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강종훈 기자 = "요즘 춥고 각박한데 따뜻하고 재미있게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가 달라졌다. 그동안 그의 드라마가 '희로애락' 중 노여움 혹은 슬픔에 시선을 두고 슬프고 고달픈 삶을 그렸다면 이제 기쁨과 즐거움에 시선을 맞추고 있다.
KBS 2TV 월화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연출 표민수)은 실제로 노 작가의 기존 드라마와 비교하면 한결 밝아졌다. 이는 송혜교와 현빈이라는 '샤방샤방'한 스타들이 출연하기 때문 만은 아니다. 드라마 제작 현장이라는 트렌디한 배경 때문만도 아니다. 무엇보다 달라진 건 노 작가 자신의 마음이었다.
◇"희로애락 골고루 담고 싶어"
노 작가는 "과거에 함몰되기보다는 현재 내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가 중요하다"며 "'내가 젊은 날에 그랬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에 극중 인물들도 그렇게 살았으면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그들이 사는 세상' 속 인물들이 비극적인 상황에서도 쓰러지지 않는 것은 노 작가가 극중 지오(현빈)와 준영(송혜교)에게, TV를 보는 젊은이들에게 갖는 바람인 듯하다.
"이번 등장인물들은 어떤 드라마보다 비극적입니다. 예전에는 그 비극에 마음이 아프고 어떻게든 해결해주고 싶었는데 요즘은 '다 그렇게 살지 않니'라고 생각해요. 그러다 보니 부정적인 면 때문에 울고불고하기보다는 긍정적인 면을 바라보게 됩니다."
이런 변화에 대해 그는 "전에는 별 것 아닌 것에 받은 상처에 포커스를 맞췄다면 지금은 상처가 아니라 기쁨이 우선"이라며 "그런 게 보일 때 드라마도 재미있고 편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동안 드라마가 무거워서 너무 괴로우니까 저도 싫더라고요. 희로애락이 같이 있는 드라마를 쓰고 싶은데 희와 락 부분을 작가로서 표현을 안 한 게 아니고 못 했어요. 나이가 들수록 왜 그렇게 기쁘고 즐겁게 살지 못했나 느껴요. 그럴 일이 없는 게 아니라 못 느낀 거죠. 드라마뿐 아니라 인생에도 마이너스였죠."
◇"시청률 늘 생각해요"
화려한 제작진과 출연진에 '그들이 사는 세상'은 방영 전부터 큰 기대를 모았다. 평소 시청률에 구애받을 것 같지 않은 노 작가도 이번에는 기대를 했을까.
"시청률요? 늘 생각했어요. 열개하면 열개 다요. 단막극은 예외지만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좋아하면서도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다 전달할까 늘 고민하죠. 많은 사람이 모여서 일하는데 당연히 힘들었던 만큼 성취가 있으면 좋잖아요."
'그들이 사는 세상'은 '명품 드라마'라는 호평을 받고 있지만 시청률 면에서는 MBC '에덴의 동쪽'과 SBS '타짜'가 자리를 단단히 잡은 상황에서 후발주자로 출발해 고전 중이다.
"사람 힘으로 안 되는 게 있음을 느껴요. 서운하기도 하지만 서운함이 지나쳐서 작품이 망가지는 어리석은 짓은 안 해야죠. '전화위복'이란 말을 좋아하는데 지금 최선은 끝까지 대본을 들여다보는 거죠."
'마니아 드라마'라는 평가에 대해서는 "더 편하게 볼 수 있도록 쓰겠다"고 답한다.
"사람들이 내 작품을 시청할 때 집중해서 안 보면 힘들다는 말을 해요. 어느 정도 준비를 하고 봐야 한다는 것이죠. 자연스럽게 볼 수 있도록 내가 노력해야죠. 시청자가 노력하면 힘들잖아요."
◇"가장 취재 많이 한 드라마"
이번 드라마의 배경인 방송국은 그곳 사람들은 뭔가 다르다는 선입견을 깨고 사람은 모두가 똑같다는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바탕이다.
"내가 방송국을 좋아하다 보니 그 사람들의 디테일한 면이 재미있어서요. 인간군상을 축약해서 보여줄 수 있는 곳이고요. 모든 사람이 거기서 거기고 사는 모습도 거기서 거기라는 이야기가 하고 싶었어요. 행복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도 생로병사 희로애락에서 벗어날 수 없죠. 보통 방송국 사람들은 특별한 집단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들도 상처는 똑같고, 그런 편견들이 없어진다면 사회가 더 재미있지 않을까요."
'드라마판'이라면 눈 감고도 훤히 들여다볼 것 같은 노 작가가 쓰는 드라마 이야기. 하지만 그는 오히려 "이번처럼 취재를 많이 한 드라마도 없다"고 말했다.
"취재를 꼼꼼히 했어요.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교만이더라고요. 다 아는 줄 알았는데 심지어 배우들이 분칠을 어떻게 하는지도 제대로 몰랐어요. 상당히 연구할 게 많더라고요. 이번 작품은 취재하면서 '많은 것을 모르고 살았네' 반성했어요."
◇"연기 논란 싹 들어갈 것"
그가 6년 만에 작품을 통해 다시 만난 동반자인 표민수 PD, 그리고 주연을 맡은 송혜교와 현빈에 대한 생각도 들었다.
"표민수 PD는 대본 그대로가 아니라 내 것 플러스 알파를 보여주니 덕을 많이 보는 것 같고 미안해요. 그래서 대본을 조금이라도 더 보려고 해요. 13년째 보고 있는데 정말 좋은 파트너죠. 서로 좋은 점만 보는 게 아니라 단점에 대해 조언을 할 수 있는 친구이자 스승이라서 더 좋아요."
주연 배우들에 대해서도 "한국의 큰 배우가 될 사람들이고 인간적으로도 상당히 성숙했다"며 애정이 듬뿍 담긴 칭찬을 전한다.
"시청률이 안 나오면 배우들 60-70%는 바뀌거든요. 힘들어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서 어떻게 할 거냐는 다른 문제잖아요. 그 친구들이 '더 열심히 하겠다'고 문자를 보냈는데 어린 배우들이 그러기가 쉬운 게 아니죠. 26살 배우들이 더 어떻게 잘해요. 5부 부터는 훨씬 좋아진 것을 느껴요. 연기논란은 싹 들어갈 거에요. 인기는 오르막 내리막이 있지만 연기는 오르막 내리막이 드물어요."
doubl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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