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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일곤 감독 "기적처럼 잘 살 수 있었던 건 사랑"
2009-11-26

(서울=연합뉴스) 한미희 기자 = 겉으로 보기에는 한국인은커녕 동양인이라고 짐작할 수도 없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어떤 이는 아주 오래된 한복을 차려입었다. 이들은 '꼬부랑 할머니'를 부른다. 음정도 박자도 어색하다. '봄이 오면', '리리리자로'도 이어진다.

이들은 100년 전 멕시코를 거쳐 쿠바로 이주해 간 한국 사람들의 후손들이다. 1천여 명으로 추정되는 쿠바의 한인 후손들은 한국말을 하지 못하고 생김새도 많이 달라졌지만 한인이라는 정체성은 잊지 않고 살고 있다.

송일곤 감독이 연출한 '시간의 춤'은 이들의 삶과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이 영화는 왜, 어떻게 시작됐을까.

프랑스에서 열린 감독 특별전을 마치고 돌아온 송 감독을 25일 만났다. 그는 "원래 쿠바에 관심이 많았고 그들의 음악을 통해 낭만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더 낭만적이었다"고 말했다.

애초의 시작은 쿠바를 배경으로 한 멜로 영화였다. 송 감독은 "쿠바에 대한 자료를 조사하다 보니 사회주의 국가인 그곳에 한인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그들이 어떻게 그곳에 갔는지 궁금해졌다"고 했다.

"평소에 '디아스포라'처럼 해외로 떠난 사람들이나 입양아에 대한 관심도 많았어요. 처음엔 '그들이 왜 그토록 먼 곳까지 갔을까'가 궁금했고 그런 쪽으로 막연하게 주제를 잡았는데 취재하고 촬영하면서 구체적으로 잡혀간 거죠."

그렇게 담은 주제는 그들의 낭만과 사랑이다. 송 감독은 그들에게 어떻게 아내나 남편을 만났고, 프러포즈는 어떻게 했는지, 자식들은 왜 그렇게 많이 낳았는지 묻는다.

"이민사를 다룰 수도 있었고, 고통스럽고 안쓰러운 사연들도 많았지만 그런 건 저 말고도 잘 다루는 분이 많잖아요. 취재하면서 느낀 건 이들이 사랑에 대해 남다르게 표현하고 정말 고생스럽게 그곳까지 갔지만 누구보다 행복하게 살고 있구나 하는 거였어요."

송 감독은 "노예나 다름없는 지옥 같은 생을 살면서도 기적처럼 잘 살 수 있게 한 것은 사랑이었던 것 같다"고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지난 4월 말부터 한 달 동안 쿠바에 체류하면서 촬영한 총 분량은 60시간. 수교를 맺지 않은 사회주의 국가에서 촬영하는 것 자체도 힘들었지만 60시간을 1시간 30분 분량으로 편집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6개월 가까이 후반작업을 하며 공을 들였지만 아쉬운 점이 많다. 많은 사람의 더 많은 사연은 영화 흐름상 통째로 들어낼 수밖에 없었다. 어떤 사연들은 못내 아쉬운 마음에 어젯밤까지도 고민했다고 했다.

그중에는 '창세기'라는 소제목을 붙였던 긴 장면도 있다.

"할아버지 한 분은 세 번 결혼해서 애들이 16명이에요. 치매는 아닌데 연세가 높으시니 그 애들 이름을 기억 못 하시는 거예요. 할아버지가 조카와 '첫째가 누구였더라' 하면서 자녀 이야기를 죽 하는 긴 장면인데 빼서 아쉽죠."

송 감독은 지금 이 영화를 쿠바에서 틀게 되는 일을 고대하고 있다.

"잘 만들었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분들에게 영화를 보여 드리고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어요. 그게 가장 큰 소망이에요."

◇ '시간의 춤'은 = 1905년 300명의 한인은 돈을 벌 수 있다는 황성신문 광고를 보고 멕시코로 떠났고 다시 쿠바로 이주했다. 이들의 후손이 여전히 한인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그곳에 살고 있다.

배우 이하나가 차분하고 정감있는 내레이션으로 쿠바 여행을 이끈다. 체 게바라와 혁명,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으로 익숙한 쿠바는 생각보다 아름답고 생각보다 자유로우며 생각보다 낭만적이다.

쿠바 혁명에 참가해 혁명정부의 고위직을 역임하고 쿠바 혁명사에 이름을 올린 헤로니모 임이 아내 크리스티나에게 보낸 아름다운 연서는 배우 장현성이 읽는다.

칠레에서 10여년을 살았던 방준석이 음악을 맡아 쿠바의 감성을 전한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됐다.

12월 3일 개봉. 전체관람가.

eoyyi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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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