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윤구 기자 = "그냥 인터뷰하는 거 찍으시면 안 되나요? 어차피 옷도 다 똑같은데"
최근 강남구 압구정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감독 겸 영화배우 양익준. 인터뷰 전에 사진 촬영을 위해 자리를 옮겨달라는 요청에 그가 쑥스러워하면서 한 말이다.
자세히 보니 셔츠와 재킷이 눈에 익었다. 1년 전 '똥파리' 개봉 때의 인터뷰 기사에서 본 듯했다.
"그때랑 똑같은 거 맞아요. 제가 옷을 살 여유가 없어서요. 제가 작년 하반기까지 전 재산이 30만 원밖에 안 됐어요. 이 옷도 미술감독한테서 얻은 겁니다."
개봉을 앞둔 '집 나온 남자들'에서 지진희와 콤비를 이뤘지만 다른 배우들처럼 의상을 여러 벌 준비하기는커녕 1년 전 인터뷰 때 입었던 옷을 그대로 걸치고 나온 그는 배우라기보다 동네 청년 같은 느낌이었다.
양익준은 '집 나온 남자들'에서 능청스러운 연기를 자연스럽게 보여줬다.
그는 "나는 연출할 때도 그렇고 연기할 때도 자유로워야지 표현할 수 있는 타입이다. '똥파리' 때도 배우 리허설을 안 시켰다"면서 "이하 감독도 '집 나온 남자들'을 찍을 때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여지를 줬다"고 말했다.
영화에서 그는 지진희와 티격태격하면서도 죽이 잘 맞는 오래된 친구 역할로 좋은 콤비를 이뤘다.
"나 같은 경우엔 대사를 완벽하게 안 외워갑니다. 그날 찍을 장면의 상황과 감정이 이해되면 완벽하지 않은 여백이 다른 단어나 문장으로 자연스럽게 대체가 됩니다. 일상에서도 진희 형하고 형 동생처럼 같이 지내다 보니 그게 대사에 자연스럽게 묻어난 것 같습니다."
양익준은 이제까지 2002년부터 단편 포함 22편에 출연했고 4편을 연출했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같은 상업영화에도 출연했지만 2~3장면밖에 안 나올 정도로 비중은 적었다.
"두 달 반을 찍었는데 즐거웠습니다. 얼마 전 기술 시사를 봤더니 너무 재밌었습니다. 처음 5분 정도는 내 얼굴이 나오니 쑥스러웠지만, 관객들 보기에도 재미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상업영화에 출연해 개성 있는 배우로 도약할 기회를 맞았지만, 그는 아직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알린 독립영화 '똥파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는 프로모션을 위해 일본에 갔다 왔다고 했다. '똥파리'는 일본뿐만 아니라 영국과 프랑스에서도 상영됐고 캐나다의 극장에도 걸릴 예정이다.
양익준이 각본, 감독, 주연을 도맡아 한 '똥파리'는 로테르담영화제 타이거상, 도빌아시아영화제 대상과 국제평론가상을 받는 등 해외 영화제에서 무려 23개의 상을 쓸어담았다.
그는 '똥파리'의 성공에 대해 "13만명이 들었다. 수익금은 투자자들 주고, 스태프 인건비 주고, 빚 갚고 전세방 다시 찾았다"고 말했다.
독립영화만 12년을 했다는 양익준은 지난해까지 1천700만 원짜리 반지하 전세방에서 살았다고 말했다. 반지하에서만 7~8년을 살다 햇볕이 드는 방으로 옮긴 것도 최근 일이다.
'똥파리'는 다큐멘터리를 제외하고 독립 극영화로서는 가장 많은 관객을 모았지만, 양익준은 불법다운로드가 많았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똥파리' 엄청 많이들 봤다. 휴대전화에 불법 다운로드 받아서 나한테 자랑하는 사람도 있었다"면서 "극장에서 30만명만 봤어도 스태프 40명에게 인건비 700만~800만원씩은 줄 수 있는데 그 반도 안 되는 액수를 줬다"며 아쉬워했다.
그는 이어 "결국 제 스스로 제작할 수 없는 환경이다. 또 돈을 꾸고 집을 빼든가 아니면 상업적 시스템에서 상업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면서 "돈을 벌려 한 건 아니지만, 수익이 들어와야 재창조를 할 수 있다. 밥도 먹고 월세라도 얻어야 살지 독립영화는 땅 파서 나오나?"라면서 독립영화 제작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감독과 배우를 넘나드는 양익준에게 영화는 무엇일까? 그는 "답답증을 풀어내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답답증을 배출할 통로가 필요했어요. 그러다 작은 역할이나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역할을 할 때는 배출이 안 되니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연출로 온 것 같아요. 자기 이야기를 쓰는 감독은 어떤 것일까 하는 생각이 있었어요."
양익준은 지난해 '똥파리'로 최고의 한 해를 보냈고 올해는 '집 나온 남자들'로 얼굴을 널리 알릴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그는 그러나 "지금 이 기류에 휩싸여 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 때 되면 영화 만들고 연기하면 된다. 지금은 별로 자극이 없는데 하고 싶은 욕망이 생기면 할 것"이라면서 "상업영화나 비상업영화 이런 것을 찾는 것은 무의미하다. 가능성은 다 열어놨다"고 말했다.
kimyg@yna.co.kr
(끝)
<연합뉴스 긴급속보를 SMS로! SKT 사용자는 무료 체험!>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