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 "처음에는 일부러 적은 상영관수로 개봉하고 점점 관객들의 힘을 빌려 상영관수를 늘려나가기로 했어요. 결국 관객의 힘으로 여기까지 온 거죠."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 '워낭소리'의 프로듀서 고영재 PD가 설명한 배급 전략이다.
'워낭소리'의 흥행세는 무서울 정도다. 지난달 15일 개봉한 이후 20일 만에 10만명을 돌파하더니, 지난 주말까지 26만명을 동원하면서 '원스'(22만5천명)의 흥행 기록을 깨뜨렸다. 웬만한 상업영화도 오르기 힘든 박스오피스 3위까지 차지했다.
관객의 감동을 이끌어낸 것은 이충렬 감독의 연출력이겠지만, 빈틈없는 배급 전략을 세워 관객들을 극장으로 이끈 것은 고영재 PD다. 2007년 '우리 학교'에 이어 '워낭소리'까지 대박을 터뜨렸으니 '독립영화계 마이더스의 손'이라 부를 만하다.
고 PD는 9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현재의 극장 배급방식을 돌파하기 위해 스크린수를 조절해 개봉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독립영화는 일부 예술영화 전용관에서 작게 개봉하고, 메이저 배급사가 배급하는 상업영화가 와이드 릴리스(대규모 개봉) 방식을 쓰는데 그나마 첫 주 반응이 시들하면 바로 종영해 관객 선택을 받을 기회조차 갖기 힘들다. 영화사에서 울며 겨자 먹기로 첫주에 무리하게 배급ㆍ마케팅 비용을 쏟아부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일부러 작게 개봉해 일정 좌석점유율을 유지하다가 점차 늘려나갈 생각이었습니다. 반응이 좋자 영화를 달라는 곳도 많았지만 '워낭소리'의 가치를 먼저 알아봐 준 극장들 위주로 상영하고 싶었고, 디지털 영화이니 장비가 갖춰진 곳에만 영화를 배급했어요."
이 전략은 적중했다. 7개관으로 작게 출발한 덕에 배급ㆍ마케팅 비용을 무리하게 쓰지 않을 수 있었고, 40~50%의 높은 좌석점유율을 유지할 수 있었다. 작품이 좋고 감동적이라는 입소문은 점점 퍼져 개봉 4주차였던 지난 주말상영관수가 73개로 늘어났지만 좌석점유율은 48.44%로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순제작비 1억원에 총제작비 2억원. 70여개관에 내걸리는데 배급ㆍ마케팅 비용이 1억원밖에 들지 않은 것이다.
고 PD는 '워낭소리' 흥행은 관객들의 사회문화적 욕구가 분출된 결과물이라고 풀이하면서 "'워낭소리'는 하나의 사회문화 현상"이라고 강조했다.
"지금은 관객이 영화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극장이 관객에게 영화를 강요하는 시스템이죠. 그걸 관객들도 싫어했던 거죠. 관객은 삶을 천천히 되돌아보고 감동을 주는 영화를 바라는데, 한동안 액션 또는 웃음 만 있는 한국영화들이 주를 이뤘고요."
그는 경제 불황도 '워낭소리'에 사람들의 발길이 몰리는 또 다른 이유라고 지목했다.
"사회 돌아가는 속도가 빠르고 효율성만 강조하는데 경제 상황은 좋지 않아 세상이 각박해졌죠. 그러니 우리를 여기까지 오게 해준 농촌과 부모님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게 아닐까요."
고 PD가 '워낭소리' 제작 과정에 처음부터 참여했던 것은 아니다. 그가 맡았던 다큐 영화 '우리 학교'가 흥행에 성공한 뒤 이런저런 독립영화에 조언해달라는 요청이 잇따랐고 '워낭소리'도 그 중 하나에 불과했다.
그러나 당시 '워낭소리'를 맡은 제작사 사정이 어려워져 개봉이 요원해지자 고 PD는 "그동안의 다큐 영화에서 보지 못했던 몇몇 훌륭한 장면들"을 외면하지 못하고 사비를 들여서라도 개봉시키기로 결심했다.
"사운드 믹싱, 색 보정, 음악 저작권 문제 등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잔뜩 남아있었어요. '우리 학교'로 벌었던 돈을 털어넣고 은행 융자를 받고 누님께도 돈을 빌려서 개봉했죠. 아마 이 영화가 잘 안 됐으면 힘들었을 겁니다."
'워낭소리' 상영관은 이번주 90여개로 더 늘어날 예정이다. 고 PD는 국내에 디지털 상영관이 한정돼 있기 때문에 그보다 늘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종 관객수는 얼마나 될 것 같은지 묻자 그는 "극장에서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다"고 답했다.
"처음 목표는 '원스'였어요. 상영관을 조금씩 늘리면서 3개월 정도 길게 가면 '원스'를 넘어서지 않을까 했죠. 그런데 이렇게 빨리 달성해버린 겁니다.(웃음) 90여개관에서 1주일에 20만~25만명이 다녀간다고 하면 100만명도 가능하겠지만, 멀티플렉스에서 얼마나 오래 걸어줄지에 달려 있겠죠."
<<사진 설명 = 영화진흥위원회 공정경쟁환경조성특별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해 지난달 29일 설명회에 나섰던 고영재 PD>>
cheror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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