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생존 싸움을 벌이고 있는 불법이민자 소녀와 죽음을 목전에 둔 노인의 수상한 조우. 데 세리오 형제의 장편 데뷔작 <자비의 7계명>을 본다는 것은 존재론적 성찰을 향한 기이한 여정에 동참하는 것과도 같다. 마시밀리아노 데 세리오 감독이 차분하고도 열정적으로, 이 특별한 순례기를 풀어놓았다.
영화는 개인적인 경험에서 출발했다. “할아버지가 후두암에 걸려 병원에 계셨는데,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그와 무언의 대화를 통해서 영혼을 교감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할아버지와 닮은 이탈리아의 유명 배우를 노인 안토니오 역에, 병원에 있던 동유럽 소녀로부터 모티브를 얻은 루미니타 역은 수백 명의 배우들을 인터뷰한 끝에 캐스팅했다. 영화 속에서 이 배우들은 얼굴만으로도 특유의 존재감을 드러내며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자비의 7계명>에서는 성경의 인유가 도드라진다. 감독은 영화를 “일곱 개의 계명을 따라가는 영적인 여정으로 보아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한다. 영화를 관통하는 엄격한 형식은 “자비란 과연 무엇이고, 무엇이 사랑의 순수한 형태인가”라는 진지한 주제를 담아내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영화는 어둠 속의 빛에서 시작해 화면을 가득 채우는 빛으로 끝이 나는데, 미술사학자이기도 한 감독은 빛의 설계나 화면 조성에 있어서 서양 미술 작품을 참고로 했음을 덧붙인다. 특히, 동명의 제목을 가진 카라바지오의 작품은 “계명들이 혼재하는 장면이나 몸을 통해 영적인 주제를 탐구한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비교가 될 것이다. 윤리 문제를 통해 휴머니티를 사유한다는 점이 다르덴 형제를 연상케 하며, 홍상수, 김기덕, 차이밍량, 그리고 포르투갈의 주앙 세자르 몬테이로 등이 그가 좋아하는 감독들의 목록이다. 극한 상황에서 노출되는 인간 조건을 탐구해갈 이 야심찬 이탈리아 형제들의 차기작 목록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