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은 서울에서 가깝지 않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 곳은 아니다. 그러나 부산이 가장 멀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바로 부산국제영화제를 하는 시기에 그랬다. 영화인의 가장 큰 축제지만 그 자리에 초대받지 못한 영화인들에게 부산은 스타와 스타감독들의 잔치처럼만 보였기 때문이다. 관객으로 기차표 끊고 가도 되지만 알량한 자존심은 ‘네 영화 들고 가기 전엔 절대 가지 마라’고 늘 쫑알거렸었다. 와신상담은 아니지만 이렇게라도 스스로를 옭아매야 한해라도 더 빨리 데뷔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결국 작년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으로 보무도 당당히 부산 땅을 밟았다. 15년 동안 다른 사람들을 통해 들어야했던 남포동을 찾아 스타들의 핸드프린팅에 설욕(?)의 로우킥을 날리며 혼자만의 감회에 젖었다. 그러면서 왜 그토록 많은 동료들이 ‘부산! 부산!’을 부산하게 외쳤는지도 깨닫게 되었다. 이 큰 도시가 시골 작은 마을의 동네잔치처럼 일사분란하게 들썩이는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했다. 어쩌면 편견이 깨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부산하면 사투리부터 왠지 거친 인상으로 다가왔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모두가 내 손님이라는 표어를 가슴에 달고 충심으로 나그네들을 맞는 아낙 같았다.
그런데, 부산에 대한 더 큰 오해와 편견이 깨지는 순간이 있었으니 바로 부산 음식을 먹는 순간이 그랬다. 남도 음식을 늘 최고로 치는 국가 분위기에 눌려 경상도 음식은 늘 조롱의 대상이었다. 거기 가면 먹을 게 없다는 말을 수없이 들어왔다. 그것은 유언비어였다. 부산엔 부산 오뎅만 있는 게 아니었다. 부산에서 먹은 음식들은 부산이 왜 그토록 사랑받는 도시인지를 보여주었다. 일일이 다 열거할 순 없지만, 대구탕부터 완당, 물회, 부산 음식의 대명사인 돼지국밥까지 첫키스하는 순간마다 날 신경지로 인도했다. 올해도 부산을 찾았다. 아니 부산이 날 인도했다. 영화가 인도했는지 음식이 인도했는지는 비밀이다. 지면 관계상, 그리고 오각 중 가장 후진 감각기관이 미각인 관계로 맛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는 검색을 해보길 부탁드린다. 확실한 건 앞으로 매년 부산에 올 것이다. 영화에 대한 나의 감각을 깨우러 오는 건지 음식에 대한 나의 미각을 깨우러 오는 건지는 내 세치 혀로는 말할 수 없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