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과 하이브냐, SM과 카카오냐. 현재 콘텐츠 업계 최대 이슈는 SM엔터테인먼트의 향방이다. SM엔터테인먼트 하면 먼저 떠오르는 이름은 샤이니, 엑소, 레드벨벳, NCT, 에스파 같은 K팝 아티스트들이지만, 그룹사가 콘텐츠 업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그 이상이다. 일본, 중국, 미국 등 해외 각지에 지사를 두고, EDM과 클래식 음악 레이블을 갖고 있으며, 배우 매니지먼트 및 드라마 등 영상 콘텐츠 제작 사업을 펼치는 키이스트의 경영권을 갖고 있다. 콘텐츠 업계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자회사는 SM C&C다. 강호동, 신동엽, 전현무, 서장훈 등의 소속사이자 예능 프로그램 <남자의 자격> <우리동네 예체능> <아는 형님> <효리네 민박>과 드라마 <미스코리아> <동네변호사 조들호> <질투의 화신>의 제작사다. 윤종신의 미스틱89 등이 포함된 미스틱스토리의 최대 주주 역시 SM엔터테인먼트다. 화보집과 시즌그리팅, 영화 블루레이 그리고 드라마 제작까지 겸하고 있는 SM라이프디자인그룹 역시 그들의 자회사인데, <펜트하우스> 시리즈의 김순옥 작가가 이곳에 소속되어 있다. 주목할 만한 신사업은 좋아하는 스타와 프라이빗한 메시지를 나눌 수 있는 ‘버블’을 서비스하는 IT 기업 디어유다. 지난해 매출 492억원, 영업이익 163억원을 기록했고지난 1월 NC소프트의 팬 소통 플랫폼 유니버스를 인수하며 규모를 키우고 있다. 때문에 SM엔터테인먼트의 경영권을 놓고 벌어진 최근 분쟁의 결과는 하이브와 카카오, 두 기업의 사업 포트폴리오는 물론 콘텐츠 업계 전체 지형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사건의 개요 - 라이크기획과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
1995년 SM엔터테인먼트를 창립한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는 1997년 ‘라이크기획’이라는 개인 회사를 차려 SM엔터테인먼트와 프로듀싱 관련 용역 계약을 맺고 매출액의 일정 비율을 가져갔다. 정해진 보수를 받거나 수익 중 자신의 지분만큼 배당을 받는 구조가 아닌 프로듀싱 계약을 통한 수익이기 때문에 타사 임원들과 비교했을 때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가 취하는 이득은 기형적으로 높았다. 일례로 2022년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및 행동주의펀드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는 라이크기획 용역비로 240억원을, 박진영 JYP엔터테인먼트는 8억4천만원의 연봉을, 방시혁 하이브 의장은 7억9천만원의 연봉을 받았다. 이는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가 최근 하이브에 매각한 주식 지분 비율(14.8%)을 감안해도 지나치게 높다. 또한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은 SM엔터테인먼트가 동종업계 다른 엔터테인먼트 기업보다 매출 대비 시가총액이 지나치게 저평가되어 있다고 지적하며, 라이크기획의 비정상적인 용역계약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SM엔터테인먼트가 폭로한 내용에 따르면 21년간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가 라이크기획을 통해 받은 로열티는 1400억원이 넘고, 앞으로도 70년 이상 음원 수익의 6%를 지급받는다. 10년간 추정 로열티는 500억원 이상이다.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이 SM엔터테인먼트에 라이크기획과의 계약 정리를 요구하고 해당 내용이 주주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SM엔터테인먼트는 이수만의 퇴진을 골자로 한 ‘SM 3.0’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올해 1월20일 SM엔터테인먼트는 “지배구조 개선 및 주주가치 제고 캠페인을 주도해온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 주식회사의 제안을 전격 수용하기로 결정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수만 창업자의 지속적인 크리에이티브 프로듀싱에서 멀티 프로듀싱 체제로 전환하고 이사회 구성원을 개편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어 2월3일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한 “SM 3.0: IP 전략-멀티 ‘제작센터/레이블’ 체계”를 통해 “지난해 9월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와의 프로듀싱 계약이 종료되었고, 창업자의 뜻을 계승하고 발전시킬 수 있도록 SM 3.0 시대를 활짝 열겠다”고 공표했다.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 대 이성수·탁영준 공동대표 그리고 내부 직원들의 대결 구도가 외부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가수 겸 배우이자 SM C&C 사외이사인 김민종의 돌발 행동 때문이다. 그는 SM엔터테인먼트 전 직원에게 이번 발표는 당사자와 상의 없이 이뤄진 일방적인 발표였다는 내용의 메일을 발송하며 “SM 아티스트의 활동에는 이수만 선생님의 프로듀싱과 감각적 역량이 꼭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남은 이슈는?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는 2월22일 자신의 지분 14.8%를 4228억원에 하이브에 매각했고, 하이브는 SM엔터테인먼트의 1대 주주가 됐다. 여기에 소액주주 지분 매수에 성공하면 SM엔터테인먼트 경영권을 가질 수 있다. 카카오는 2월7일 SM엔터테인먼트의 지분 9.05%를 2171억원에 확보한 바 있다. 그리고 SM엔터테인먼트는 2대 주주 카카오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어 세계 무대에서의 K콘텐츠 강화, SM의 IP 수익화 등에 힘쓰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SM 인수에 뛰어든 하이브에 맞불 작전을 펼친 것이 아닌, 전략적 파트너로서의 입지와 제휴를 강화하기 위한 매수였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또한 업계에서는 SM엔터테인먼트가 카카오와 협력하는 과정에서 소속 아티스트들의 음원·음반 및 매니지먼트 유통 수익을 카카오에 넘기는 조건이 성립될 경우 주주들의 이익을 막대하게 훼손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편 2월10일 SM엔터테인먼트의 이성수·탁영준 공동대표와 센터장 이상 상위 직책자 25인은 “모든 임직원, 아티스트와 함께 힘을 모아 이번에 보도되고 있는 모든 적대적 M&A에 반대한다”고 공언하며 하이브의 경영권 인수 시도를 전면 거부했다. 그리고 16일 이성수 SM엔터테인먼트 공동대표는 SM 유튜브 공식 계정을 통해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의 역외 탈세 의혹을 제기하고, 하이브 인수 후 여전히 SM 내 모든 아티스트들의 해외 앨범 프로듀싱이 가능하다고 폭로하는 영상을 올렸다. 또한 에스파의 컴백이 밀린 것은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가 신곡 가사에 ‘나무심기’를 강요했기 때문이고, 친환경적 메시지는 사실 해외 부동산을 염두에 둔 그의 전략이라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박지원 하이브 대표는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의 역외 탈세는 물론 해외 프로듀싱을 통한 SM 프로듀싱에의 개입, 해외 자회사들과의 거래를 통한 이익의 이전은 없다”고 반박했다.
SM엔터테인먼트 경영권을 둘러싼 현 논쟁에서 남은 이슈는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가 SM을 상대로 제기한 신주 및 전환사채 발행 금지 가처분 신청의 기각 여부다.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측 법률대리인 화우는 “회사의 경영권 분쟁 상황에서 경영진의 경영권이나 지배권 방어 등 회사 지배관계에 대한 영향력에 변동을 주는 것을 목적으로 제3자에게 신주 또는 전환사채를 발행하는 것은 주주의 신주 인수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위법하다”는 입장문을 내놓은 바 있다. SM엔터테인먼트는 카카오의 지분 인수가 경영권 분쟁이 아닌 전략적 협업을 위함이었다는 것을, 이수만측은 경영권 싸움을 위한 맞불 작전이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이다. 다시 말해 카카오의 지분 인수가 적법한지를 따져야 하는 것이다. 카카오가 신주 인수에 성공할 경우 그들의 기존 입장을 번복하고 SM엔터테인먼트 경영에 참여할 것인지 여부가 한번 더 화두에 오른다. 하이브는 방탄소년단 등 아티스트의 자체 IP에 독보적인 강점이 있고, 네이버 및 넷마블 등 게임 회사와 활발하게 협업하고 있다. 카카오는 다양한 배우와 작가, 감독을 거느리고 웹툰·웹소설 IP의 보고가 된 플랫폼이다. 이들에게 SM의 유구한 역사를 가진 아티스트와 콘텐츠 라이브러리, 특히 IT 분야에서의 성장 잠재성은 기존 사업에 날개를 달아줄 수 있다. 하이브와 카카오, 두 공룡 기업 중 그들의 청사진에 박차를 가해줄 든든한 자산을 확보한 승자는 누가 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