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한미희 기자 = 상금 10억원이 걸린 서바이벌 게임쇼. 호주에서 만난 참가자 8명 사이에는 서로를 경계하는 어색한 시간이 흐른다.
적당히 속물적이고 자신감 넘치는 증권사 직원 최욱환(이천희 분)이 클라이언트와 연락할 일이 있다며 휴대 전화를 만지작거린다. 손에서 캠코더를 놓지 않는 프리랜서 다큐멘터리 PD 한기태(박해일 분)는 그에게 '휴대 전화 없는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다소 생뚱맞은 질문을 던진다.
영화 '10억'의 개봉을 앞두고 만난 배우 박해일은 "한기태가 내뱉을 수 있을 것 같은 대사였고 한기태의 캐릭터를 말해주는 대사"라고 말한다.
한기태는 호기심 많고 엉뚱하기도 하기도 하면서 꼬장꼬장하고 예민하지만 극한 상황에서도 인간성의 바닥을 내보이지는 않는 인물이다.
"그런 부분들이 제게 흥미를 일으켰고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가 됐죠. 한기태의 심리적 변화나 갈등은 보통과 달라요. 폭발적이지도 않죠. 숙제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해 보고 싶었어요."
물론 작품 속 인물을 100% 이해하고 연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절반 정도는 공감을 한다면 나머지 절반은 해볼 만하다는 생각으로 임한다는 그는 그 자신을 "말하기보다 남을 지켜보기 좋아하는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다큐 PD 역을 맡아 새로운 경험을 했다는 그의 눈이 갑자기 동그랗게 커진다.
"제가 캠코더로 다른 사람을 찍는 장면이 있는데 그때 제가 찍은 동영상이 실제 영화에 쓰였어요. 물론 촬영 전에 그럴 수도 있다고 (감독이) 언질을 주셔서 잔뜩 긴장하고 열심히 찍긴 했죠. 피사체이기만 했던 제가 찍은 장면이 화면에 잡히니까 흐뭇하기도 하고, 아주 독특한 경험이었어요."
서부 호주 퍼스의 사막과 밀림에서 진행한 촬영이 얼마나 고생스러웠는지는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화면에 고스란히 드러나고, "정말 힘들었다"며 "그게 화면에 보여서 다행"이라고 말할 때의 표정에서도 느껴진다.
"젊은 배우 여러 명이 모여 찍은 것도 새로운 경험이죠. 이야기 자체가 험난한 과정을 헤쳐나가는 것이다 보니 뭉쳐야 산다는 상황이 자연스럽게 주어졌어요. 만약 호주를 배경으로 로맨틱 코미디를 찍었다면, 돌아와서 이런 느낌은 아니었을 거예요."
그가 감정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장면으로 꼽은 대목은 절벽에서의 러시안룰렛 장면. 그는 "러시안룰렛이라는 것이 못 보던 장면도 아니지만 내가 하려니 정말 난해하고 낯설었다"고 말했다.
남이 죽어야 내가 사는 서바이벌 게임에서 자신을 희생하기로 결심한 상황이었기에 좀 더 폼 잡고 근엄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진땀 흘리며 어찌 보면 우스꽝스런 표정까지 만들어냈다.
"총을 잡아본 애도 아니고 영웅도 아니잖아요. 근데 사실은 촬영 들어가기 전에 혼자 저쪽 절벽에 가서 폼 잡으면서 해 보기도 했어요. 하하."
eoyy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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