도화녀 사이에서 태어난 반신반인 아들 비형, 그가 부리는 도깨비 길달, 불의 신인 지귀와 구미호까지. 모두 그리스로마신화 덕후의 가슴을 뛰게 할 만한 내용이었다. BL 서사에 특화된 작가님과 1년 반가량 작업한 끝에 10분짜리 10부작 대본이 나온 게 지난해 초였다. 최종적으로는 평균 25분 내외의 12부작이 됐다.

- 강한 자극보다 절제를 택해 아슬아슬한 매력이 살았다. 수위 조절에 어떤 고민이 있었나.

애초부터 내가 좋아하는 15세이상관람 한국 로맨틱코미디 정도를 원했다. 대놓고 다 보여주는 건 내 취향이 아니다. 맥락 없이 대뜸 침대로 가거나 팬 서비스 차원의 키스신을 남발하고 싶지 않았다. 인물들이 스킨십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탄탄히 구축해 시청자가 이야기 전체를 즐기길 바랐다.

- 두 커플 중 비형(황재욱)과 금복(이차민)이 귀엽다면 길달(강찬우)과 지귀(남택준)는 꽤 심오하다.

커플 이야기를 만들 때 기본적으로는 K드라마와 BL의 전통적인 문법을 섞고자 했다. 신인인 내게는 재미가 보장되고 안정적인 형식의 힘이 필요했다. 대부분의 BL에서 ‘공’은 체격은 좋아도 정신적으로 취약한 반면 ‘수’는 연약해 보이나 내면은 단단하다. 비형과 금복도 그 공식을 따랐는데 함께함으로써 비로소 완전해지는 관계로 그리고 싶었다. 길달과 지귀는 좀더 어른스러운 관계다. 처음엔 길달이 지귀에게 좋아하는 여자애를 대할 줄 모르는 초등학생 남자애처럼 굴지만 자신의 감정을 깨달으면서 로맨스도 한층 깊어진다.

- 예상외로 무섭고, 금복이 배우로 성장하는 과정을 비중 있게 다룬다는 점을 특색으로 꼽을 수 있다.

무서웠다니, 다행이다. (웃음) 도깨비를 다루는 만큼 제대로 오싹했으면 했다. 저예산이다 보니 CG를 적게 쓰면서도 호러적인 분위기를 낼 방법을 찾기 위해 회의를 자주 열었다. 또 모든 이야기는 성장이 포함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인물 모두에게 크고 작은 성장 포인트를 줬다. 정신적으로 풍요로워지거나 홀로 설 수 있는 등 결말에 이르러 모두 변화한다.

- 비형전 세계관을 방대히 구축했다고. 어떤 장기 프로젝트를 꿈꾸고 있나.

<비형전>멤버들의 신라 시절을 본격적으로 펼치고 싶다. 이번에 보여주지 못한 슬프고 매혹적인 전사가 쌓여 있다. 현재는 <처용전>을 준비 중이다. 이무기가 용이 되기 위해 인간 여의주를 찾아 나서는 정통 멜로로, 대본은 마무리 단계다. 이 세계관을 계속 확장해 언젠가 규모 있는 한국 전통 판타지물을 만드는 게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