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영화 '호우시절'은 허진호 감독의 변화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간 사용하지 않았던 핸드헬드(들고찍기)와 빠른 편집을 이용해 영화에 불안함과 속도감을 불어 넣었다. 여기에 남녀 주인공의 농익은 연애담과 코미디도 덧입혔다.
최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로맨틱 코미디로 봐 달라"며 헛헛한 웃음을 짓는 허 감독의 주문은 그래서 단순한 농담이라 보기 어렵다.
실제로 '호우시절'은 그의 영화 중 커트 수가 가장 많다. 무려 530컷이다. '봄날은 간다'가 200컷 남짓이니 그의 영화치고는 상당히 빠른 리듬감을 보여준 셈이다.
"카메라 부분에 변화를 주려 했어요. 영화에서 속도감을 보여주고 싶었죠. 현장에서 다소 힘들었지만, 익숙지 않았던 핸드헬드도 썼습니다. 좀 거칠어도 감정을 잘 담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카메라가 움직이는 것에 대해서 약간 부담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해보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타이밍을 놓쳤던 두 남녀가 중국 쓰촨성 청두(成都)에서 3박4일간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의 '호우시절'은 허 감독의 말처럼 웃음을 자아내는 장면들이 제법 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동하 역의 정우성이 있다.
"우성이는 감독의 정확한 지시가 있는 연기에 익숙한 배우예요. 저는 현장을 중시하는 편입니다. 어떤 특정한 상황을 주고, 배우들이 무언가를 만들어내도록 유도하죠. 그런 작업이 쉽지는 않지만, 우성이가 잘했습니다. 본인도 자신의 아이디어가 담긴 장면을 보면서 시사회 때 많이 웃더라고요."
허 감독의 장점은 인물들의 세밀한 감정의 흐름을 카메라에 잘 담는다는 점이다. 이번 영화에서도 그의 장기는 고스란히 드러난다.
동하와 메이(가오위안위안.高圓圓)가 기억의 퍼즐을 맞추며 알콩달콩 이야기하는 골목씬이나 동하가 메이에게 시인의 꿈을 포기한 이유를 말하는 비오는 장면, 그리고 대나무 숲에서 둘이 키스하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저는 비오는 씬이 제일 기억이 나네요. 인공 비의 상태가 좋지 않아 고민했는데, 새벽 2시께 진짜로 비가 오는 거에요. 정말 호우시절(好雨時節: 때를 알고 내리는 좋은 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웃음)
드라마가 약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수긍했다. "3박4일의 이야기죠. 어떤 큰 드라마가 생길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는 점은 인정해요. 그런 한계가 있죠."
전작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와 촬영 기법 때문에 허진호 감독의 팬들은 다소 실망할 수도 있는 영화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여러 시도를 하면서 재밌게 찍은 영화"라며 "전작들과 비교되는 건 감독에게 부담"이라고 했다.
"설렘을 느낄 수 있는, 그리고 영화를 보고 나서 미소를 띠며 극장에서 나설 수 있는 작품으로 기억됐으면 좋겠습니다."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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