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의 내년도 서울독립영화제(이하 서독제) 지원사업이 사실상 폐지될 것으로 예측되자 서독제를 비롯한 영화계 곳곳에서 반대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서독제는 매년 영진위에서 ‘독립영화제 개최지원’이란 항목으로 예산을 지원받으며 영화제를 성장시켜왔다. 2023년엔 3억7천만원, 올해엔 3억가량의 지원금을 받았지만 내년엔 0원으로 전면 삭감될 예정인 것이다. 올해 영화계와의 사전 논의 없이 지역 영화 관련 예산을 폐지했던 일과 비슷한 사례로 읽힌다. 이에 서독제는 “독립영화에 대한 명백한 탄압”이라며 내년도 독립영화제 개최지원사업 예산 복원을 촉구하는 입장이다. 이에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는 “합리적인 결정”이란 의견을, 영진위는 “문체부와 논의해 결정된 사안에 대해선 같은 입장”임을 밝혔다. 단발의 사안을 넘어 서독제 지원사업 폐지의 경과와 근거를 살펴봄으로써 현재 영화계가 영진위의 결정에 반발할 수밖에 없는 사태의 본질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씨네21>은 내년도 영진위 정부 예산안의 내용, 오는 10월17일로 예정된 영진위 국정감사 등 서독제 예산 삭감에 관련된 최근 이슈를 정리해보았다.
서독제 "폐지에 대한 아무런 논의조차 없었다“
처음으로 서독제 예산 삭감에 대한 문제가 공론화된 것은 8월26일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회의 중 강유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를 통해서였다. 당시 강유정 의원은 유인촌 문체부 장관에게 “서독제 지원이 내년 예산안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소문이 있고, 독립이란 말이 들어갔기에 예산 지원을 못 받는단 말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질문했다. 유인촌 장관은 “그야말로 소문이며 충분히 다 의사소통이 됐고 내년에 힘을 합치자고 정리”했다고 답했다. 이어진 강유정 의원의 “그러면 서독제가 지원 예산 받는 데에 별 문제 없다고 이해해도 되는지”라는 질문에 유인촌 장관은 “딱 독립영화제 하나로만 말하긴 어렵고, 영화 예산 자체를 올해보다 훨씬 증액된 액수로 올려놨다”라고 에둘러 답변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서독제와 영화제 공동 주최 단체인 한국독립영화협회(이하 한독협)는 문체부와 영진위의 독단적인 소통 부재부터 꼬집었다. 서독제는 “영진위가 영화제뿐 아니라 공동주최 단체인 한독협과도 어떠한 사전 논의를 하지 않았음”을 지적하며 “지금도 예산 삭감에 대한 공식적인 통보를 받지 못해 기사로 관련 내용을 확인하는 터라 황당할 뿐”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한독협에 따르면 “내년도 영진위 예산안에 서독제 지원사업 예산이 빠져 있다는 흉흉한 소문부터 듣고 7월 중순 한독협이 영진위에 관련 질의 공문을 발송했지만, 영진위는 예산안이 확정되지 않았다며 곧 공식 면담을 계획하겠다고만 답변”했다는 후문이다. 백재호 한독협 이사장은 “이후 문체부 장관과 독립영화인들의 간담회, ‘영화인연대’가 주최한 여러 국회 토론회 등에서 영진위 주요 직원과 대화의 기회가 있었지만 명확한 답변이나 공식 면담 일정은 듣지 못했다”라고 밝혔다.
문체부는 “서독제만 따로 지원할 특별한 사유가 없다”라는 입장이다. 문체부 관계자 A씨는 “최근 영화제 지원 예산과 개수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영화발전기금(이하 영발기금)으로 특정 영화제를 개별적으로 지원하는 일은 더이상 어렵다”라고 밝혔다. 더하여 “서독제에 개별 지원되던 예산을 영화제 전체 지원사업에 합쳤기에 ‘전액 삭감’이란 표현은 적절하지 않으며, 다른 영화제와 동등하게 지원사업에 공모한다면 경쟁력에 따라 지원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문체부가 9월 작성한 <2025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 사업설명자료(Ⅱ-1) 4권>에 따르면 내년 국내외 영화제 지원사업의 예산은 33억원으로 책정됐다. 2023년엔 56억원이었고, 올해엔 28억원으로 전년 대비 절반이 삭감되며 논란이 일었다. 영진위 관계자 B씨는 “정부와 논의한 결과에 따라 주어진 예산 내에서 행사를 가장 잘 수행할 영화제를 적절히 선정하겠단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서독제 지원의 경과와 필요
서독제는 ‘독립영화제 개최지원사업’ 폐지의 근거가 부당함을 피력하고 있다. 김동현 서독제 집행위원장은 “서독제의 뿌리가 애초부터 영진위 사업이므로 타 영화제와 다르게 개별 지원을 받는 일은 영화업계의 모두가 수긍하는 일”이라며 문제의 본질을 꼬집었다. 서독제는 1975년부터 영진위(당시 영화진흥공사)가한독협과 공동 주최해온 영화제다. 기존엔 다른 영화제와 별도의 예산으로 편성돼 있었지만, 2010년대부터 영진위가 국내 및 국제영화제 지원사업을 모두 맡게 되면서 서독제도 ‘국내외 영화제 육성’이라는 항목에 함께 묶이게 됐다. 그러므로 “예산안상에 나란히 있긴 하지만 서독제 지원사업은 엄연히 다르게 봐야 하는 항목이며 영진위는 독립영화를 지원하는 영화제를 독자적으로 제대로 운영해야 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서독제는 예산의 역사적인 근거뿐 아니라 서독제의 꾸준한 지속과 한국영화계의 기반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예산 삭감이 철회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지난해 영화제에 1만7천여명의 관객이 찾았고, 코로나19 팬데믹의 여파에도 영화제가 꾸준히 규모를 확대하며 성과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서독제는 2020년을 제외하면 2017년 이후부터 지난해까지 꾸준히 1만 관람객 이상을 유치하며 올해엔 1704편이라는 역대 최다 출품작 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상금의 규모와 제작지원사업의 규모 역시 지난해 각 1억원 수준에 도달했다. 서독제는 입장문에서 “누적 상영작 2700편을 통해 강제규, 김성수, 임순례, 류승완, 봉준호, 나홍진, 연상호, 이병헌, 변영주, 그리고 한준희, 엄태화, 유재선, 구교환, 정주리, 김보라 등 광범위한 창작자의 요람이자 산실이 된 영화제”임을 강조했다. 김동현 집행위원장은 “서독제를 찾는 분들은 일반 극장을 찾는 관객보다 더 적극적으로 영화 문화에 긍정적인 관심을 가지는 관객이므로 이런 축제 분위기는 꼭 유지되어야만 한다”라고 전했다.
“부당한 삭감 철회하라”는 서독제 연명과 국회의 계획
‘독립영화제 개최지원사업’이 폐지된다면 서독제는 영화제 진행과 상영작 규모에 불가피한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서독제는 “최선의 노력을 한다 해도 상영작 등 전반적인 규모를 30%는 줄여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더불어 지난해 1억원 규모로 진행했던 독립영화 창작자들에 대한 지원사업 역시 추진이 불투명해진다. 김동현 집행위원장은 “블랙리스트 정국으로 인해 영화제가 감사를 받는 등 예산이 100% 삭감됐던 2010년, 2011년 때처럼 영화제 규모를 대폭 줄여야 할 수도 있겠단 우려가 앞선다”라고 전했다. 이에 서독제는 9월26일부터 30일까지 4일간 ‘독립영화제 개최지원 사업’ 삭감에 대한 철회를 촉구하는 연명을 모집했다. 5천명의 개인(영화업계 종사자 3005명, 학생 및 관객 1995명)과 114개 단체(영화 단체 50개, 영화사 24개, 기타 40개)가 연명에 참여한 것으로 공개됐다. 이어서 2차 연명이 10월14일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김동현 집행위원장은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등 영화인들과 모일 수 있는 자리에서 또 다른 캠페인을 펼칠 예정”이라는 계획을 밝혔다.
올해 영진위 예산의 대폭 축소를 둘러싸고 국회에서 9월20일 ‘지속 가능한 영화 생태계를 위한 영화제 정책 토론회’, 8월1일 ‘영화발전기금 2025년 예산안 긴급점검 토론회’ 등이 열렸듯 서독제와 영화인들은 다시 국회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김동현 집행위원장은 “이미 몇몇 국회의원실에 서독제 예산 삭감에 대한 소명자료를 전달했으며, 15일경엔 여러 의원실을 직접 찾아 논의를 펼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오는 17일엔 한상준 영진위 위원장이 출석하는 영진위 국정감사에 더해서 10월 내내 내년도 영진위 예산에 대한 국회 차원의 전반적인 점검이 있을 예정이다. 강유정 의원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서독제를 포함한 영화제 예산 삭감 건에 대해선 영진위에 적절히 질의할 것이며 최근 영진위가 9인위원회 위원들을 무리하게 징계하려 하는 문제 등도 다룰 예정”이라고 전했다.
문체부가 작성한 <2025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 사업설명자료(Ⅱ-1) 4 권>에 따라 내년도 영진위 예산안의 가닥이 잡혔다. 올해 467억원이던 사업비 예산은 내년 562억원(최초 요구안 613억원)으로 책정되며 올해 대비 17% 수준 상승한 것처럼 보이지만, 2023년의 729억원과 비교하면 과거의 예산액을 회복하지 못한 모양새다. 영화 창제작 지원을 제외한 영화 유통 지원, 영화 정책 지원, 영화 영상 로케이션 지원, 영화 정보시스템 운영 등 대부분의 항목이 모두 소폭 감축됐다. 올해 갑작스러운 폐지로 반발을 불렀던 지역영화 관련 지원사업 예산 역시 복구되지 않았고, 내년엔 비슷한 방식으로 서독제 지원사업이 전면 폐지될 예정이다. 예산이 높아진 부분은 영화 창제작 부문이 유일하다. 올해 107억원에서 내년 217억원으로 2배가량 높아졌다. 한상준 영진위 위원장이 내년 영진위의 주요 과업으로 밝힌 100억원 규모의 ‘중예산영화 제작지원사업’을 신설하며 상업영화 중심의 시장 부활을 우선시했기 때문이다(<씨네21> 1475호, ‘중급 규모 영화부터 살리겠다, 영화진흥위원회, 순제작비 10억원 이상 80억원 미만 영화 지원 계획’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