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가 어머니를 둔 어린 피셔에게 체스는 외로운 밤을 나는 유일한 수단이다. 체스에 재미가 들린 피셔는 승부 근성을 바탕으로 실력을 키워 열다섯에 최연소 그랜드 마스터 타이틀을 획득한다. 유달리 예민했던 그의 성격은 체스라는 외로운 게임 속에서 병적으로 뒤틀려간다. 도청을 의심하며 숙소 곳곳을 헤집거나 대회마다 무리한 요구를 하며 주변 사람들을 괴롭힌다. 하지만 러시아의 강호들을 모두 물리친 피셔(토비 맥과이어)는 마침내 세계 챔피언 보리스 스파스키(리브 슈라이버)에게 도전할 기회를 얻는다.
영화는 바비 피셔가 치렀던 경기들을 중심으로 피셔가 선수로서 절정기에 다다르는 과정을 담는다.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72년 타이틀 매치 전까지 경기마다 언론과 대중의 뜨거운 관심을 담은 푸티지들이 삽입되고 피셔의 편집증과 신경증적인 면모가 반복적으로 드러난다. 그 효과로 피셔가 느끼는 압박감과 부담감을 생생히 전하지만 인물을 단선적으로 보여주는 데 그친다. 영화는 72년까지 피셔의 커리어를 착실히 훑지만 이후 행적은 몇 마디 문구와 간단한 푸티지로 정리한다. 주인공이 천재성을 바탕으로 유명세를 얻고 부침을 겪는 전기영화의 궤적을 뚜렷이 취하고 있기에 다소 성급한 마무리로 느껴진다. 롬바디 코치(피터 사스가드)의 대사나 리액션 등을 통해 경기 양상에 대한 감을 잡는 데 무리는 없지만, 체스에 대한 이해 정도에 따라 재미의 폭이 다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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