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12일 원주 일대에서 ‘원주 아카데미극장 위법 철거 규탄 4차 시민대행진’이 열렸다. 아카데미극장의 친구들 범시민연대(이하 아친연대) 주최로 열린 이번 대규모 집회는 원주 아카데미극장의 철거를 강행한 원주시장의 퇴진을 촉구하고 역사문화 공간을 지키고자 했던 시민들의 의지와 행동을 이야기하고자 마련됐다. 1도를 웃도는 추위 속에서 원주문화원에서부터 아카데미극장까지 4시간가량의 코스를 함께 걸으며 발을 맞춘 100여명의 극장 동지들은 “극장은 무너져도 시민은 무너지지 않는다”라는 걸 확인했다. 한편 지난 10월30일 철거에 들어간 아카데미극장은 11월12일 당일 터만 남은 상태였으며 원주시는 해당 부지에 새 문화 공간을 짓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나가버린 어린 시절엔 풍선을 타고 날아가는 예쁜 꿈도 꾸었지.” 동방신기의 <풍선>이 크게 울려 퍼지던 오후 2시10분, 원주문화원 앞에서 아친연대 소속 이주성 수호대장의 힘찬 출발 구호로 1차 행진이 시작됐다. 3열 종대로 각을 맞춘 참가자들은 나눠 받은 풍선과 하고 싶은 말을 채워넣은 피켓을 흔들면서 씩씩하게 걸음을 옮겼다. 오후 2시50분경 원주시청에 도착했다. 휴식 시간에 만난 원주 시민 손윤정씨는 “극장에 대한 추억은 없지만 청문회와 같은 정해진 절차를 무시하고 철거를 밀어붙였다는 게 말이 안된다고 생각해 나왔다”라며 원주시를 비판했다. 손윤정씨의 9살 아들 신예준군은 “아카데미극장을 가보지도 못했는데 철거해서 슬프다”는 말을 또박또박 전해주었다. 시청 앞에서 1차 발언이 시작됐다. 조한경 민주노총 원주지역지부장은 “원주에서 나고 자랐다. 아카데미극장은 사춘기로 방황하던 나와 친구들을 반갑게 맞아주던 공간이자 동시대의 친구였다. 누군가의 추억을 짓밟고 과거를 지워버리는 행위는 용납할 수 없는 범죄라고 생각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오후 3시15분, 다시 움직였다. 시청에서 3.5km가량 떨어진 2차 집결지인 의료원사거리까지 2차 행진이 이어졌다. 의료원사거리에 도착하자마자 진행된 2차 발언에서는 원승환 인디스페이스 관장이 모두의 앞에 섰다. 원 관장은 “극장 건물은 잃었지만 우리 모두 이렇게 모여 정말 소중한 것들을 나누고 있다. 이 의지를 모아 다시 아카데미극장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라고 호소해 갈채를 받았다.
오후 4시30분경 최종 집결지인 아카데미극장을 향한 3차 행진이 진행됐다. 어두워지면서 한층 쌀쌀해졌지만 구호를 외치는 목소리는 변함없이 쩌렁쩌렁했다. 오후 5시10분, 40분가량을 걸어 아카데미극장에 도착한 참가자들은 극장이 있었던 자리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3차 발언에서는 원주 출신 최지웅 포스터 디자이너(프로파간다)가 아카데미극장에서 영화 포스터와 사랑에 빠진 추억을 들려주며 분위기를 달궜다. 이은 한국영화제작가협회 회장(사진 오른쪽 끝)은 “새로운 한국영화 운동이 시작되는 출발선에 있다고 생각한다. 원주 아카데미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네마테크 운동이 다른 지역과도 연계해 전국에서 가장 모범적으로 성공하길 바란다”며 이 자리의 의미를 강조했다.
참가자들은 최지웅 디자이너가 이날을 위해 특별히 제작한 ‘원주 아카데미 1963 티켓’을 손에 쥔 채 카메라 앞에서 자랑했다.
이날 행진은 아카데미극장 앞에서 참가자 전원이 단체 사진을 찍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역사의 현장에 있었던 이들은 밝은 미래에서 재회하기를 기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