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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스코프] 이 집에는 독특한 것이 산다, BL 드라마 <비형전: 도깨비의 주인>촬영 현장을 가다
이유채 사진 오계옥 2025-10-17

2025년 4월23일, 경기도 광주의 한적한 전원주택가. 유독 한집에서만 남다른 기운이 흘러나왔다. 10월3일 공개된 <비형전: 도깨비의 주인>(이하 <비형전>, 티빙·웨이브·헤븐리 등에서 시청 가능)의 주요 배경인 도깨비 왕 비형(황재욱)의 집이다. 신라시대부터 살아온 존재의 거처답게 공간은 우아했다. 청아한 도자기와 신식 가전제품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내부에는 미술팀의 세심한 고심이 배어 있었다. 집주인 비형은 자신의 취향으로 완성한 방공호에서 호위무사 길달(강찬우)의 수발을 받으며 안정된 나날을 보내는 듯하나 실은 고통 속에 있다. 정기를 오래 흡수하지 못해 날로 쇠약해지는 와중에 한집살이를 하게 된 배우 지망생 금복(이차민)이 에너지원이 되면서 다시 활기를 찾아간다. <씨네21>이 방문한 이날은 천년 전 길달을 짝사랑했던 구미호 지귀(남택준)의 신도 있어 오랜만에 <비형전>4인방이 완전체로 모인 날이었다. 주방과 거실, 2층의 은밀한 침실까지 곳곳을 오가며 종일 이어진 촬영의 이모저모를 카메라에 담았다.

금복을 떠올린 비형이 보고 싶은 마음을 괜히 둘러대며 중얼거린다. “보면 또 시끄럽겠네.” 대사를 들은 박지윤 감독이 따라 해보더니 디렉션을 건넨다. “약간 더 새침해도 좋겠는데?” 그러자 황재욱 배우가 목소리 톤과 속도를 살짝 높이며 비형의 마음을 한층 더 숨겨본다. 시선 처리도 좀더 새초롬하게 바꾸자 박지윤 감독과 이선영 촬영감독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현장 모니터로 본 배우들이 유독 매혹적이었는데 안지혜 프로듀서의 말에 따르면 이선영 촬영감독이 <비형전>의 비밀 병기라고. “은근하게 보여주는 촬영의 묘를 잘 알고 남자배우들도 아름답게 담아내는 감각이 있어 BL 드라마에 꼭 필요한 인재였다. 클로즈업한 배우들의 얼굴들을 볼 때마다 시청자들도 좋아할 거란 기대감에 기분이 좋다.”

드디어 상의 탈의의 순간이 왔다. 길달과 지귀의 침대 신을 위해 강찬우, 남택준 배우 모두 며칠간 운동에 매진했다고. 평소에도 몸 관리에 철저한 강찬우 배우는 “닭 가슴살과 한층 더 가까운 몇주를 보냈다”는 후일담을 전했다. 촬영이 시작되자 두 배우는 가볍게 탈의하고 망설임 없이 침대에 누웠다. 서로의 팔과 다리가 최적으로 맞물릴 각도를 찾는 과정이 여느 때보다 더 진지했다.

아디다스 블랙 운동복 차림의 강찬우 배우가 감정에 몰입 중이다. 안지혜 프로듀서가 길달 역에 강찬우 배우를 제안했을 때 박지윤 감독이 바로 오케이한 건 두 사람 모두 그에게서 길달의 분위기를 감지했기 때문이다. 현장에서도 강찬우는 ‘호위무사 길달’다운 모습을 보였다. 솔선수범하고 동료의 귀갓길을 챙기며 묵묵히 팀의 중심을 잡았다.

남택준 배우가 지귀 역에 캐스팅된 건 하나도 멋지지 않은 인스타그램 피드 덕분이었다. “신인배우라며 셀프 홍보를 위해서라도 제일 잘 나온 사진만 올릴 텐데 택준씨는 달랐다. 멋진 척하는 사진이 하나 없는 게 오히려 자신감처럼 다가왔다.”(박지윤) 현장에서 만난 남택준 배우는 도발적인 구미호 지귀와 달리 차분한 인상이었다. 작품을 준비하면서 그는 지귀의 화려함 속에 가려진 슬픔을 중요시했다. “무려 천년 동안 한 사람을 짝사랑한 캐릭터다. 긴 세월 동안 마음을 주기만 했다는 게 가슴 아팠고 그렇게 쌓인 슬픔의 응어리가 지귀의 핵심이라고 생각했다.”(남택준)

요리 고수 금복이 “팥에 환장”하는 비형을 위해 정성껏 끓인 단팥죽을 비형이 맛보는 장면이다. 이 신의 복병은 새알심이었다. 지나치게 쫀득한 새알심이 황재욱 배우의 치아에 달라붙어 대사를 뱉기가 어려워진 것. 아예 새알심을 빼고 가는 게 어떠냐는 긴급회의까지 거치면서 예상치 못하게 난도 높은 장면이 됐다. 결국 배우가 다시 천천히 씹기도, 빨리 넘겨보기도 하며 입속의 방해물을 처리하는 요령을 터득하는 사이 주방에선 소품팀이 남은 단팥죽을 데우는 데 여념이 없었다.

황재욱 배우가 비형 역할을 제안받은 건 지지난해 말이었다. 그는 본촬영이 계속 미뤄져도 묵묵히 기다렸다. “막막함과 조급함이 없지 않았으나 그만큼 작품에 대한 애정도 커졌다.”(황재욱) 박지윤 감독도 황재욱 배우를 놓을 수 없었다. 그를 처음 보자마자 속으로 “도깨비다!”라고 소리쳤을 만큼 마음에 들었다. “본능적으로 이 친구는 꼭 잡아야겠더라. 그래서 원래 비형 설정을 많이 바꿔 재욱 배우에게 맞췄다. 뱀파이어 같은 퇴폐미를 풍기던 인물에서 훨씬 건강하고 삶에 대한 의지도 넘치는 열혈남아가 됐다.” (박지윤)

금복은 캐스팅이 가장 오래 걸린 인물이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상경한 설정이었지만 실제로 너무 어린 배우를 쓰는 건 내키지 않았다. 황재욱 배우보다 지나치게 작은 친구는 설렘의 키 차이를 노린 것처럼 보일까 봐 피했다.”(박지윤) 까다로운 조건을 뚫고 이차민 배우를 선택한 건 그가 “순둥순둥함과 어른스러움”을 동시에 지녔기 때문이다. “게다가 속도 깊어서 배우 지망생인 금복의 성장기이기도 한 <비형전>을 잘 끌어줄 거란 믿음이 있었다.”(박지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