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19일 일요일 새벽 1시. 서울 영등포구청 근처 작은 횟집에 전구가 팍 커졌다. 심야 영업 대신 드라마 <대도시의 사랑법> 촬영을 위해서였다. 핫팩과 패딩을 장착한 스태프들과 허진호 감독, 얇은 겉옷 차림을 한 남윤수, 나현우 배우가 합심해 끝내야만 하는 촬영은 에피소드3, 4화에 해당하는 <우럭 한 점 우주의 맛> 8회차. 주인공 영(남윤수)과 그와 묘한 애정 기류를 형성하고 있는 영수(나현우)의 첫 키스신이다. 배우들은 시간이 갈수록 입이 얼고 취기가 돌고 졸음이 쏟아지는 것 같았지만 한번만 다시 가보자는 허진호 감독의 다감한 목소리에 맞춰 상황에 집중했고, 곧 현장엔 술잔을 부딪치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줄곧 엇나가던 두 사람의 마음이 하나로 포개지는 결정적인 순간이다. 키스신에 앞서 두 배우와 감독은 입을 맞추는 완벽한 각도를 찾기 위해 리허설을 거듭했다. 이날의 키스 이후 영과 영수의 관계는 무르익고, 영은 거칠고 드넓은 사랑의 세계로 한껏 나아간다.
현장에서 만들어나가는 걸 선호하는 허진호 감독은 중간중간 타임을 외치고 배우들 앞에 서곤 했다. 대사를 즉석에서 바꿔본 뒤 입에 잘 붙는지 남윤수 배우에게 대사를 해보라고 요청한 뒤 뒤이어 감상을 물었다. “나를 호기심 어린 얼굴로 기다려주는 감독님 덕분에 나도 신나서 이런저런 의견을 많이 냈다. 그만큼 많은 걸 배우는 현장이다.”(남윤수)
방금 찍은 장면을 확인하는 허진호 감독과 두 배우. 모니터를 보는 허진호 감독은 “괜찮다, 잘하네” 하며 만족스러운 듯 웃고 그 옆의 살짝 취한 나현우 배우가 미소를 지으며 맞장구를 친다. 그와 달리 남윤수 배우만 진지한 이유는? “내 연기를 보면 아직까진 부족한 면만 보인다. 아, 잘하고 싶다!”
우럭과 광어 한 접시, 빈 소주병과 함께 마주 앉은 영과 영수. 이들의 표정이 사뭇 진지한 건 직전에 ‘일’이 하나 있었기 때문이다. 영수가 영이 함께 즐겼으면 하고 제안한 장소, 음식, 놀이를 모두 거부하면서 둘은 지금 냉전 중이다. 취기가 좀 오른 설정이라 남윤수, 나현우 배우도 슬슬 혀 꼬인 연기를 선보인다. “이제 기분 좀 풀렸나요?”(영수) “기분 나빴던 적, 없는데요?”(영)
<대도시의 사랑법> 출연을 제안받았을 때 남윤수 배우는 “내 인생에 있어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 허진호 감독과 작업하면서는 “한국에서 멜로 연출을 가장 잘하는 감독님”의 작품에 자신의 어떤 얼굴과 감정이 담길지 진심으로 궁금해했다. 사전에 철두철미하게 계획하기보다는 현장이 주는 힘을 믿는 타입인 그는 눈앞의 나현우 배우가 주는 “외로움, 조심스러움, 사랑”을 그대로 흡수해 자신의 에너지를 발산하고자 했다.
키스하기 몇초 전. 직전에 영수는 영이 쓰고 있던 안경을 손수 벗긴 상태다. 둘 사이의 오해는 풀렸고 영수는 영에게 자기 마음을 이미 전했다.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영수) “저도 꽁치 좋아해요. 꽁치 맛있죠.”(영) “꽁치 말고 당신이라는 우주를요.”(영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