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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뮌헨 이미륵기념사업회장 송준근씨
2009-06-03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사실은 나라에서 해야할 일인데 이렇게 제가 나섰습니다. 이미륵 선생님의 선비정신은 21세기 대한민국에 꼭 필요합니다. 우리가 선생님을 기려야하는 이유입니다."

노년의 신사 송준근(68)씨는 이렇게 말하며 안타까운 심경을 토로했다. 지난달 말 독일 뮌헨에서 날아온 송씨는 2일 인터뷰 내내 작가 이미륵과 관련된 각종 자료를 꺼내보이며 이미륵에 관해 하나라도 더 이야기하고 싶어했다. 송씨에게는 뮌헨 이미륵기념사업회장이라는 타이틀이 있다. 무보수 봉사직. 그는 뮌헨을 찾는 한국인이 있을 때마다 만사 제치고 뮌헨 근교 그래팰핑시에 있는 이미륵의 묘지까지 안내를 자청하는데, 이번에 중요한 '임무'를 띠고 고국을 찾았다. 이미륵 묘지의 영구 사용료를 모금하기 위해서다.

우리에게는 잊혀진 이름인 이미륵(1899~1950)은 경성의전 재학 시절 독립운동을 하다 중국으로 도피, 독일로 건너갔다. 뮌헨대에서 동물학 박사학위를 딴 그는 '압록강은 흐른다'를 비롯해 몇 편의 자전적 소설을 독일어로 발표해 현지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히틀러의 나치 독일에서 동양사상을 전파하며 휴머니즘을 구현해 독일인들에게도 많은 감동을 전해줬다.

지난해 11월 방송된 SBS TV 창사특집극 '압록강은 흐른다'는 바로 이미륵의 삶을 옮긴 드라마. 한독수교 125주년을 맞아 SBS와 독일방송사 BR이 공동으로 제작한 '압록강은 흐른다'는 영화로 재탄생해 4일 강변 CGV에서 개봉한다.

"저희 세대가 죽으면 아무도 이미륵 선생님의 묘지를 돌보지 않을 것 같아 죽기 전에 선생님의 묘지를 영구히 보존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는 8월 말에 묘지 사용 계약을 연장해야 하는데 아예 영구히 계약을 했으면 하는 마음에 그래팰핑시로부터 어렵게 허가를 구했어요. 원래는 7년, 14년식으로 계약이 이뤄지고 영구 계약이라는 것이 없는데 다행히 지난 5월 허가가 떨어졌어요. 이제는 돈만 마련하면 됩니다. 2만5천 유로(약 4천400만 원)가 필요합니다."

이미륵의 묘지는 생전 그의 후원자였던 뮌헨대 자일러 교수가 마련해 처음 25년치 사용료를 지불했고, 이후에는 이미륵 연구 권위자인 정규화 전 성신여대 교수 등이 30년치 사용료를 지불했다. 이 과정에서 처음에 공동묘지 내 제일 후미진 곳에 있던 이미륵의 묘지는 1995년 볕이 잘 드는 현재의 장소로 이장됐고, 송씨를 비롯한 동포들의 노력으로 올 8월까지 사용료가 지불됐다.

"1970년 광부로 독일에 처음 갔어요. 역시 간호사로 독일에 온 아내를 만나 결혼을 했고, 1982년부터는 뮌헨에 식료품점을 차렸어요. 먹고 사는 게 바빠 정신없이 지내다 1992년 우연히 이미륵 선생님에 대해 알게됐어요. 이렇게 훌륭한 분이 독일 땅에서 돌보는 이 없이 쓸쓸히 묻혀계시는 것을 보고 너무 안타까웠고 그때부터 다른 동포들과 함께 3월이면 선생님의 묘지에서 제사를 올리게됐어요. 처음에 7명이서 시작한 제사에 한때는 70여 명이 모이기도 했고 지금도 많이 모이고 있어요."

송씨는 "이미륵 선생님은 독일에 동양사상과 선비정신을 전파해 생전에 독일인들로부터 큰 존경을 받았던 분이다. 그 이후로도 지금껏 독일에 와서 그런 업적을 남긴 한국인이 없었다"며 "어린 나이에 독일로 왔지만 그 사회에 동화되지 않고 우리 것을 지키며 오히려 그들에게 전파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달 말까지 한국에 머물며 모금 활동을 펼칠 계획이다. SBS도 영화 '압록강은 흐른다'의 수익금 일부를 이미륵 기념사업회에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돈만 좀 벌었다고 1등 국민이 아니잖아요? 이미륵 선생님이 독일인들을 감동시켰던 정직과 신독(愼獨)의 정신이 지금의 한국인들에게 필요합니다. 우리 국민은 의식만 깨면 언제든 1등 국민이 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미륵 선생님의 기념사업을 활발히 벌이면서 선생님의 정신을 되살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송씨는 "묘지 영구 사용료가 마련되면 뮌헨에 이미륵 기념관을 건립하고 싶다. 죽기 전에 꼭 하고 싶다"고 힘줘 말했다.

"독일에 살면서 아버님의 제사를 모시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는데 이미륵 선생님의 제사를 모시고 묘지를 돌보면 지하에서라도 두 분이 만나 제 얘기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주변에서는 제가 너무 설친다고 비난하는 분들도 있지만 전 부모님을 모시는 마음으로 이 선생님을 모셨습니다. 부디 많은 분들이 선생님을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사진설명 : 위에서부터 송준근 씨, 독일 그래팰핑시에서 받은 이미륵 묘지 영구 사용 허가서, 그래팰핑시 공동묘지 내 이미륵 묘소, 이미륵 묘소의 묘비>>

pretty@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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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