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인이라면 한번도 안 가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가본 사람은 없을 정도로 유명한 발다오스타. 영화 <여덟개의 산>은 스위스와 프랑스가 근접해 있고 알프스산맥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발다오스타가 배경이다. 이곳은 베네토와 트렌티노 지역의 온화한 산세에 비해 계곡은 좁고 어두컴컴하며 협곡처럼 폐쇄적이지만 초목과 개울과 숲이 있는 산, 나무, 돌로 이루어진 마을을 품고 있으며, 몬테로사산이 보이는 꽤 높은 곳에 도달한 양지에서 여러 갈래의 산길이 만난다. 도시 소년 피에트로와 산골 소년 브루노는 이 산길을 파헤치며 둘만의 비밀을 간직한 장소로 만들어나간다. 이들은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는 산의 역사에 대해 상상하고 산에 존재하는 것들의 이름을 알아가는 과정을 함께하며 특별한 우정을 키워나간다. 그러면서 영화는 가족과 화해, 자연 속으로 걸어들어간 개인의 성찰과 마주한다.
벨기에 감독 펠릭스 판흐루닝언과 배우이자 이 영화로 감독 데뷔한 샤를로트 반더히르미가 공동 각본·감독한 이탈리아·벨기에 합작영화다. 이 영화는 제75회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받아 <이오>(EO)와 심사위원상을 공동 수상했다. 발다오스타만 한 곳을 찾지 못해서일까? 펠릭스 판흐루닝언과 샤를로트 반더히르미 감독은 이 영화를 위해 벨기에인임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어를 배웠고 이탈리아로 이사해서 이탈리아에서 이탈리아어로 영화를 찍었다.
이 영화는 이탈리아 작가 파올로 코녜티가 쓴 동명 소설 <여덟개의 산>이 원작이며, 코녜티는 이 소설로 2017년 이탈리아 스트레가상과 프랑스 메디치상 외국문학 부문, 영국 PEN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작가로 입지를 다졌으며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세계의 여러 출판사들이 판권 경쟁을 벌여 화제가 되었다. 2017년 한국에서도 출간됐다.
이 영화는 자연과 인간, 개인과 개인, 내면의 자신과 ‘관계 맺는 것’에 대해 다루면서도 그에 대한 섣부른 평가보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관객에게 보여주는 방식을 택한다. 사람이라면 자신이 속해 있다고 느낄 수 있는 곳, 자신에게 꼭 맞는 나라에서 살아야 한다고 영화는 말한다. 지구를 한 바퀴 돌아야 겨우 도착할 수 있는 한국의 소식을 외국에서 접하게 될 때, 안타까운 소식들이 한탄인지 하소연인지 성토인지 분노인지 가늠하기가 어려운 작금, 잠시 탁자의 사진을 감상하기 위해 카메라가 멈춰 섰던 것처럼 때로는 멈춰 서서 주변을 돌보며 때를 기다려보는 것도 지금의 현실에선 위안을 받거나 위로를 할 수 있는 한 방법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