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의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은 일본의 와카마츠 코지 감독에게 돌아갔다. 그의 나이 76세, 언제나 영화가 자신의 무기였던 초로의 감독은 아직도 자신의 건재함을 알리고 있었다. 수상을 기념하며 이현경 평론가가 쓴 와카마츠 코지 감독의 영화 세계와 10월7일 ‘나의 인생, 나의 영화’를 주제로 와카마츠 코지가 연 마스터 클래스를 글로 옮겼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 수상자로 일본의 와카마츠 코지 감독을 선정했다. 아시아 영화계에 공헌한 인물에 수여하는 상으로 모흐센 마흐말바프, 허우 샤오시엔, 유덕화, 서극 등이 과거 수상했다. 이번 수상을 기념하여 와카마츠 코지 감독의 특별상영전이 열리며, 마스터클래스에서 감독이 직접 강연하는 시간도 마련된다. 1963년 <달콤한 잠>으로 데뷔한 와카마츠 코지 감독은 1965년 와카마츠 프로덕션을 설립하여 저예산 독립영화제작 방식을 고수해 온 일본 독립영화계의 정신적 지주다. 핑크영화를 부흥시킨 주역이면서 정치적인 영화로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는 문제적인 영화인이다. 감독뿐 아니라 오시마 나기사, 아다치 마사오, 야마토야 마츠시 등의 영화를 제작하여 제작자로도 명성을 얻었다. 일본 영화를 이끈 주역 중 한명으로 볼 수 있는 와카마츠 코지 감독의 이번 특별상영전 상영작은 그야말로 특별한 면이 있는데 세편이 모두 2012년 작이라는 것이다. 76세의 노장으로서는 놀라운 열정을 보여준 행보인데 최근 암투병 후 영화에 대한 투지가 강해졌다는 후문이다. 올해 상영하는 작품은 <11.25 자결의 날>, <해연호텔 블루>, <천년의 유락> 등 모두 세편. 특정한 지향보다 자신이 관심 가는 것을 영화로 만든다는 감독의 말처럼 이 세편도 전혀 다른 분위기와 내용을 담고 있다. 동시에 이렇게 다른 영화들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11.25 자결의 날>은 미시마 유키오의 군국주의 부활 운동과 자결까지를 연대기적으로 서술한 영화다. 영화 서두에 미시마 유키오의 단편소설 <우국>(憂國)이 화면에 비치는데 영화에 그려지는 미시마 유키오의 모습은 <우국>의 주인공과 흡사하다. 쿠데타 실패로 할복하는 젊은 군인의 모습은 작가의 분신일 것이다. 정치적 논란에도 불구하고 탐미적인 소설과는 달리 영화는 다큐멘터리적인 느낌이 강하다. 그런 까닭에 미시마 유키오와 그의 추종자들의 활동을 소상히 쫓고 있지만 감독의 정치적 코멘터리는 강하지 않다.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는 미시마에게 주변에서는 정치적인 활동을 멈추고 집필에 전념할 것을 권유하기도 하지만 군국주의와 천황주의에 대한 그의 신념은 흔들림이 없다.
<해연호텔 블루>는 미스터리한 한 여인 때문에 파멸하는 남자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큰 줄기로 보아 필름 누아르의 성격을 띠고 있지만 야쿠자 영화의 관습과 핑크 영화의 색채, 밀교와 불교의 흔적이 뒤섞인 독특한 영화다. 동료의 배신으로 7년형을 살고 나온 남자는 복수를 위해 배신자를 찾아 나선다. 멀고 먼 바닷가로 피신해 살고 있는 배신자를 겨우 찾아낸 남자는 여자 때문에 배신했다는 말을 듣고 허망함과 분노에 이성을 잃는다. 그런데 하루 이틀 그곳에 머물자 자신도 모르게 배신자의 아내에게 묘하게 끌리게 된다. 결국, 살인까지 저지르게 되지만 정체불명의 여자는 손에 잡히지 않고 그의 삶은 미궁으로 빠진다. 나카가미 겐지의 소설을 영화화한 <천년의 유락>은 시대극으로 천시당하는 부락민 마을에서 산파 역할을 하는 여성과 그녀가 받은 첫 번째 아이 한조의 평생이 그려진다. 민담, 설화적인 분위기가 강한 토속적인 작품이다. 와카마츠 감독은 2008년 <실록 연합적군>으로 베를린국제영화제 NETPAC상을 수상했고, 2010년에는 <캐터필러>로 베를린국제영화제 은곰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