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브 마이 카>로 동시대의 거장 반열에 오른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신작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가 국내 언론시사회를 마쳤다. 산골에 사는 한 부녀의 마을에 글램핑장 건설을 위해 사람들이 찾아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뒤 ‘하마구치의 새로운 정점’이라는 소문이 돌았던 만큼 세간의 관심이 뜨겁다. 이에 <씨네21> 기자·평론가들이 3월27일 개봉을 앞둔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의 첫 시사 반응을 전한다.
김소미 기자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단절과 불확실성을 감내하는 하마구치 류스케의 ‘대화 실험’을 인간 사회에서 생태의 범주까지 확장한 시도다. 코로나19와 환경파괴의 현실을 투영한 영화지만 <아사코> <드라이브 마이 카> 등이 그랬듯 사회 논평이 아닌 인간성의 수수께끼로 잠입한다. 한층 정교해진 카메라워크와 사운드가 맴도는 자리는 자연과 도시, 순수와 세속의 불가분한 경계 주위다.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굴착해 개인의 불안을 영화의 표층까지 끌어올리는 하마구치 류스케의 장악력은 마치 어두컴컴한 겨울 호수 안쪽을 한없이 들여다보도록 유도하는 손길 같다. 이 작은 영화는 불길하게 황홀하다.
이우빈 기자
이야기는 자그마한 촌극에 가깝다. 산골에 사는 부녀는 말수가 적고, 부녀를 찾은 도시 사람들은 지나치게 말이 많다. 이 대화의 불균질함에서 강력한 유머가 빚어진다. 그러나 점차 영화의 본색이 드러나자 지난 시간의 웃음은 기괴한 조소가 된다. 숲을 거니는 유장한 트래킹숏, 시선의 주인이 없는 자동차 숏 등이 그 기괴한 분위기에 일조한다. <드라이브 마이 카>의 유려함에선 찾아볼 수 없어 아쉬웠던 <아사코>식의 돌출적인 장면들이 내내 펼쳐진다. 그렇게 영화는 한없이 가볍다가 끝없이 무거워지고, 아주 느슨하다가 단숨에 팽팽해진다. 하마구치 류스케란 궤적의 새로운 변곡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