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 2005년 가을에 개봉했던 민규동 감독의 영화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에는 주인공인 정신과 의사 유정(엄정화 분)이 가방에 만화책 '서양골동양과자점'을 넣고 다니는 장면이 나온다.
3년이 흐르고 민규동 감독은 이 만화를 영화로 만들었다. 내달 13일 개봉하는 '앤티크-서양골동양과자점'이다. '앤티크'는 케이크숍을 배경으로 저마다 비밀스러운 상처를 안고 있는 네 남자가 펼치는 이야기다.
30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민 감독은 '비밀'과 '상처'가 영화를 만들면서 계속 지녀온 자신의 화두라고 설명했다.
"비밀, 상처, 치유, 성장담이라는 '앤티크'한 주제는 제가 평생 가지고 갈 것들이죠. 누구나 장애를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장애를 넘어서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죠. 사건이 해결되도 상처는 사라지는 게 아니잖아요. 그 상처를 행복하게 안고 갈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화려한 촬영과 빠른 편집을 통해 영화만의 색깔을 살렸지만 그 안에 개성있는 캐릭터와 과장된 대사, 행동 등 만화적인 분위기를 충분히 살려냈다. 원작의 묘미를 살린 장면들과 캐릭터를 향한 애정어린 시선에서 민 감독이 원작의 열렬한 팬이라는 사실을 쉽게 눈치챌 수 있다.
그는 원작이 마음에 들었던 이유로 요리와 성에 대한 관심이 일치했다는 점을 먼저 꼽은 뒤 인생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각을 칭찬했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가 식욕과 성욕이잖아요. 이 두가지를 다루는 데 관심이 많았어요. 그리고 원작에 은유가 참 많아요. 인생이 녹아 있죠. '서양골동양과자점'뿐 아니라 다른 작품에도 일관된 시각이 있어요. 주인공들이 아둥바둥, 티격태격하면서 절박함을 표현하는 거죠. 그런 위트가 마음에 들었어요."
'앤티크'는 판타지에 가깝게 느껴질 정도로 만화적인 설정으로 출발해 유쾌한 드라마로 이어지지만 유괴 사건을 둘러싼 스릴러가 중요한 축이다. 상처입은 사람들의 치유와 성장이라는 영화의 궁극적인 주제 역시 이런 틀 속에서 진행된다.
"예쁜 남자 4명이 케이크숍에서 일한다는 게 현실적인 설정은 아니죠. 이런 이야기 속에 당대 한국사회의 화두가 어필이 될까, 혜진ㆍ예슬양 사건 같은 직접적인 사례도 있는데 '앤티크'가 가치있는 이야기가 될 수 있을까, 저 역시 고민했고 관객 반응이 궁금합니다."
그러면서도 민 감독은 '앤티크'만의 방식으로 밝음과 어두움, 판타지와 현실의 접점을 찾으려 했다고 강조했다.
"'앤티크'의 주제와 맥락에 따라 나름대로 통일시켰어요. 원작을 보면 갓 구워져야 가치있는 케이크와 오래될 수록 가치있는 앤티크라는 모순된 두가지가 한 공간에서 조화를 이루고 있죠. 또 주인공들은 상처를 안고 사는 인물들인데 각각 나름의 방법으로 표현하면서 살아가요. 이런 설정과 캐릭터, 다양한 장르, 스타일을 한편의 영화에 조화롭게 공존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장편 데뷔작인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는 영화의 비밀을 푸는 열쇠가 여고생들의 동성애였고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의 여러 에피소드 가운데에도 동성애자 사업가(천호진)의 사랑이 들어 있다. '앤티크'에서는 매력적인 동성애자 파티셰 선우가 비중 큰 역할이다. 그가 만든 상업 장편영화 3편에 동성애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 것.
"'여고괴담' 때는 선동의 욕구가 있었어요. 죽음으로 사랑을 지키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죠. 이번에는 좀 더 뻔뻔하게 그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괴로워하거나, 힘들어하는 것보다 옆에 있는 남자를 잡으면서 낄낄거리는 순간을 자연스럽게 그려보고 싶었죠. 제 안에서도 그 문제는 계속 진화하는 것 같아요."
민 감독은 차기작으로는 단편을 준비중이다. '앤티크'처럼 일본 만화를 토대로 한 장편 영화도 생각 중이다. 한국영화아카데미 동기생이자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를 함께했던 김태용 감독과 다시 힘을 모을 계획이 있는지 묻자 그는 가능성을 열어놨다.
"당장 계획은 없어요. 저도, 김태용 감독도 워낙 과작하는 사람들이라 생산성이 너무 떨어지거든요. (웃음) 그래도 함께하면 재미있으니 우리 둘이 전투력이 높아져서 사정이 좋아지면 할 수 있겠죠."
cheror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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