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 이뤄질 수 없는 사랑에 빠진 순수한 여자('동감', '로망스'), 동갑 제자와 티격태격 다투는 발랄한 여대생('동갑내기 과외하기'), 고단수 사기꾼('그녀를 믿지 마세요'), 까칠한 여배우 오승아('온에어'). 여기에 현장에서는 날아다니지만 사랑에는 어설픈 국가정보원 특수요원 수지가 추가됐다.
청순한 모습으로 연기 생활을 시작했지만 이제 김하늘(31)을 청순가련 여배우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다. 다양한 전작들을 꼽아보면 그에게 '팔색조'라는 별명이 괜히 붙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5일 서울 통인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작품을 고를 때는 "시나리오 전체의 재미가 가장 중요하다"면서 '온에어'를 끝내고 액션 연기에 도전하고 싶던 차에 '7급 공무원' 출연 제의를 받았다고 말했다.
"사실 배우가 어떤 배역을 원할 때, 딱 그런 역을 제의받을 수는 없어요. 시간과 기회가 어긋나니까요. 그런데 이번에는 앤젤리나 졸리의 '원티드'를 보면서 '내가 액션연기를 하면 어떨까' 궁금해하던 시기에 대본이 들어왔어요."
그는 '액션을 하면 어떻게 나올까' 궁금해 시작한 도전에서 뜻밖에 소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제트스키, 승마도 직접 소화해 꽤 깔끔한 액션을 선보이고도 더 잘할 수 있었다며 진심으로 아쉬워했다.
"덤블링 장면도 직접 하고 싶었는데 부상 때문에 시간이 부족해 못했어요. 찍을 때는 몸이 너무 힘들었는데 나중에 영화를 보니 그렇게 고생했는데 저거밖에 안 나왔나 싶어 아쉽더군요. 나중에 더 강한 액션 영화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7급 공무원'에서 돋보이는 것은 액션뿐 아니라 감 좋은 코믹 연기다.
그가 연기에 본능적인 감이 있고 머리도 영민한 배우라는 것은 상대 배우와 호흡을 맞추는 모습을 보면 눈치챌 수 있다. 신인이었을 때를 제외하고는 상대 배우의 카리스마에 밀린 적이 없었던 김하늘은 그렇다고 상대를 가려버릴 정도로 지나치게 앞서가지도 않는다.
'7급 공무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이번 영화의 웃음 코드가 수지보다는 재준(강지환) 쪽에 많이 실려있다는 것을 일찌감치 눈치챘고, 치고빠지며 노련하게 선을 지켰다.
"그런 감은 본능적으로 오는 것 같아요. 내가 관객이라면 이런 연기에 부담이 되지 않을까 늘 생각하죠. 상대 배우가 칠 때 빠져 주고, 빠질 때 쳐주는 게 필요해요. 랍스터 장면이 그런데, 재준이 새끼손가락을 들고 목에 냅킨을 두르면서 코미디를 하는데 나까지 무언가를 하면 화면이 부담스럽겠더라고요."
그가 연기한 캐릭터가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인물이었던 적은 없었다. 그가 연기한 인물들은 어디엔가 허점이 있는 인간적인 여자였다.
"제가 그런 캐릭터를 선호하는 것 같아요. '온에어'도 사람들이 악역이라고 걱정하는데, 저는 승아가 누구를 의도적으로 괴롭히는 악역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어딘가 안아주고 싶은 부분이 있는 아이죠. '7급 공무원'의 수지도 베테랑이지만 한없이 사랑받고 싶은 여자잖아요."
'7급 공무원'은 그에게 벌써 10번째 영화다. 그는 그동안 배우로서의 길을 "잘 밟아왔구나 싶어 뿌듯하다"고 말했다.
"예전에 '필모그래피가 알차다', '많은 관객이 김하늘의 팬이 아니더라도 이제까지 김하늘이 나온 영화를 대부분 봤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정말 감동적이었어요. 제가 좋아서가 아닌데도 제가 나오는 영화를 본다는 것은 제가 신뢰할 수 있는 배우라는 이야기니까요."
모델로 시작해 연예계에 데뷔한 지 14년째, 어느덧 30대의 문턱을 넘어선 그는 "여자로서는 나이 먹는 게 싫지만 배우로서의 가능성은 오히려 열려 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동안 제가 '로망스', '온에어'를 안 찍었다면 지금 '7급 공무원'을 찍을 수 있었을까요? 말뿐이 아니라, 실제로 가능성은 점점 열려 가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오히려 성숙한 역을 하기 어려웠어요. 아직 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요."
cheror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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