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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정 "붙잡은 걸 놓으니 편안해지더군요"
2010-05-11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배우를 잘하면 철학자가 될 수도 있고, 잘못하면 딴따라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인생은 '페이드 아웃'(화면이 점점 희미해짐)되는 겁니다. 붙잡는 게 많을수록 힘듭니다. 어느 순간 무언가 붙잡은 걸 놓고 나니 편안해지더군요."

배우 윤여정(63)은 올해 칸 영화제에 간다. 김기영 감독의 '화녀'(1971)로 영화에 데뷔한 이후 처음이다. 그가 출연한 두 편의 영화는 영화제 공식부문에 나란히 진출했다.

임상수 감독의 '하녀'는 경쟁부문에 진출했고, 홍상수 감독의 '하하하'는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됐다. 두 편의 영화가 초청돼 칸을 방문하는 여배우는 윤여정이 유일하다. 남자 배우로는 '올드보이'와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로 지난 2004년 칸을 방문한 유지태가 있다.

윤여정은 지난 10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오래 연기하다 보니 별일이 다 생긴다"며 쾌활하게 웃었다.

그는 '하녀'에서 늙은 하녀 '병식'을 연기했다. 훈(이정재)과 해라(서우)가 사는 대저택을 관리하면서 은이(전도연)를 감시하는 인물이다.

"임상수 감독이 두 '하녀'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어요. 은이가 아름답고 추상적이라면 '병식'은 현실적인 하녀라고 하더군요. 감독의 지시에 맞춰 연기하려고 노력했어요."(웃음)

임상수 감독의 '하녀'는 고(故)김기영 감독(1919-1998)의 역작 '하녀'(1960)를 리메이크한 영화다. 임 감독의 리메이크작은 중산층이 파괴되고, 빈부간의 격차가 크게 벌어진 우리사회의 풍경을 은이, 병식 등을 통해 그렸다.

윤여정의 영화 데뷔작 '화녀'도 김기영 감독의 '하녀'를 리메이크 한 영화다.

"이번 영화를 찍으면서 김기영 감독님 생각이 많이 났어요. 예전에는 현장에서 매번 투덜거렸죠. '충녀'의 알사탕 정사장면을 찍을 때는 몸에 사탕이 배겨서 너무 아파 울기도 했어요. 감독님께 왜 이런 걸 찍느냐고 칭얼대기도 했죠.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말한 게 후회되네요."

촬영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한 장면을 3번 이상 촬영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연기하기에 어려웠던 장면을 물으니 은이에게 뺨 맞는 장면이라고 했다.

"난 도연이가 그렇게 세게 때릴지 몰랐어요. 눈물은커녕 골이 아파지면서 정신을 잃을 정도였어요. 은이의 감정으로 치는 게 확연히 느껴졌습니다. '칸의 여왕이라더니 역시 다르긴 다르구나'라고 생각했죠."(웃음)

내친김에 전도연의 연기에 대해 물으니 "진짜 배우"라며 탄복했다.

"오랫동안 연기를 하다 보면 감이란 게 있어요. 배우는 우는 데도 '간'을 맞춰야 해요. 도연이는 간을 딱 맞춰서 울더라고요. 더욱 훌륭한 점은 감독과 이견이 없다는 점이죠. 감독의 지시를 마치 스펀지처럼 흡수하더라고요. 또 배우들은 통상 먼저 촬영이 끝나면 숙소에 가서 쉬는데 그 애는 내가 연기하는 걸 창문에서 보고 있었어요. 배우란 서로 배워야 하죠. 도연이는 나를, 나는 도연이를요. 솔직히 많이 놀랐어요."

홍상수 감독의 '하하하' 이야기를 꺼내자 눈을 빛냈다. 그는 평소 홍상수 감독과의 함께 작업하기를 바랐다고 했다. 그런데 막상 같이 작업해 보니 그 과정이 녹록지 않았다.

"30번씩 재촬영을 하기도 했어요. 나중에는 머리가 핑핑 돌면서 '별'이 보이더라고요. 성질을 있는 대로 부렸습니다. 상경이가 중재를 많이했죠."(웃음)

영화는 선후배 사이인 두 남자가 얼마 전 각자 통영에 다녀온 사실을 알고 술자리에서 여행담을 풀어놓는 이야기다. 윤여정은 이 영화에서 문경(김상경)의 어머니로 등장한다. 통영에서 허름한 식당을 하는 여주인 역이다. 서울과 통영을 오가야 했지만 무보수로 출연한 탓에 "기름 값도 받지 못했다"며 그는 웃었다.

이름은 같지만, 스타일은 전혀 다른 홍상수 감독과 임상수 감독에 대해 물었다.

"홍상수 감독은 디테일이 섬세해요. 디테일을 아주 유쾌한 방식으로 푸는 재주가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배우들이 무보수로 출연한다는 건 그만큼 홍 감독에게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는 말이죠. 그 섬세함으로 왜 남녀상열지사를 다루는 영화만 만드는지 모르겠지만…."(웃음)

"반면 임상수 감독은 밝히기 꺼리는 우리 안의 치부를 까발리는 특징이 있어요. 둘 다 좋은 감독이고 우리 사회에 필요한 감독이죠."

이창동 감독이 연출한 영화 '시'로 칸 영화제 레드카펫을 밟게 된 윤정희(66)씨에 대해서는 "대단한 배우"라고 말했다.

"감독의 힘이 놀라운 좋은 영화입니다. '시'는 윤정희 선배가 연기한 최고의 작품이에요. 정말 온 힘을 다하신 것 같습니다."

buff27@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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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