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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식코> 논쟁 ① 건강보험료 더 내는 게 문제다

포퓔리슴은 쉽고 민주주의는 어렵다

본지 647호에는 <식코>에 관한 기획기사가 실렸다. 나는 이 글에서 김은형과 오창익의 글에 대한 몇 가지 반론과 더불어 <식코>의 문제점을 언급하고자 한다.

1. 김은형은 <식코>에 등장한 사례들을 조롱하다가 영국 의사의 처우와 한국 개원의 수입을 언급하고, 건강보험에 대한 기대를 접고 각종 약과 건강보조제에 의지한다며 글을 맺는다. 여기엔 의료소비자의 몰이해가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더욱 악화시키는 순환 고리가 담겨 있다. 한국 의사들이 ‘의료자본주의’를 원하는 건 정부의 파행적인 의료관리에 염증을 느껴서이지 영국 의사보다 부유하길 원해서가 아니며, 의사들의 반대로 영국식 시스템이 도입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영국식 시스템을 도입하려면 91%에 달하는 민간의료기관을 정부가 사들여야 함에도 (개원의는 개원 자금을 투자한 소자본가로, 봉급생활자와 수입을 단순 비교할 수 없다) 재원 마련에 대한 논의없이 의사의 탐욕을 질타하는 손쉬운 비판이 행해진다. GDP의 6%에 불과한 국민의료비(OECD 평균 9%) 중 53%만이 건강보험에서 지출되며, 나머지는 민영보험과 개인지출이다. 김은형이 사먹는 약도 여기에 속해서, 국민의료비 중 약제비 비중이 27%로 다른 나라의 2배이다. 이런 비용들이 모두 건강보험재정으로 간다면 현재 62%에 불과한 보장성이 개선되겠지만, 소득의 2.54%인 보험료율(미국 평균 31%)을 올리는 것엔 ‘소득에 관계없이’ 전 국민이 반대한다.

2. 오창익은 응급실에서 겪은 일화를 소개하더니, “의사가 어떻게 하면 한푼이라도 더 뜯어낼까 생각하는 게 한국의 의료실태”라 일갈한다. 그러나 소득과 무관한 응급실 당직의가 과잉진료를 하고, 소득과 직결된 개원의가 이를 바로잡은 건 오히려 ‘돈 뜯기’ 가설이 틀렸음을 입증한다. 그리곤 곧바로 “이명박 정부가 공언하듯이 의료보험이 미국식으로 민영화되면 건강보험의 근간이 단박에 허물어질지도 모른다”고 경고한다. 그러나 당연지정제 폐지와 민영보험 활성화는 이미 참여정부의 ‘의료산업선진화정책’에 있던 내용이다. 이는 현행 ‘저부담-저수가-저보장’의 건강보험으론 인구 노령화와 의료기술 발전으로 인해 상승하는 국민의료비를 감당할 수 없는 정부가 이미 8조4천억원(GDP의 1.2%, 유럽의 4배) 규모로 들어와 있는 민영보험을 활성화해 국민건강보험의 짐을 덜려는 욕구가 있고, 민영의료보험이라는 블루오션(2015년 시장전망 약 100조원)을 향한 자본의 욕망과 저수가체계로 인해 성공하려면 편법을 동원하거나 성형 등 비보험 진료에 매진해야 하는 기형적 시스템에서 벗어나려는 의사들의 욕구, 그리고 위험대비는 원하지만 소득재분배적인 사회보험은 손해로 인식하는 (중산층 이상은 물론, 그 이하까지 포함된) 국민들의 욕망이 어우러진 결과다. ‘이명박 정부가 도입할’ 의료보험 민영화가 건강보험의 근간을 허무는 게 아니라, 본래 취약했던 건강보험의 근간이 허물어지는 걸 막으려는 정부와 국민의 의지가 없다보니 의료보험 민영화 움직임이 필연적으로 대두되는 것이다. 따라서 ‘의료보험 민영화 반대’를 외치기 전에, 국민에게 ‘적정부담-적정수가-적정보장’의 전국민보험을 ‘정말로’ 원하는지 묻고, 이를 위한 보험료율 인상을 설득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3. <식코>에서 아기가 응급실 이송으로 사망한 사건은 1993년 송사로, 현재 응급실 진료 전 보험 여부를 묻는 건 불법이다. 또 미국에도 인구의 20%에 해당되는 노인, 빈민 등에게 무상의료를 제공하는 공보험이 있다. 하지만 과거 사건을 끼워넣고 공보험의 존재를 뺀 것보다 더 큰 문제점은 원인에 대한 고찰이 편협하다는 것이다. 닉슨 녹취록을 공개하고, 힐러리의 개혁이 실패한 원인을 보험사로비와 우파의 악선전 탓으로 요약했지만, 거기엔 ‘세금을 어찌 감당할지’ 납득 못한 국민쪽 변수도 있었다. 전국민보험을 유지키 위해 유럽인들이 내는 세금을 미국인도 ‘세금폭탄’으로 여기지 않을 수 있는지 캐묻지 않고, 우리는 본래 착한 이웃이었고 그들처럼 연대감을 누리며 살 수 있다고 봉합한다.

<식코>의 교훈은 분명하다. 장차 국민건강보험이 축소되고 민영보험의 관리의료가 시작되면, 차상위층은 의료사각지대로 떨어지고 노동자층은 훨씬 더 많은 의료비를 써야 하며, 의사들 역시 현행 국가통제보다 더 심한 자본통제를 겪을 수 있다. 그러나 <식코>의 한계를 통한 교훈도 새겨야 한다. 보험사와 정치인을 욕하긴 쉽지만, 국민에게 사회연대감을 묻고 설득하긴 어렵다는 것. 의사의 탐욕과 이명박 정부의 친자본성을 욕하긴 쉽지만, 국민에게 암보험, 건강보조제 살 돈으로 건강보험료 더 내라는 말을 누가 할 것인가? 포퓔리슴은 쉽고 민주주의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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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Comments

  • nikado12
    2008-07-09 10:45:39
    묻겠다. 국민=우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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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oonkisim
    2008-05-20 13:03:47
    5월 20일자로 의사인 우석균 씨의 반론 기사가 나왔습니다. 내용을 나름대로 분석하자면, 황진미씨의 글은 전형적으로 의사라는 이익집단의 입장에서 쓰여진 글이라는 것입니다. 현재 한국의 국민의료보험 실태는 대만을 비롯한 세계 여러나라와 비교해서 국민들이 보험료를 덜 내기 때문에 재정이 어려운게 아니라, 기업이 보험료를 다른나라 수준으로 부담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라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기업이나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로부터 그에 합당한 보험료를 받아내는 것은 국가의 역할인데, 부가세를 비롯한 각종 간접세는 엄청나게 걷어서 조세불평등을 심화시키면서도, 기업이나 고소득전문직에게는 제대로 받아야 할 보험료를 받아내지 못하는 정부의 안일한 자세가 국민의료보험 재정이 열악한 진정한 이유라는 것입니다. 이걸 가지고 국민들에게 국민의료보험 재정 위해서는 보험료 더 내야 한다고 위협하는 것은 그것이야말로 지극히 위험한 포퓔리슴임을 이야기합니다. -왜냐? 국가가 당연히 해주어야 하는 공공복지를 회피하기 위해 국민들에게 보험료 인상을 무기로 들이대니까, 즉 "보험료 안올릴테니까 민영의료보험 하자" 라는 얘기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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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itna
    2008-04-28 14:53:00
    > ← 참 이상한 논리다. 저 물음과 설득은 '민영화 반대를 외치'는 사람들이 아니라, 민영화를 추진하는 사람들이 그에 앞서 해야하는 작업 아닌가? 국민적 합의의 책임을 은근슬쩍 반대자들에게 전가할 때 면책을 받는 쪽은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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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andam58
    2008-04-26 18:56:11
    글쎄...뭐 별로 틀린 말은 아니고, 이런 말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민영화가 대세이니 어쩔 수 없다는 게 아니라, 다들 행동은 그쪽으로 갈 수 밖에 없게들 하면서, 말로만 민영의료보험 반대를 외치는 것은 공허하다...뭐 그런 뜻 아닌가? 글쓴이가 의사라는 사실이 본질이 아닌 것 같은데? 그럼 만약 글쓴이가 의사 부인이었으면 그런 것도 감안이 되나? 글쓴이의 신상에 따라 글의 요지를 파악해야 하나? 그리고 이글이 김은형과 오창익의 글의 반론이라는 사실을 왜 주목하지 못하는 걸까? sw1401님 같이 건강보조제나 암보험에 들 돈이 없는 사람은 어차피 이글과 해당사항이 없는 사람이고, 김은형처럼 영국의료제도 부러워하면서 건강보조제를 사먹는 사람들에게 하는 쓴소리 인것 같은데....? 그리고 오창익의 응급실 에피소드는 뭐 그렇담. 불평을 실을려면 좀 잘 골라서 싣든지 하지. 완전 발렸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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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w1401
    2008-04-26 11:31:39
    649호를 읽고 이 글을 쓴 평론가님이 의사인 걸 알았습니다.
    글이란, 글 자체로 말하고 이해되어야 하지만, 글을 쓰신 분이 이해 당사자인 걸 뒤에 알고 보니 글이란 것에 진실성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확 드는군요. 가끔 정치권, 언론에서 말과 글을 능숙하게 다루는 분들이 자신의 이해 관계를 속이고 마치 잘 만들어진 한 편의 영화처럼 독자를 속이는 것을 보면 이것이야말로 가장 큰 죄악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본인의 직업을 미리 알릴 의무는 없지만, 결과적으로 큰 실망을 했습니다. 평소 의사분들은 보험료를 얼마나 내는지 참 궁금했어요. 저희같은 봉급생활자는 건강보조제를 사 먹고, 암 보험료를 낼 여유가 없던데요. 연금도 없으신 부모님 조금 드리고, 애들 사교육 시키고 정말 팍팍하죠. 그리고 제 경혐상병원에서도 사람 대접받는다고 느낀 때는 내 돈 몇십 만원내고 종합검진할 때, 딱 그 때뿐이었습니다. 물론 공무원 정기 건강검진때는 절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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