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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정한 삶의 대변자

한국 단편영화의 현재를 말한다

<달세계 여행>

단편영화는 빠르고 정확하다. 다른 어떤 영화들보다 빠르게 사회적 변화를 감지하고 지금 우리가 무엇을 고민하는지 정확하게 짚어낸다. 올해 전주에 출품된 6백편에 가까운 작품들의 주제는 어디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주를 이뤘다. 그것은 어떤 자아상을 세워야 하느냐와 같이 추상적인 차원의 고민이 아니라 거주와 생계의 문제였다. 도시를 정비하고 좀 더 나은 주거환경을 조성하겠다는 개발 논리 속에 수많은 이들이 자신의 터전으로부터 쫓겨나고 고향은 사라지며 집은 무너진다. 자기의 선택과 상관없이 거주지로부터 내몰린 사람들의 이야기가 슬프도록 지겹게 반복되었다. 또 많은 주인공들이 불안정한 고용상태에서 불합리한 고용조건을 참으며 간신히 버티다가 결국은 실직상태로 되돌아갔다. 재개발의 풍경과 비정규직의 비애가 가장 빈번하게 화면 위로 떠올랐다 사라졌다. 현실이 기본적인 생존을 위협하는 상황 때문인지 사랑의 연애 역시 핑크빛이 아닌 잿빛에 가까웠다. 사랑을 논하는 연인들의 영상을 찾기도 힘든 일이었지만 간혹 등장하는 연인은 사랑의 설렘이나 찬란함을 보여주기보다 그것이 더 이상 불가능함을 말하기 위해 그곳에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한국 단편영화, 왜 길어졌나

이번 단편 경쟁작들은 하나같이 길다. 20분 이하의 작품은 <연착> 하나뿐이고 40분을 넘기는 작품도 두 편이나 있다. 출품된 작품 전체의 상영시간들을 놓고 보아도 결과는 별로 다르지 않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이제 거의 필름을 떠나 디지털로 안착하고 있는 단편 영화들의 매체 전환 현상과 관련이 되어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단편적 사고가 불가능한 현실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단편 영화만의 재기발랄한 상상력이나 순간을 포착하는 시적 감수수성보다는 뭔가 더 목소리를 내어 말해야만 할 것 같은 강박증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데 된 데에는 단편이라는 장르의 미학적 특성을 무시한 혹은 포기한 감독들의 탓도 있겠지만 미학보다 직접적 언설이 시급하도록 만든 현 사회의 심리적 압박감이 무시할 수 없이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사회를 반영하는 작품부터 컬트적인 영화까지

세 친구의 우정이 펼쳐지는 배경으로 재개발의 풍경을 고스란히 담아낸 <유랑시대>와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근로 문제와 그 위에 가해지는 폭력에 가담하게 된 이들의 상황과 심경을 담은 <우유와 자장면>은 우리 사회의 현재를 드라마 형식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경쟁부분에 오른 유일한 다큐멘터리인 <뉴스페이퍼맨: 어느 신문 지국장의 죽음>은 더 직접적으로 사회를 향해 목소리를 내는 작품이며 곡사 특유의 실험정신으로 똘똘 뭉쳐 있는 <자가 당착>은 어느 때보다도 강한 직설화법으로 정치적 발언을 하고 있다. 새터민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경적>은 단 하나의 사건을 통해 그들이 남한 사회에서 마주쳐야 하는 끔직한 단절감을 군더더기 없이 그려낸다. 이제 막 고향을 떠나 어른이 되려는 한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 <경북 문경으로 시작하는 짧은 주소>와 죽은 친구를 기억하며 그로 인한 상처를 치유하는 <연착> 그리고 두 인물이 주고받는 대사만으로 시종일관 작품을 긴장감 있게 끌고 가는 <여행극>과 상영작 중 가장 오락적인 요소가 가득한 <잠복근무>는 특정한 시대보다는 보편적인 정서와 소통하고 공감하려는 작품들이다. 영화를 위한 영화인 <달세계 여행>과 일종의 부조리극과 같은 <남매의 집>은 좀 더 마니아적이고 컬트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디지털은 더 많은 이들이 카메라를 들 수 있도록 했고 마치 글을 쓰듯 자유롭게 영화를 만들도록 했다.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을 정도로 많은 영화들이 말 그대로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더 좋은 영화들과의 만남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말이 많다고 그 말들이 다 의미있는 것은 아니듯이. 단편 경쟁작들은 숨 막힐 듯 쏟아지고 범람하는 영화의 바다 가운데서 우리가 한번은 만나 둘러보아야할 의미 있는 섬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