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마지막 촬영이 끝났을 때 그 어느 때보다 시원섭섭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만큼 이번 드라마를 촬영하는 과정이 파란만장했기 때문이죠."
KBS 2TV '꽃보다 남자'의 전기상(50) PD는 이렇게 말하면서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간 듯한 표정을 지었다. 지난 3개월간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던 '꽃보다 남자'를 만들어낸 그는 아직 여독이 풀리지 않아 피곤해보였지만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해낸 홀가분함을 내비쳤다.
1일 저녁 논현동 임피리얼팰리스 호텔에서 열린 '꽃보다 남자'의 종방연에서 전PD는 "객관적 시청률에 비해 훨씬 뜨거운 반응과 그것이 사회적으로 어떠한 현상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보면서 고맙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움도 생겼다"고 말했다.
'꽃보다 남자'는 높은 인기만큼 그늘도 많았다. 일본만화를 원작으로 하면서 폭력성과 선정성을 지적받고, 무리한 촬영 스케줄에 배우들이 잇따라 사고를 당했으며, 심지어 출연자 중 한 명이 자살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그는 "장자연 리스트에 내 이름이 들어있다는 루머에 참담했다"며 "장자연 사망 이후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서 내가 이 일을 계속해야하나 싶었고 드라마가 끝나면 이 일을 그만둬야겠다는 생각도 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드라마의 성공을 확신했나.
▲주인공들의 매력적인 캐릭터에 여성들이 좋아하는 사랑에 대한 판타지가 곁들여져 있어 사람들이 환호할 것으로 생각했다. 실제 배우들의 출중한 외모도 한몫했고, 다방면에서 최대한 많은 볼거리를 주려는 전략도 잘 맞아떨어진 것 같다. 의상, 음식, 음악, 소품, 장소 등 모든 면에서 전문가를 동원해 세심한 배려를 했다. 특히 음악에 많은 공을 들였고 잠을 못 자도 다양한 화면을 담기 위해 많은 장소를 찾아 촬영했다.
--신인을 기용하는 것에 대한 부담은 없었나.
▲물론 걱정을 많이 했다. 하지만 늘 작품을 할 때 철저히 오디션을 통해 검증된 배우들만 선택했기 때문에 믿는 것은 있었다. 공정한 오디션 과정을 거쳐 선발한 배우들인만큼 오디션 때 보여줬던 모습대로만 해주길 기대했다. 실제로 배우들이 그렇게 해줘 고맙고 기뻤다. 이민호와 김현중은 드라마를 통해 많이 성장했고, 김준도 처음이지만 자기 색깔을 보여줬다. 김범은 워낙 잘했고, 구혜선은 이 작품을 통해 연기자로서 인정받게 된 것 같다.
--구준표 역의 이민호가 가장 성공한 것 같다.
▲이민호는 원작 주인공의 이미지와 가까워 캐스팅했는데 구준표라는 캐릭터 자체가 선망의 대상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관심을 많이 받은 것 같다. 거기에 이민호라는 배우의 큰 키와 서글서글한 눈망울, 날렵한 콧대 등이 어우러져 좋은 반응을 끌어냈다.
--막장 드라마 논란에 시달렸다.
▲어떤 기준으로 보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것 같다. 우리는 철저하게 방송 심의 기준 안에서 드라마를 다루려 노력했다. 결코 폭력을 미화한 적 없다. 오히려 폭력과 왕따가 얼마나 나쁜지를 알려줬다고 생각한다. 또 서민이지만 귀족 사회에서 기죽지 않고 자기 목소리를 내는 잔디의 건강함을 부각시키려 했다. 폭력의 해악을 그리기 위해서 폭력이 등장한 것인데, 무엇을 말하려는가를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비판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그런 시선이라면 권선징악을 주제로 한 우리의 고전들도 다 막장이라는 비판을 받아야 할 것이다. 잔디가 왕따를 당해도 그에 굽히지 않는 모습, 또 그런 그를 따뜻하게 감싸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다.
--촬영 중 유독 사고가 많았다.
▲쫓기는 일정 때문에 벌어진 일들인데 참 마음이 아팠고, 사고 소식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철렁했다. 나름대로는 철저하게 안전사고에 대비했다. 마지막회에서 잔디가 물에 뛰어드는 신도 그날 물의 온도가 너무 차서 부랴부랴 대역을 기용했고 물속 신은 실내로 옮겨 촬영했다. 하지만 다양한 화면을 보여주기 위해 많은 장소를 이동하다 보니 교통사고가 종종 일어났던 것 같다. 또 방송 펑크만큼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배우(구혜선)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한 회 결방을 하는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드라마 도중 출연 배우가 자살을 했다.
▲촬영하다 소식을 듣고 새벽에 배우들과 함께 빈소를 찾았는데 참담했다. 무척 추운 날이었는데 그런 날 차갑게 주검이 됐다고 생각하니 그 기막힌 심정을 뭐라 표현할 말이 없었다. '세상에 이런 일도 있을 수 있구나' 싶었다. 고인과 마지막 촬영한 날이 2월5일 무주 스키장이었는데 무척 밝은 표정이었고 전혀 어려움을 표현한 적도 없었기 때문에 더욱더 가슴이 아팠다.
그런데 그 뒤로 벌어지는 일들에 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까지 고인의 명예에 먹칠을 하는 일들이 벌어져야 하나 싶었고 이제 그만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또 고인은 물론이고 같이 일했던 사람들과 사랑하는 가족들의 명예를 손상하는 일들이 버젓이 일어나는 것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일명 '장자연 리스트'라는 것에 내 이름도 있다는 루머가 돌았는데 그것은 살인행위와 다를 것이 없다. 이런 행위를 보면서 내가 이 일을 계속 해야 하나 싶었고, 이 드라마가 끝나면 그만둬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드라마를 마치며 아쉬움이 있다면.
▲우리의 드라마 제작 여건이라는 것이 너무나 열악해 시간을 충분히 갖고 촬영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나 역시 촬영 한 달 전에 연출자로 결정돼 그때부터 부랴부랴 준비를 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아쉬운 점이 많을 수밖에 없다. 다음에는 더 많은 준비를 해 촬영을 하고 싶은 생각뿐이다.
prett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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