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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대중문화계> ③일감 찾는 연예기획사
2008-11-11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불황은 밑에서부터 올라온다. 이미 조ㆍ단역 배우들부터 이번 겨울이 혹독할 것이라는 것을 뼛속 깊이 느끼고 있고, 군소 매니지먼트사들도 당장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 한숨을 내쉬고 있다.

덩치가 크다고 안심하고 있는 상황도 아니다. 이미 한 굴지의 대형 매니지먼트사가 소속 연예인들에게 불필요한 경비 지출을 자제해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낸 것으로 전해졌고, 스타들도 출연하려던 작품이 투자 부진으로 무산되는 등 출연작 선정에 난항을 겪고 있다.

◇매니지먼트계 "돈 나올 데가 없다"

불황이 가장 직접적이고 빠르게 영향을 미친 쪽은 가수들이 뛰는 일명 '행사'다. 가수들에게는 방송에 얼굴을 내미는 것은 교통비 정도 버는 수준. 그들에게 주 수입원은 각종 행사 무대에 서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대기업과 지방자치단체가 주최하던 행사들이 상당폭 축소되면서 가수들이 가장 먼저 경기 불황을 체감하고 있다. 행사의 꽃은 노래를 통해 흥을 북돋우는 가수인데, 그들을 부를 여력이 안된다는 것.

한 가요 매니저는 "그나마 있는 행사에도 캐스팅되지 못할까봐 가수들이 자진해서 출연료를 500만 원씩 깎는 움직임"이라고 귀띔했다.

그래서 배우나 가수를 불문하고 매니지먼트사들은 "돈 나올 데가 없다"며 아우성이다. 출연료가 낮아지다보니 소속 연예인을 어렵게 출연시키고도 매니지먼트사 몫으로 남는 돈은 없는 경우가 생기는 것. 기름값과 코디네이터ㆍ로드 매니저의 인건비를 떼어주고 나면 매니지먼트사는 오히려 손해를 보게 돼 출연을 시켜야할지 말아야할지도 고민인 상황이다.

한 배우 매니저는 "뭐라도 출연을 시켜야하지만 출연을 시키는 순간 회사에 손해가 가게 되니 정말 난감하다"고 전했다.

또 미래에 대한 투자로 신인을 키워야하지만 신인을 세울 작품이나 무대가 턱없이 적어져 장기적인 계획도 세우기 힘들다.

나무액터스의 김종도 대표는 "결국 IMF 때로 또 돌아가는 것 아니겠는가. 그나마 기성 연예인들은 어느 정도 버티겠지만 신인들을 키우기는 너무 힘든 상황이 됐다"며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비전이 없다"고 말했다.

◇"사실 제 출연료 그렇게 높지 않아요"

방송 3사가 출연료 상한선을 회당 1천500만 원으로 정하자고 의견을 모으면서 천정부지로 치솟던 스타들의 출연료가 낮아질지 주목되고 있다. 스타들 입장에서 아직까지 스스로 출연료를 낮추려고 하지는 않지만 경제 불황이 이어지면 최소한 출연료가 동결되거나 낮아질 전망이다.

이런 와중에 이미 중년 연기자들과 조연급에서는 출연료 인하 협상이 물밑에서 진행 중이다.

한 방송사 간부는 "요즘 중견 연기자들로부터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내 출연료는 알려진 것보다 낮다'는 요지의 전화가 많이 걸려온다"고 밝혔다.

이는 영화계 불황으로 연기자들이 너도나도 드라마로 몰려들어 공급 과잉이 빚어지고 있는 것도 한 원인이다.

이 간부는 "제작 편수가 줄어들어 중견 연기자들부터 출연료를 낮춰서라도 어디라도 출연해야하는 상황이 됐다. 이는 조ㆍ단역들도 마찬가지"라며 "그러다보니 대외적으로는 얼마라고 해놓고 실제로는 그보다 낮은 가격에 사인을 하는 배우들이 많아졌다"고 밝혔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배우들이 높은 출연료를 숨기기 위해 이면 계약을 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

그나마 출연료를 낮춰서 캐스팅이 되면 다행이다. 그렇지 못한 배우들은 예능 프로그램 등 다른 쪽으로 눈을 돌려야 하는 상황이 됐다.

실제로 최근 들어 예능 프로그램에 신선한(?) 얼굴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배우와 가수들이 너도나도 예능 프로그램 게스트로 몰려들면서 게스트 선정을 놓고도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CF 스타가 아니면 버티기 힘들다

최근 김아중, 류승범이 캐스팅된 영화 '29년'의 제작이 투자 부진으로 무기한 연기됐다. '미녀는 괴로워'의 성공 이후 영화계, 드라마계가 김아중을 잡기 위해 혈투를 벌였지만 그가 2년 만에 선택한 영화가 투자를 못 받아 제작을 못하게됐다는 것은 연예계 불황의 심각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KBS 2TV '엄마가 뿔났다'로 인기를 얻었던 배우 신은경이 차기작으로 MBC TV 아침 드라마 '하얀 거짓말'을 선택한 것 역시 이런 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아침 드라마는 소위 잘나가는 배우에게는 '최후의 보루' 같은 것. 신은경의 결정은 30대 후반 여배우의 자연스러운 선택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제작 편수가 줄어든 상황에서 작품 선택의 폭이 그만큼 넓지 않기 때문에 나온 결과다.

연예계 관계자들은 "지금처럼 제작 편수가 줄어든 상황이 지속되면 몇몇 CF 스타를 제외하고는 어떤 배우도 자존심만을 내세울 수 없는 처지가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과거에도 스타들은 "출연할 작품이 없다"는 말을 종종 했지만 그것은 자신의 취향에 맞는 작품이 없다는 뜻. 하지만 요즘 스타들은 말 그대로 작품이 없어 출연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태원엔터테인먼트의 정태원 대표는 "요사이 배우들로부터 제발 영화 좀 제작해달라는 전화가 자주 온다. 다들 출연작이 없어 고민인 모양"이라며 "불황이 심각하다"고 전했다.

pretty@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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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