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시청률이 30%를 넘었을 때는 마냥 신났어요. 그런데 35%까지 넘어서니까 좀 달라지더라고요. 부담감, 책임감이 밀려오면서 그때부터는 마음을 비워야 끝까지 잘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 21일은 이승기(22)에게 아마 최고의 일요일이 아니었을까 싶다. 오후 7시대 방송된 KBS 2TV '해피선데이-1박2일'이 시청률 30%를 넘어선 데 이어, 3시간 뒤 방송된 SBS TV 드라마 '찬란한 유산'의 시청률은 35%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사실 '찬란한 유산' 초반에만 해도 그는 연기력 논란에 휩싸였다. "1박2일의 인기를 업고 캐스팅됐다", "1박2일의 '허당'과 비슷하다"는 등의 지적이 나왔다. 그러나 그는 이를 3~4회 만에 극복하는 데 성공,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에게 더이상 '허당'이 아닌 '선우환'으로 우뚝 일어섰다.
24일 오후 경기 탄현 SBS 제작센터에서 이승기를 만났다. 그는 사랑받아 에너지 넘치는 밝고 건강한 청년의 모습이었다.
"멜로의 힘이 큰 것 같아요. 환과 은성(한효주 분), 준세(배수빈)의 3각 관계가 탄력을 받으면서 시청률이 더 오른 것 같아요. 저 자신도 요즘 대본을 받아보면 절로 떨려요. 감정 이입이 되니까요."
최근 멜로 라인을 강조한 '찬란한 유산'은 그중에서도 삐딱하고 까칠하기만 했던 환이 은성에 대한 사랑에 눈을 뜨면서 갈등하고 변해가는 모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멜로는 역시 어려워요. 아주 미묘한 부분까지 표현해야 하거든요. 손동작 하나, 눈 마주침 하나마다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느낌이 너무 다르죠. 그래서 다른 연기보다 더 준비도 많이 하는데, 연습을 딱히 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예요. 키스 연기를 앞두고 누구를 붙잡고 키스 연습을 할 수도 없잖아요. (웃음) 또 살면서 별로 할 것 같지 않은 애틋한 대사들을 하게 되는데 그런 대사들을 어떻게 하면 느끼하지 않게, 입에 붙게 하느냐도 관건입니다. 세세한 부분까지 정말 많이 고민하면서 연기하고 있어요."
그가 연기하는 환은 한마디로 아쉬울 것 없이 자라 고마움이나 미안함을 모르는 청년이었다. "특별히 갖고 싶었던 것이 없었다"는 대사처럼 그는 모든 것에 심드렁했고 심지어 고등학교 시절부터 자신만을 바라본 예쁜 후배 승미(문채원)에게조차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사실 현실에서는 말도 안 되죠. 승미 같은 여자를 단순히 동생으로 생각할 남자가 어디 있을까요.(웃음) 하지만 드라마니까 환은 승미를 그렇게 대할 수 있는 것 같아요. 환처럼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는 사랑도 결혼도 중요하지 않을 거예요. 부족한 것 없이 살던 녀석이 아버지의 죽음을 목도한 후에는 마음까지 닫아버리면서 무미건조하게 살게 된 거죠."
그런 환이 캔디형의 똑순이 은성에게 무너지고 있는 중이다. 자신도 근원을 알 수 없는 마음속의 끌림으로 그는 요즘 극심한 혼돈 상태다.
"환이는 요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입니다. 고민과 갈등이 심하죠. 그런데 이번 주말 촬영할 동해 크루즈 여행을 계기로 환도 은성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멋진 모습도 보여주게 되는데, 제가 잘 소화해낼지 모르겠어요.(웃음)"
어떤 질문을 던져도 마치 준비된 듯 막힘없이 대답을 쏟아낸 이승기는 '허당'도 아니었고 '까칠남'도 아니었다. 반듯한 '스마트 보이'였다. 특히 노래와 연기에 관한 대목에서는 영리함이 번득였다.
"사실 환은 처음에는 매력적인 부분을 찾아보기 어려운 캐릭터였어요. 단선적이고 툭하면 화를 내는 아이였죠. 하지만, 대본에다 조미료를 치는 것이 배우의 몫이라고 생각해 이런저런 장치를 조금씩 하기 시작했어요. 그랬더니 귀여운 구석도 생기고 좀 부드럽게도 보이면서 환의 매력이 살아나게 된 것 같아요."
2004년 1집을 내고 가수로 데뷔한 그는 당시 MBC TV 시트콤 '논스톱'에 얼굴을 내민 데 이어, 2006년 KBS 2TV '소문난 칠공주'를 거쳐 '찬란한 유산'에서 주인공을 꿰찼다.
"연기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어요. 하고 싶다는 생각도 못했고 소질이나 재능이 있다고도 생각 못했죠. 물론 지금도 재능은 없죠. 그런데 소속사 사장님이 데뷔 때부터 '언젠가는 연기를 병행하게 될 것'이라며 끊임없이 연기에 대한 대비를 시키셨어요. 연기는 절대 한순간에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꾸준히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죠. 시트콤에 출연할 때는 그야말로 최악이었어요. 대본을 해석하는 능력 자체가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부족할지라도 어떻게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름대로 준비를 해 조금씩 성과를 보면서 연기의 재미와 보람을 깨닫게 됐습니다."
그는 "왜 다들 드라마를 하고 싶어하는지 알겠다"는 말로 앞으로도 계속 노래와 연기를 병행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가수는 무대 위에서 폭발력을 갖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배우는 가상의 드라마에서 신비스럽게 그려지면서 환상을 줄 수 있는 것 같아요. 연기가 뭔지는 여전히 모르지만, 연기가 재미있는 것만큼은 확실해요."
"드라마 초반에 일어난 연기력 논란을 극복했다는 것이 무엇보다 뿌듯하다"는 그는 "이 드라마를 통해 '저 친구가 계속 연기를 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도록,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꼭 증명해 보이고 싶다"고 힘줘 말했다.
prett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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