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대본에도 슬픈 아이라고 나와 있었어요. 감독님이 슬퍼도 견디라고 하셨어요. 그게 제일 어려웠어요."
아이들은 가끔 성인 연기자들도 울고 갈 만한 명연을 펼칠 때가 있다. 타고난 재능과 감독의 역량이 맞물릴 때 그렇다.
그런 점에서 영화 '여행자'에서 보여준 김새론과 우니 르콩트 감독의 호흡은 찰떡궁합이라 할 만하다.
르콩트가 만들어가는 건조한 분위기와 슬픔을 꾹꾹 누르는 김새론의 연기는 눈물을 참으려는 관객들의 의지를 기어이 꺾어놓고야 만다.
영화에서는 공허하지만, 실제 만나보면 초롱초롱 빛나는 눈빛을 가진 새론이는 연기를 잘했다고 칭찬하자 "감독님 덕택"이라며 해맑게 웃는다.
최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새론이는 "가끔 감독님이 화를 내셨는데 무서웠다"며 "감독님이 지적해 주는 대로 열심히 따르려 했다"고 말했다.
한불 합작 '여행자'는 칸국제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은 데 이어 네덜란드 씨네키드 영화제에서는 최고상인 심사위원상을 받았다.
지난 25일 폐막한 도쿄국제영화제에서도 최우수 아시아영화상을 수상하는 등 국제적인 주목을 끌고 있다.
시나리오의 치밀함, 감정 밑바닥까지 파고드는 카메라의 시선, 그리고 김새론, 고아성 등 주연 배우들의 호연이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이뤄낸 결과다.
이 가운데 자연스런 김새론의 연기는 일품이다. 이번이 첫 연기라는 점에서 더욱 놀랍다.
"제가 잘했는지 잘 모르겠는데, 사람들이 칭찬하니까 쑥스러워요."
새론이는 지난 2년간 여러 차례 영화, 드라마 오디션에 도전했다. 결과는 좋지 않았다. 가녀린 체구에 통통하지 않은 얼굴은 아역으로서 다소 불리했던 것.
"'뽀뽀뽀' 같은 어린이 프로그램을 했는데요, 어렸을 때는 잘 몰랐는데 8~9살 되고 나니까 갑자기 연기가 하고 싶어졌어요. 그때부터 오디션을 봤는데 잘 안 돼서 속상했어요."
풀죽은 새론이는 별 기대 없이 지난해 겨울 '여행자' 오디션을 봤고, 처음으로 합격의 기쁨을 맛봤다. 르콩트 감독과 많이 닮아서 합격한 것 같단다.
"사람들이 감독님이랑 저랑 닮았다고 그래요. 감독님이 좋아요."
기억나는 장면을 물어보자, 독한 소주를 들이켜는 장면을 언급했다.
"진짜 술을 반 잔 정도 마셨는데, 어지러워서 연기를 못 했어요. 나중에 물로 대신했어요"(웃음)
웃을 때마다 보조개가 쏙 들어가는 새론이가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은 마지막 장면이었다고 한다.
결말이지만 새로운 시작을 암시하는 이 장면은 영화에서 가장 근사한 장면 중 하나다.
"다른 건 창피한데요, 공항 장면은 괜찮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유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남다른 연기를 펼쳤지만, 역시 아이다운 구석도 많았다.
"힘든 거는 없었고, 정말 재밌었어요. 언니들이랑 촬영장 근처에 아지트도 만들었어요. 쉬는 시간에 창고에 있던 스티로폼 같은 걸로 화장실을 만들면서 놀았어요."
연기 이야기를 하자, 해맑게 웃으며 "최진실 언니" 이야기를 한다.
"정말 멋진 배우, 최진실 언니 같은 국민배우가 되고 싶어요."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제 초등학교 3학년 맞아!'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신중하다.
"그런데 안 될지도 몰라요. 꿈은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요. 어쨌든 자신 있게 연기할 거예요. 그리고 역할에 신중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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