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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사람 사는 모습, 재미있지 않나요?"
2009-05-06

(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 홍상수 감독은 그의 영화들과 참 닮았다. 그의 작품들에 웬만한 관찰력으로는 잡아낼 수 없는 비밀스러운 삶의 조각들이 여기저기 숨어 있듯, 홍 감독 역시 어눌한 듯하지만 통찰력 있고 생각할수록 유쾌한 말들을 풀어놓는다.

6일 서울 압구정의 한 카페에서 만난 홍 감독은 다른 영화감독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그만의 방식으로 영화에 대한 설명을 꺼내 들었다.

사람 사는 모습, 인간관계를 끊임없이 영화화하는 이유를 물었을 때 "그럼 제가 뭘 했으면 좋겠어요? 슈퍼맨 영화를 할까요?"라고 엉뚱하게 되묻더니, 캐릭터 설정에 관한 질문에는 기자가 들고 있던 수첩과 볼펜을 쓱 가져가더니 동그라미와 세모 그림을 그려 가며 '친절히' 설명하기도 했다.

가장 명쾌한 대답은 "홍 감독에게 가장 재미있는 건 뭐냐"라는 질문에서 나왔다.

"사람 사는 모습이 재밌지 않나요? 우리는 남들 얘기를 하면서 웃곤 하잖아요. 슬픈 모습도 있고, 어떨 때는 웃기고, 어떨 때는 아름답죠."

14일 개봉되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그린다. 인물들의 삶 또는 생활은 반복되고, 잠시 꼬였다가, 다시 흘러간다. 전작들에 비해 유머 감각은 더욱 살아났고 주인공들을 바라보는 시선에 여유도 늘어났다.

"아마도 내 영화를 보고 사람들이 웃는 건, 배열 때문인 것 같아요. 디테일을 선택하는 방식, 배열하는 방식 때문이겠죠. 나이가 들어서 제가 달라졌을 수도 있어요. 보는 사람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하자는 생각이 무의식중에 있었을 수도 있죠."

'오! 수정'을 비롯해 이번 영화에도 "짝만 찾으면 인생은 만사형통"이라는 표현이 직접적으로 등장하며, 여러 인물이 "새 삶을 찾았다"고 확언하기도 한다. 꾸준히 인간관계를 탐구해온 홍 감독의 철학인 듯도 하지만, 사람들이 내놓는 말과 행동의 상투성을 되레 꼬집는 것도 같다.

"짝을 제대로 찾으면 인생의 많은 불편함이 싹 사라지는 것도 사실이거든요. 그런 개인적인 생각도 있고요. 다른 한편으로 그 말이 사람들에게 상투가 됐을 수도 있어요. 화끈하게 단번에 삶을 변화하겠다는 건 인간이 버릴 수 없는 이상이고 희망 사항이니까요."

홍 감독의 독특한 촬영 방식은 유명하다. 촬영 전에 미리 시나리오 한 권을 완성해 놓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의 큰 줄기를 20∼30장에 정리해 두고, 하루 촬영분의 대본을 그날 아침에 쓴다. 그는 자신이 미리 의도하고 계산해 영화를 찍는 스타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많은 영화가 하나의 모습을 정해놓고, 그 모습을 향해 여러 디테일을 나열합니다. 반면, 저는 구심점 하나만 잡아놓고 모순되는 디테일들을 둥그렇게 모아 놓죠. 관객은 200개의 디테일에서 15개를 집어들 수도, 그와 다른 3개를 집어들 수도 있어요. 사람마다 서로 다른 것을 보게 되는 거죠."

비슷한 이야기들을 접었다 펼쳤다 하는 '대구(對句)' 구성을 즐겨 썼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서도 사용한 이유에 대해 홍 감독은 "대구란 단순하고 편리한 방식"이라고 간단히 설명했다.

"세상의 어떤 것을 비교해도 비슷하면서 다르고, 다른 줄 알지만 비슷하잖아요. 사람들에게는 삶을 논리적으로 정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지적 교만이 있는데, 그게 삶을 말랑하게 만드는 것을 방해하죠. 사는 게 비슷하면서 다르다고, 다르면서 비슷하다는 걸 A와 B를 비교하면서 보여주는 느낌이 좋아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올해 칸 국제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받았다. 그는 이에 대해 어디에서 상영되든 중요한 것은 영화를 보는 개개인일 뿐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

"내 영화를 영화제 프로그래머, 평론가, 기자, 관객 누가 보든 나는 그냥 '그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해요. 내가 '나 생긴 대로' 영화를 만들었듯이, 보는 사람들은 그들대로 영화를 보는구나, 생각합니다."

cheror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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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