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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리얼리즘을 넘어 새로운 이탈리아영화를 찾아
홍성남(평론가) 2008-10-03

올해 특별 프로그램으로 마련된 ‘타비아니 형제 특별전- 이야기의 마법사: 상상과 현실의 경계를 넘어서’

<파드레 파드로네>

타비아니 형제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파드레 파드로네>(1977)는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는데, 여기에는 그 당시 심사위원장인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입김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로셀리니는 <파드레 파드로네>가 수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어떤 심사위원에게 보석을 뇌물로 줬는가 하면, 심사위원 특별상과 감독상은 아예 발표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로셀리니의 결코 합리적이지 않아 보이는 이런 처사는 물론, <파드레 파드로네>가 자국영화이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무조건적이고 거의 폭력적이다시피 한 배려를 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는 정말로 <파드레 파드로네>라는 영화에 대해 높은 점수를 줬다. 그는 그 영화가 당대 이탈리아에서 가장 앞서 나가는 영화 만들기의 실례를 보여준 작품이고, 바로 자기가 만들고 싶었던 영화라며 감탄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파드레 파드로네>에 대한 로셀리니의 평가와 그로 인한 ‘스캔들’은(<파드레 파드로네>가 로셀리니 세대의 네오리얼리즘적 영화를 극복하려 한 작품임을 감안한다면) 자기 다음 세대의 영화와 영화감독에 대한 유난스런 방식의 인준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전화의 저편>에 큰 애정 품어

비토리오(1929~)와 파올로(1931~) 타비아니 형제는 네오리얼리즘의 영광스런 자장을 벗어나 새로운 이탈리아영화의 영토를 일구어낸 시네아스트들 가운데 하나로 흔히 이야기된다. 그런 그들도 처음에는 네오리얼리즘의 자식들이었다. 앞에서 이야기한 일화와 관련해 보다 흥미를 더해주는 것은, 특히 로셀리니의 <전화의 저편>(1946)이 그들에게 큰 감화를 준 영화라는 사실이다. 로셀리니의 영화에 대한 타비아니 형제의 특별한 애정을 알려주는 일화도 있다. 타비아니 형제의 영화 경력 초창기에 그들과 함께 작업한 발렌티노 오르시니는 피사 대학에 다닐 당시 그들을 봤던 기억을 들려준다. 그의 회상에 따르면, <전화의 저편>을 상영하고 있던 영화관에서 한 남자가 영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소란을 피우고 있었다. 그러자 타비아니 형제는 그 남자와 싸움을 벌였고 나중에는 제발 영화를 좀 편히 보게 해달라며 돈을 주고는 그 남자를 영화관 밖으로 내보냈다고 한다. 그만큼 타비아니 형제가 애정을 품었던 로셀리니의 그 영화는 또한 그들에게 삶에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게 만들어준 영화라는 점에서도 그들에게 갖는 의의가 남달랐을 것이다. 타비아니 형제가 영화로 투신하기로 마음먹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전화의 저편>이었던 것이다. 토스카나 지방의 산 미니아토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타비아니 형제는 피렌체, 피사에서 공부를 한 후 로마에 당도했다. 그리고 그들은 네오리얼리즘 운동의 대변인 격인 체자레 자바티니를 무작정 찾아갔다. 아침 아홉시에 아무런 연락도 없이 찾아간지라 자바티니는 불평했다지만 여하튼 타비아니 형제는 그와 공동 작업을 해 <산 미니아토 1944년 7월>(1954)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큐멘터리의 대가 요리스 이벤스와도 함께 영화 작업을 했다(<이탈리아는 가난한 나라가 아니다>(1969)). 그러나 이후로 그들이 깨달은 것은 리얼리즘이나 다큐멘터리 영화는 그저 영화의 ‘욕망’일 뿐이라는 점이었다. 한편 타비아니 형제는 네오리얼리즘이 프티 부르주아의 표현 양식이 되면서 점점 퇴보해 가는 것을 보기도 했다. 그래서 그들은 네오리얼리즘과 결별을 고하면서 자신의 그 ‘사랑스러운 아버지’를 매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타비아니 형제의 영화가 현대영화의 풍요화에 일조했다면 그것은 네오리얼리즘과의 이 같은 애증관계라는 맥락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어 <로렌조의 밤>(1981)은 네오리얼리즘 영화, 특히 로셀리니의 <무방비 도시>(1945)에 대한 수정주의적인 응답이라고 말할 수 있는 영화다. 앞서 언급한 다큐멘터리 <산 미니아토 1944년 7월>을 장편극영화로 개작한 이 영화는 타비아니 형제가 전쟁 동안 실제로 겪었던 끔찍한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진 것이다. 영화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이름까지 뻔히 아는 같은 지역 사람들끼리 죽고 죽이는 비극적인 상황을 보게 된다. 그런데 실제 일어났던 사건과 그것을 스크린에 옮긴 이 영화 사이에는 대략 40년의 시간적 간격이 놓여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따라서 <로렌조의 밤>은 <무방비 도시>처럼 당대에 일어난 일을 바로 가까이에서 관찰한 듯한 르포르타주적 시선의 영화가 될 수도 없었고 또 그럴 필요도 없었다(고 타비아니 형제는 생각했다). 대신 타비아니 형제는 여섯 살 때의 일을 회고하는 여성을 화자로 내세운 ‘기억의 영화’를 만들어냈다. 그러면서도 영화는 단지 그 한 사람만의 기억이 아닌 공동체의 기억을 불러내려 한다. 그런 기억이란 물론 기본적으로는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이긴 하되 오류도, 상상도, 그리고 윤색도 허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 된다. 결국 이 기억은 정확한 사실들만을 파헤치려 하는 딱딱한 역사가 아니라 동화, 악몽, 전설, 신화 등을 두루 껴안을 수 있는 유동적이고 자유로운 자리가 되고 만다. 아무래도 이것은 한 가문의 비극적 운명의 흐름을 보여주는 영화인 <피오릴레>(1993)에서 보듯, 역사란 과거 시점에서 이미 종결된 것이 아니라 시간의 경계를 넘어 침윤되어 오는 것이라고 보는 타비아니 형제의 인식으로부터 비롯된 것일 터이다. 현재의 우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재와 공명하는 ‘뿌리’로 돌아가야 할 것이고 그런 걸음이란 과거에 존재했던 양상을 단순히 발굴하고 복원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과거의 상을 다시 그리고 해석하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그래서 타비아니 형제의 영화 속에서 역사는 하나의 명확한 사실로 귀결되는 투명한 것이 되지도 않고, 그 절대적인 진리의 권위에 도전할 수 없는 불가침의 것이 되지도 못한다.

이탈리아 토스카나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웅장한 교향곡

타비아니 형제의 필모그래피에서 역사의 문제는 중심에 놓여 있는 관심사들 가운데 하나라고 할만하다. 그 기본적인 문제와 영화가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그들의 영화가 <굿모닝 바빌론>(1987)이다. D. W. 그리피스의 <인톨러런스>(1916)에 참여한 솜씨 좋은 이탈리아인 형제 석공의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에서 타비아니 형제는 영화라는 새로운 시대의 예술형식이란 것도 사실은 웅장하고 아름다운 성당을 만들어냈던 중세 시대의 수공 기술과 평행을 이룸을, 그리고 이것의 연속선상에 있음을 이야기한다. 영화란 그것이 제대로의 모습을 갖추기 전의 시대와도 관련을 갖고 있는, 그 자체로 ‘역사적 형식’인 것이다. 그래서 그것은 다음 세대를 위해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타비아니 형제는 말한다. 영화의 마지막에 죽음을 앞두고 있는 영화 속 주인공 형제는 언젠가 자신의 자손들이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카메라로 서로의 모습을 담는다. 그 존재 자체가 역사의 흐름과 무관하지 않은 영화라는 매체는 후대를 위해 리얼리티를 기록하고 보전할 임무를 갖는 것이다. <굿모닝 바빌론>은 여기서 영화라는 형식이 과거와 현재의 공명이라는 역사의 과정 속에 놓여 있는 모습을 본다.

<굿모닝 바빌론>과 관련해 흥미롭게 지적할 수 있는 것은, 그리고 중요한 것은 영화 속 할리우드 장면도 미국이 아니라 타비아니 형제의 고향인 토스카나 지역에서 촬영이 되었다는 점이다. 다소 과도하게 이야기하자면 어쩌면 그들은 자신의 고향에서 영화의 ‘뿌리’마저 발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여하튼 토스카나는 그들이 항상 가고자 하는 곳이고 스스로 묻히고 싶어 하는 곳이고 그들 영화의 (항상은 아니지만) 주요한 무대가 되는 곳이다. 평자들이 종종 이야기하듯 타비아니 형제를 두고 보수주의자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그들에게 풍경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심어줬고 예술적 심미안을 가르쳐줬던 토스카나 지역과 그곳 사람들, 그곳의 전통과 역사에 너무 밀착해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타비아니 형제에 대해 전복주의자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건 그 지역을 하나의 인격과 역사를 가진 살아 있는 복잡한 개체처럼 그리고 그 지역을 자신들이 구축하려 하는 영화적 교향곡의 중요한 요소로 다루기 때문이다(사운드, 그리고 음악에 대한 타비아니 형제의 감식안은 이미 많이 이야기된 바 있다). 타비아니 형제의 영화 속에서 우리는 토스카나라는 우주로부터 아름다움, 잔혹함, 신비 등의 여러 소리가 울려나오는 것을 듣는다. 결국, 타비아니 형제의 영화는 토스카나를 무대로 울려퍼지는 풍경과 인물, 과거와 현재, 개인과 역사, 역사와 신화, 그리고 사운드와 이미지의 웅장한 교향곡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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