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세계 개발자 콘퍼런스 2023(WWDC 2023)에서 특히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끈 주제는 증강 현실(Augmented Reality, AR)이었다. 그리고 이번 행사에서 애플의 AR 디바이스 ‘비전 프로’의 실물이 공개됐다. AR 기기에 진심인 페이스북이 사명까지 ‘메타’로 바꾸며 열심히 이쪽 시장을 두드리고 있지만 AR은 여전히 아는 사람만 사용하는 제품으로 업계에 큰 흐름을 만들지 못하고 있었다. 심지어 애플의 비전 프로는 3,499달러, 약 450만원에 출시될 예정인 데다 실제로 구매하려면 2024년까지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시장을 선도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갖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두 가지 포인트가 관심을 끈다. 하나는 이 헤드셋에 전체 화면과 대형 화면의 이미지를 제공하는 영화관 옵션이 포함되어 있어 콘텐츠를 4K로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메타버스보다 콘텐츠를 시청하는 플랫폼으로서의 가치에 중점을 둔 애플의 선택은 공간에 구애받지 않는 엔터테인먼트 경험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비행기나 자동차 안에서 운전자를 제외한 이들의 경험은 대단할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이들이 전통적인 미디어 공룡 디즈니와 손을 잡았다는 점이다. WWDC 2023에는 밥 아이거 디즈니 회장이 직접 등장해 디즈니의 다양한 브랜드를 묘사한 시즐 릴을 선보였다. 특히 이 영상에서는 시청자가 <만달로리안> 시리즈의 한 장면을 보고, 가상으로 재현한 <스타워즈>의 사막 행성인 ‘타투인’과 상호작용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며, 앞으로 스포츠 중계 화면이 어떻게 변할지 또한 생생하게 공개됐다. 밥 아이거 회장은 기조 연설에서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스토리텔링 회사와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술 회사가 다시 한번 협력해 현실 세계에 마법을 선사하게 되어 무척 자랑스럽다”라고 말했다. 또한 “이는 애플 비전 프로를 통해 여러분의 세상에 디즈니를 가져올 수 있는 방법 중 일부에 불과하며, 앞으로 몇달 안에 더 많은 것을 공유할 수 있길 기대한다”며 이번 파트너십이 시작에 불과하다는 점을 알렸다.
성공 여부를 떠나 애플의 비전 프로는 디즈니와 애플의 협업을 통해 앞으로 OTT와 극장의 미래를 보여줄 기회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2024년, AR과 미디어 플랫폼의 협업이 콘텐츠 시장에 가져올 변화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