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 배우 이정재(35)는 꾸준히 작품활동을 해오면서 늘 반듯한 이미지를 유지했다. 액션 영화에서는 정의로운 군인이거나 형사였고 멜로에서는 사랑하는 여자를 조용히 지켜주는 애인이거나 남편이었다.
'1724 기방난동사건'에서 그는 확실히 변신을 꾀했다. 조선시대 주먹깨나 쓰는 뒷골목 한량을 연기한 것. 반듯한 얼굴은 영화 도입부에서부터 과장된 컴퓨터그래픽(CG)을 입고 과하게 일그러졌고 미녀의 옆자리에 있는 것이 늘 당연했던 흔들림 없는 표정은 예쁜 기생 앞에서 침을 흘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26일 오후 만난 그는 이런 변신에 대해 "원래 장르, 캐릭터, 스케일을 잘 가리지 않는 스타일"이라는 말로 설명을 대신했다.
"'이정재가 코믹 사극을 해?'라는 분들도 있었죠. 하지만 그분들은 밖에서 보는 거고, 저는 영화를 안에서 보는 사람이잖아요. 시나리오를 알고 찍는 것이고 믿음이 있으니까요. 저는 작품을 고를 때 이야기 구조가 잘 잡혀있고, 캐릭터가 이야기에 잘 붙어있고, 생동감이 살아있는지를 보거든요."
이번 영화는 액션물이기는 하지만 '태풍', '흑수선', '태양은 없다' 등 그가 해온 액션을 생각하면 강도는 그리 세지 않다. 이정재 역시 액션 자체보다도 '1724 기방난동사건'만의 독특한 스타일이 더 고민이었다고 말했다.
"전례가 없다는 점이 힘들었어요. 과장된 연기에 CG가 많이 입혀지고, 라스트 신에서는 갑자기 달나라에 가서 싸우는 듯한 느낌도 들잖아요. 시나리오에서 상상했던 것보다 익살스러운 모습이 많이 들어갔죠. 사실 찍을 때는 훨씬 더 진지했어요. 하지만 무거운 부분이 버려져서 영화에 만화 같은 재미가 살아났죠."
청춘의 덫에 빠진 캐릭터를 연기한 '젊은 남자'(1994)로 그해 국내 신인남우상을 휩쓸었던 이정재는 어느덧 데뷔한 지 15년이 지나 30대 중반이 됐다. 배우로서 뜻했던 길로 잘 걸어온 것 같은지 묻자 그는 "욕심처럼 다 되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감사하고 있다"고 답했다.
"더 다양한 장르, 다양한 캐릭터를 하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해 아쉬움이 있어요. 하지만 나름 감사하고 있죠. 저는 성취감을 어떤 커다란 것에서 느끼지는 않습니다. 물론 좌절이나 슬럼프가 올 때도 있지만 작은 것들을 하나 하나 이루다 보면 열정이 더 불붙는 것이고, 그만큼 성취감도 오는 것이니까요."
연기자로서는 머릿속에 어떤 큰 그림을 그려놓고 있는지 묻자 그는 "더 사실적인 연기, 더 깊이 있는 연기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젊음을 발산하는 매력보다는 인물의 내면에 있는 깊이를 담을 수 있는 연기자가 돼야 할 때죠. 예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 이제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아요. '기방난동사건'을 찍고 이런 얘기를 하게 되니 웃기긴 하지만요. (웃음) 일단은 이번에 가벼운 역을 해봤으니 다음엔 좀 더 진지하고 무게있는 작품을 생각하고 있어요."
cheror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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