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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 드라마'에 대한 세 가지 시선
2010-04-18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최근 8주 연속 전체 TV 프로그램 시청률 1위를 달려온 KBS 2TV 주말극 '수상한 삼형제'와 일일연속극 시청률 1위인 MBC TV '살맛납니다'의 공통점은 '막장 드라마'라는 오명이 붙어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지난 16일 막을 내린 SBS TV 일일극 '아내가 돌아왔다'와 SBS TV 아침드라마 '당돌한 여자', MBC TV 아침드라마 '분홍립스틱' 등도 같은 꼬리표를 달았다. 그런데 이들도 시청률이 10%대 중후반으로 높다.

반면 '착한 드라마'를 표방한 MBC TV 주말극 '민들레 가족'은 시청률이 한자릿대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막장 드라마'만이 시청률을 보장하는 것일까. 우리는 무엇을 '막장 드라마'라고 부르는 것일까. 작가와 PD, 배우들의 입을 통해 '막장 드라마'에 대한 세 가지 시선을 정리해봤다.

◇"불쾌감을 주고 분노를 조장한다"

김수현 작가는 SBS TV '인생은 아름다워'를 기획하면서 "현재 대부분 드라마가 출생의 비밀과 납득하기 어려운 삼각.사각 관계, 극한을 모르는 복수의 향연, 극단적 대립, 비정상적 감정표출, 전개상 편의를 위한 우연의 남발로 꼬이는 인간관계를 그린다"고 지적했다.

그 자신 불륜을 정색하고 다룬 '내 남자의 여자'를 썼지만, 요즘 드라마는 해도 너무한다고 꼬집은 것이다.

그가 지적한 대로 시청자들로부터 '막장 드라마'라는 낙인이 찍힌 드라마들에는 어김없이 불륜과 복수, 극단적 대립과 치떨리는 사기행각 등이 들어가있다. '아내의 유혹'과 '천사의 유혹', '조강지처클럽'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드라마는 불쾌감과 분노를 안겨준다는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그것은 곧 선정성, 흥미성의 다른 이름이기도 했고, 높은 시청률로 이어졌다. 시청자 의식을 퇴보시킨다는 지적 속에서도 막장 드라마가 꿋꿋하게 만들어지는 것은 그 때문.

'민들레 가족'의 김정수 작가는 '막장 드라마'에 대해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런 작가들이 나보다 영리하다는 점이다. 상업방송에서 시청자가 많이 보는 드라마를 쓴다는 것 아닌가. 나도 '아내의 유혹' 보니까 재미있더라"면서도 "다만 모두가 공짜로 보는 TV 드라마는 일정한 선을 지켜야 한다. 영화와 다르다. 잔혹하거나 이상한 내용은 작가 스스로 피해야 한다. 드라마라는 울타리를 지켜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정수 작가는 자신만이라도 '상품'이 아닌 '작품'을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막장 요소를 찾을 수 없는 '민들레 가족'은 시청자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속에 맺힌 한과 응어리를 풀어준다"

막장 드라마가 시청자에게 재미와 카타르시스를 안겨준다고 보는 시선도 있다.

'가문의 영광', '별을 따다줘' 등 줄곧 '착한 드라마'로 인기를 끈 정지우 작가는 "시청자가 '착한 드라마'를 칭찬하지만 항상 가장 많이 보는 건 소위 막장 드라마다"면서 "그것은 그만큼 막장 드라마에 고유의 매력이 있기 때문이며, 그렇기 때문에 막장 드라마가 사회악이라거나 사회적 폐해를 끼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방송작가는 현대 사회에서 무당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무당이 굿을 하며 접신을 통해 다른 사람의 인생을 대신 표현하듯, 작가도 작품을 통해 그런 일을 한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굿은 아픈 아기를 옆에 두고 빌어주는 게 있는가 하면, 소의 배를 가르고 피를 보면서 하는 게 있는 등 형태가 다양한데 모두가 굿은 굿이죠. 드라마도 형태가 다를 뿐 다 굿을 한다는 점에서는 같다고 생각해요. 막장 드라마의 시청률이 40~50%가 나오는 것은 시청자들이 그만큼 손에 땀을 쥐고 그들 드라마를 보고, 그러면서 속에 맺힌 한과 응어리를 풀기 때문입니다. 시청자들이 질이 낮아서 그런 드라마를 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복수와 불륜으로 점철돼도 개연성이 있다면 '막장 드라마'가 아니라는 항변도 있다.

'아내의 유혹'의 김순옥 작가는 '천사의 유혹' 집필에 앞서 "막장이라는 비난은 설정 탓이 아니라 내용이 말이 안되기 때문에 듣는 것이라 생각한다"며 "주인공들이 왜, 무엇을 좇기 위해 복수를 하는가를 잘 그리면 막장이라는 말이 안 나올 것이라 생각한다"고 자신했다.

'수상한 삼형제'의 문보현 CP도 "막장 드라마는 말도 안되는 상황을 그리는 드라마가 아닐까 싶다"며 "그런 점에서 '수상한 삼형제'는 억울하다. 우리 드라마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며, '콩가루 가족'이 건전한 가족으로 변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고 말했다.

◇"연속극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막장 드라마는 주로 호흡이 긴 연속극에서 나오고 있으며, 이는 연속극 패러다임의 문제라는 분석도 있다.

문보현 CP는 "따뜻하고 고운 이야기만 하면 좋겠지만 그러면 외면받는 시대가 됐다. 과거에는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만 다뤄도 관심을 받았지만 언젠가부터 거기에 조미료를 치지 않으면 시청자가 재미없어했다"며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조미료를 더 많이 치게됐고 그러다보니 재료 본연의 맛이 없어지게 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렇게 서서히 바뀌기 시작한 것이 어느덧 20년이 흘렀다. 이 길로 계속 가면 절벽밖에 없다는 것을 알기에 작가들의 고민이 많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일일극, 주말극의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어야 하는데 그런 고민을 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 문제"라고 덧붙였다.

문 CP는 연속극과 달리 미니시리즈 드라마는 '추노'나 '아이리스' 등을 통해 천편일률적인 트렌디극에서 다른 쪽으로 진화하는 데 성공했다며, 이제는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연속극의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으면 '막장 드라마'의 제작을 막을 수 없다고 우려했다.

그런 점에서 김수현 작가가 '엄마가 뿔났다'에 이어 최근 내놓은 '인생은 아름다워'가 주목된다. 평생 가족을 위해 헌신한 엄마가 어느 날 자아를 찾아독립하는 이야기를 풀어내며 큰 인기를 모았던 '엄마가 뿔났다'에 이어, 지난달 시작한 '인생은 아름다워'는 바람둥이 아버지의 귀환과 동성애, 낙태 등 민감한 사회적 문제를 솜씨 좋게 녹여내며 초반부터 관심을 끌고 있다.

김 작가는 '인생은 아름다워'에 대해 "진정한 의미의 자존심과 건전한 가치관, 긍정적 사고방식, 바람직한 공공의식을 가진 부부와 그들이 키워낸 자식들의 주변 인물들이 엮어내는 유쾌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지금 방송가는 일흔을 바라보는 이 노(老) 작가가 땅에 두 발을 딛고 시대상을 정확하게 반영하면서도, 막장 드라마라는 비난을 피하며 연속극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지에 관심을 모으고 있다.

prett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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