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쟁 지역 카슈미르에서의 탈출을 그린 영화 <카슈미르 파일>이 극장가를 휩쓸었다. 32년 전 일어난 대탈출과 잔혹했던 학살을 다룬 묵직한 작품으로, <타슈켄트 파일>에서 또 다른 진실을 좇았던 비베크 아그니호리 감독이 제작, 각본, 감독을 맡았다. 이제껏 많은 제작자가 당시의 상황을 스크린에 담으려 했지만 이처럼 진실에 근접한 경우는 없었다는 평과 함께 찬사를 받고 있다. 고통스러운 이야기지만 관객은 진실을 직면하기 위해 영화관에 모였고, 현시점 올해 최고의 발리우드영화라는 결과로 화답했다.
한편 흥행의 맛을 제대로 본 것은 남인도영화다. 최근 힌디어 더빙을 한 남인도영화의 행보가 예사롭지 않다. <푸쉬파> <RRR>에 이어 <K.G.F: 2장>이 인도 극장가를 점령했다. 인도의 엘도라도라 불리는 콜라 금광을 둘러싼 싸움을 그린 이 영화는 역대 최고 제작비를 투여한 칸나다어 영화로, 힌디어 더빙판을 동시 개봉해 발리우드 경쟁작들을 가뿐히 넘어서며 역대 흥행 순위 상단에 이름을 올렸다. 과거 지역영화, 예술영화의 이미지에 묶여 있던 남인도영화가 상업영화의 중심부에서 통하고 있는데, 이제 발리우드만 인도영화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발리우드와 힌디어 더빙판 남인도영화의 흥행 순위를 따로 구분하는 경우도 보인다. 발리우드가 짧은 러닝타임, 다양한 장르적 시도를 이어 나가며 세계화되어가는 사이, 정작 자국 관객이 원하는 건 이런 영화란 느낌이다. 세 시간 길이의 영화에 담긴 불의에 대한 저항과 정의 실현, 화려한 액션 등은 마치 90년대 발리우드 전성기를 연상시킨다. 새로운 것을 갈망하는 관객이 있는 반면, 아직 많은 이들이 과거 발리우드의 향수를 좇는다고 할까. 과연 인도 사람들에게 영화는 상업과 예술을 떠나 여전히 오락 문화이자 일상의 탈출구다. 현실로부터 한 시간 반보다는 세 시간짜리 탈출을 바라는 것은 놀랄 일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