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CHIFFS Daily > 2회(20008) > 영화제소식
‘초대형 스펙타클’에 목숨걸어~
이영진 2008-09-10

1960년대 초 충무로, 대작 제작 열풍

한치도 물러설 수 없는 적벽대전. 1962년 추석 극장가의 형국이 그러했다. 을지극장엔 <화랑도>가 진을 쳤고, 국제극장엔 <인목대비>가 납시었다. <진시황제와 만리장성>은 국도극장에 성벽을 쌓았고, <칠공주>는 피카디리극장을 차지했다. 그리고 명보극장엔 <대심청전>이 판을 벌였다. “제작비가 1천만원이 훌쩍 넘는” 대작영화들이 한날한시에 극장가를 분할 점령했다. 게다가 5편 모두 ‘색채(컬러) 시네마스코프’라는 간판을 앞세운 사극이었다. 비단 용포 두르고 대수 머리 튼 국산 스타아들은 쟁쟁한 할리우드산 영화들을 압도했는데, 이 해 추석 상영작 중 그나마 체면치레를 한 외화는 70mm <벤허> 정도였다.

1960년대 들어 급부상한 충무로의 관심 키워드는 다름 아닌 ‘스펙터클’이었다. <진시황제와 만리장성>은 “12만명을 헤아리는 엑스트라와 국내 올스타 캐스트를 동원했다”는 자랑만으로 모자라 “3개월 동안 만든”, “높이 23척, 길이 800m에 달하는” 오픈세트를 기자들에게 공개하기까지 했다. 위용 과시로는 <임진난과 성웅 이순신>이 단연 으뜸이었다. 정부로부터 대규모 대출까지 따낸 이 영화는 단역배우만 30만명이고, 말만 해도 2만여필에 달했다. 실물 그대로의 철갑선 12척을 남해에 직접 만들어 띄웠으며, 해군수중파괴대(UDT)까지 투입했다. “50여평 규모의 풀에 모형 배를 띄워” 40여컷의 미니어처 특수촬영을 진행하기도 한 이 영화의 제작비는 화폐개혁 이전 기준으로 무려 4억환에 달했다고 한다.

“큰 놈이 센 놈”임을 증명하기 위한 크기 싸움은 사극에서 불붙어 모든 장르로 퍼졌다. <두만강아 잘 있거라>(1962)도 “500여명의 스키어를 동원했고, 5만여발의 뇌관을 소비한” 초대형 ‘액숀·스펙타클’임을 내세웠으며, 같은 해 김묵 감독의 <싸우는 사자들> 또한 경기도 포천 일대에 1만여평의 대지를 임대해 국군포로수용소를 만들었다고 광고를 해댔다. 1963년에 제작된 <돌아오지 않는 해병>은 특공작전이나 다름없었다. 국방부 후원, 해병대 지원을 받아 탱크 10대, 제트기 12대가 등장했으며, 마지막 장면에선 아예 해병대원 4만여명이 촬영을 도왔다.

스펙터클한 욕망은 그러나 웃지 못할 해프닝도 불러왔다. <두만강아 잘 있거라>는 “폭발사고로 엑스트라들의 치료비만도 100만환이 넘었다”. <싸우는 사자들>도 두채의 집을 한방에 날려버린 장면 촬영 때 다이너마이트 파편에 다친 이만 무려 21명에 달했다. <임진난과 성웅 이순신>은 “촬영 당시 화살이 떨어져” 갈대로 대신하는 기지(?)를 발휘해야 했다고 한다. 공포탄 대신 실탄을 마구 쏘아대던 때였으니 ‘돌아오지 않는 해병’도 실제 있지 않았을까. 스펙터클을 실현하기에, 충무로는 아직 보릿고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