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배우 김갑수(51)는 27일 오후 10시 나란히 방송된 KBS 2TV '그들이 사는 세상'과 SBS TV '타짜'에 동시에 얼굴을 내밀었다.
그동안 월~화요일 밤 '타짜'에서만 보이던 김갑수가 27일 '그들이 사는 세상'이 시작되면서 같은 시간대에 두 채널에서 다른 역할로 출연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시청자들에게 혼란을 준다는 지적이 있다. 하지만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원인은 다른 데 있다. 또 연예계가 전반적으로 불황에 시달리고 있어 겹치기 출연의 의미가 예전과 달라지기도 했다.
◇외주제작ㆍ사전제작에 따른 겹치기
김갑수가 '타짜'와 '그들이 사는 세상'에 겹치기 출연한 것은 드라마의 외주제작시스템이 정착되고 개별 드라마의 진행 상황에 차이가 있어 본의 아니게 발생한 '사고'다. '타짜'의 편성이 계획보다 늦어졌고, '그들이 사는 세상'은 원래 수~목 편성이었다가 최근에야 월~화 편성으로 바뀐 것이다.
지난해 4월에는 탤런트 김병세가 월~화요일 오후 10시대에 두 채널을 '순간 이동'으로 넘나들며 활약했다. MBC '히트'와 SBS '내 남자의 여자'에 나란히 등장한 것.
또 지난해 9월에는 아역배우 유승호가 SBS '왕과 나'와 MBC '태왕사신기' 두 사극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며 동시 상영을 간신히 피했다.
과거에는 중견 배우들의 겹치기 출연이 시청자들을 식상하게 한다는 지적을 받아왔지만, 외주제작 시스템이 정착되면서 젊은 배우들이나 심지어 주연급 배우들의 동시 출연이 잦아지고 있다.
이는 제작사가 방송사에 드라마를 납품하는 과정에서 편성이 자주 바뀌는 것이 원인이다. 심할 경우에는 '태왕사신기'처럼 애초 약속보다 1년 여 늦게 방송되기도 한다.
김갑수는 28일 연합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두 작품의 출연 결정을 할 때만 해도 동시에 붙는 것이 아니었는데 이렇게 됐다"면서 "본의는 아니었지만 어찌됐든 시청자분들께 죄송스럽다"고 말했다.
◇"우리는 몸이 열개라도 모자라요"
그런데 김갑수는 KBS '대왕세종'에도 황희로 출연 중이다. 연예계의 전반적인 불황 속 많은 배우들이 '일거리가 없다'며 속앓이를 하고 있지만, 그는 무려 세 편의 드라마에서 비중있는 역을 맡아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는 것이다.
이쯤되면 김갑수의 겹치기 출연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다. '무개념의 배우'가 아니라, 불황 속 주가를 날리는 '실속파 배우'인 것이다. 동료들의 부러움의 시선이 쏠리는 것은 물론.
실속파 배우들은 또 있다. 주인공은 아니지만 여러 작품에서 비중있는 역을 동시에 맡아 맹활약 중인 배우들이 심심치 않다.
최근에는 이종원이 대표적이었다. SBS '행복합니다' 직후 KBS '바람의 나라'와 MBC '내 인생의 황금기', '에덴의 동쪽'에 동시 출연한 그는 곧 MBC '종합병원'에도 모습을 드러낸다.
또 장현성은 지난 24일 '신의 저울'이 막을 내리기 전까지는 SBS를 통해 금~일 사흘 연속으로 오후 10시대에 얼굴을 내밀었다. '신의 저울'과 주말 드라마 '유리의 성'에 동시에 출연했는데, 심지어 두 드라마에서 모두 검사로 직업까지 같았다.
손현주도 SBS '조강지처클럽'과 '타짜'의 출연이 맞물리며 한동안 정신없이 보냈다.
이순재는 얼마 전까지 KBS '엄마가 뿔났다'와 MBC '베토벤 바이러스'에 나란히 출연했고, 장용은 KBS '너는 내 운명'과 MBC '내 인생의 황금기'에 함께 출연 중이다. 이밖에 김해숙, 이덕화, 나문희, 한진희 등은 여기저기서 러브콜이 이어진다.
방송 관계자들은 "젊은 스타만 바람을 타는 것이 아니라 장년, 중년, 노년 층의 배우들도 유행이 있다. 그 시기에는 시청자들이 유독 원하는 배우들이 있다"면서 "여러 군데 나와 싫증을 내면서도 그 배우이기 때문에 재미있게 보는 경향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젊은 스타를 제외하고는 소위 '유행'을 타려 해도 실력이 없으면 기회를 잡지 못한다는 점에서, 불황기에 동분서주하는 배우들은 모두 실력으로 승부를 한다고 볼 수 있다.
이종원은 "거절을 해야하는데 못 하는 경우도 많다. 배우의 욕심이 아니라, '너 아니면 안된다'며 읍소를 할 때는 어쩔 수 없이 출연해야하는데 그럴 경우 겹치기 출연이 생기게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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