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BIFF Daily > 17회(2012) > 영화제 소식
[special1] 카자흐스탄, 카프카, 브레송이 빚어낸 영화

<스튜던트>로 부산을 찾은 다레잔 오미르바예프 감독의 영화세계

다레잔 오미르바예프 감독

구소련 연방과 중국, 이란의 국경이 만나는 접경지대이며 카자흐스탄의 옛 수도인 알마티에서도500km나 떨어진 잠불 주에서 태어난 오미르바예프는 수학을 공부한 뒤 영화에 대한 흥미를 느꼈다고 한다. 카자흐스탄에 새로 생긴 조감독 교육 과정을 이수하고 카자흐 필름 스튜디오에서 일하던 그는 1987년 모스크바국립영화학교를 졸업한 뒤 <여름 열기>(1988)라는 단편을 만들어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리며 본격적으로 연출을 시작한다. 비슷한 시기에 모스크바국립영화학교를 다녔던 아미르 카라쿨로프, 사티발디 나림베토프, 세릭 아프리모프, 아바이 카르피코프, 에르멕 시나르바예프, 아르닥 아미르쿨로프, 아만졸 애튀아로프, 탈가트 테메노프 감독 등은 모두 90년대 ‘카자흐 누벨바그’로 불리며 주목받는다.

오미르바예프는 자신의 영화에 영향을 준 사건으로 모스크바국립영화학교에서 장 비고와 트뤼포, 고다르, 브레송 등 프랑스영화를 본 경험을 여러 차례 꼽았다. 물론 <이반의 어린 시절>과 같은 러시아영화도 첫 장편 <카이라트>(1991)를 구상하는 데 많은 영감을 주었다 한다. 한편, 자신만의 세계를 구성한 또 다른 자양분은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들이었다고 고백한다. 공식적으로 카프카의 소설이 출간되지 않았던 소련에서 그는 간접 문헌을 먼저 접하고 작품을 상상한 뒤 해적판 카프카를 읽었다고 한다. 브레송의 영화도 마찬가지였는데, 카자흐스탄에는 시네마테크가 없어서 브레송의 이름은 모스크바국립영화학교에 입학한 뒤에 알았고, 인터뷰와 평문을 먼저 읽고 영화를 나중에 봤다고 한다.

언어로 표현된 브레송의 영화를 읽고 상상했던 이미지와 자신이 스크린에서 본 이미지가 완전히 일치함을 목도하고 전율했던 체험은 오미르바예프의 작품에 뚜렷한 흔적을 남겼다. 예컨대 브레송의 영향으로 오미르바예프도 상업 배우가 아닌 연기자들과 작업하는 것을 선호하며, 강렬한 드라마 구조와 선형적 내러티브가 두드러지지 않는 작품을 만들어왔다. 또, 분명한 시점과 청점을 지니도록 엄격히 정련한 그의 숏은 등장인물이 연출자가 된 것 같은 효과로 새로운 세계를 구성하며, 현실을 바탕으로 한 시적이고 몽환적인 힘을 영화에 부여한다. 그래서 켄트 존스는 오미르바예프의 세계를 필립 가렐의 영화와 비견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그의 영화는 카자흐스탄 땅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카이라트> <카르디오그램>(1995) 등 초기작은 변방에서 보낸 자신의 어린 시절을 경유하여 소비에트 연방의 일원이었던 카자흐스탄의 집단 (무)의식을 묘파하고, ‘안토니오니가 만들 만한 정치 서스펜스물’이란 별명을 얻은 <킬러>(1998)는 소련 붕괴가 야기한 독립 카자흐스탄의 정치•경제•사회적 상황을 직시한다. 누군가는 카프카 작품 속의 모든 효과가 “성으로 들어가는 것”을 위해 존재하듯, 그의 모든 사유와 영화 언어는 카자흐스탄의 일상과 연결된다고 일컬었다. 영화감독으로서의 삶을 반영한 <길>(2001)이나,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가 구현한 영화적 시간을 포착하면서 자본주의 체제로 빠르게 변화하는 카자흐스탄의 현실을 놓치지 않았던 근작 <츄가>(2007)도 여전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영화화한 신작 <스튜던트>로 부산을 찾을 오미르바예프와의 재회가 사뭇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