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병규 기자 = "세상은 자꾸만 엉망이 되어가고 사람들은 점점 더 외로워하는 것 같아요."
6일과 13일 연작 영화인 '중경'과 '이리'를 차례로 개봉하는 장률(46) 감독은 4일 인터뷰에서 스스로를 "우울한 놈"이라고 표현했다.
상처받고 외로운 사람들의 이야기에 왜 이렇게 관심이 많은지를 묻자 감독은 "어찌 보면 모든 사람들은 다 외롭고 우울하다. 자꾸 외로워지는 건 인간 세상이 점점 엉망으로 나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도 정말 우울한 사람이다"는 답변을 들려줬다.
옌볜대 중문학 교수에 소설가 출신이라는 독특한 이력을 가진 장 감독은 지난 수년간 국내 영화계에 등장한 신진 감독 중 몇 안되는 작가 감독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단편 데뷔작 '11살'(2001년)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그는 2번째 장편 '망종'(2005년)이 칸영화제 비평가주간의 프랑스독립영화배급협회(ACID)상과 이탈리아 피사로영화제 대상을 타며 호평을 받았다. '이리'는 최근 열린 이탈리아 로마영화제의 경쟁부문 상영작이기도 하다.
그의 4번째와 5번째 장편 영화인 '중경'과 '이리'는 1977년 이리(현재의 익산)역 폭발사고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감독은 원래 중경(충칭ㆍ重慶)과 익산 두 곳의 이야기를 한 영화에 담을 생각이었지만 2편의 영화로 나눴다.
장 감독은 중경과 이리를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공간"이라며 "오히려 이리가 중경의 미래라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인구 3천만명의 중경은 욕망이 끓고 있는 도시에요. 이리는 한때는 활발한 도시였지만 이제는 폐허처럼 황폐해진 도시죠. 중경이 곧 터질 것 같은 느낌을 가지고 있으니 이리는 폭발한 뒤의 중경인 셈입니다. 폭발하기 전의 도시나 폭발한 후의 도시나 사람들은 똑같이 상처받고 방황하고 또 외로워하니 이런 점은 공통점이 되겠네요."
감독의 말처럼 다른 도시에 살고 있지만 등장인물들은 한결같이 외로워하는 사람들이다. '중경'에서 여주인공 쑤이(거쿼이)의 아버지는 매춘부를 상대하고 경찰관(허궈펑)에게 몸을 허락하지만 결국 절망에 빠지고 '이리'의 진서(윤진서)는 이리역 폭발사고 당시 엄마 뱃속에 있다가 그날의 상처를 간직한 채 혼자 살아남았다.
저마다 우울한 상황에 빠져있지만 감독은 "하지만 영화 속 인물들은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고 했다.
"쑤이는 새 출발을 하러 한국에 옵니다. 물론 한국에 와서도 방황을 할 것이고 상처도 여전히 간직하겠죠. 하지만 그래도 한국에 온다는 것 자체는 변화를 추구하는 것인 만큼 희망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서 역시 없어진 듯해도 영화 마지막에 다시 돌아오잖아요. 외롭고 힘들어도 결국 살아나가는 것이니까요."
정식으로 영화 교육을 받은 적 없는 그가 마흔 살이 다 돼 첫 영화를 만들게 된 것은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벌인 논쟁이 계기가 됐다. "아무나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그의 주장에 친구들이 반론을 제기하자 "내가 직접 증명해 보이겠다"며 '11살'을 만들었고 이 영화는 베니스영화제 단편경쟁부문에 오르는 성과를 거뒀다.
"여전히 영화를 아무나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감독은 "술 취해서 했던 이야기이긴 하지만 여전히 맞는 얘기다"고 잘라 말했다.
"중국에서는 아직도 영화를 꼭 영화학교 나온 극소수만 만드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거든요. 근데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죠. 다른 일을 하는 누구라도 영화를 만들 수 있어요. 가장 중요한 것은 영화에 무슨 생각을 담아내는가 아니겠어요?"
bk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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