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오 도르민스키/ 이번 부천영화제는 정말 즐거웠다. 특히 음악과 연계한 ‘씨네락나이트’와 공개된 야외장소에 열린 ‘오픈씨네퍼레이드’가 인상적이었다. 정말 좋은 아이디어였다.
기 델모트/ 난 부천에 온 건 이번이 처음이지만, 14년 동안 브뤼셀판타스틱영화제를 해온 사람으로서 그간 지켜본 부천영화제의 발전에 정말 감탄했다. 하지만 어느 영화제든 만드는 것보다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게 더 어렵다. 이제 부천이 10년을 지나 새로운 10년을 맞이했는데, 앞으로도 계속 성장을 이루는 게 중요하다.
마리오 도르민스키/ 부천영화제는 초기부터 아주 성공적으로 출발했다. 29년 전 내가 판타스포르투를 만들 땐 다들 “장르 영화=최악의 영화”라고들 했다. 난 7번째 부천에 오는 건데, 올 때마다 사람들의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초기의 부천 관객이 판타스틱영화제가 뭔지 잘 이해했던 것 같진 않다. 다만 뭐든지 축제에 가고 싶어했던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그게 아마 부천영화제의 성장 배경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 멀티플렉스가 몇개나 있는 이 신도시에서 영화제를 계속하려면 영화제가 좀더 영리해져야 한다. 물론 부천은 지금도 굉장하다. 아마 시체스, 브뤼셀, 판타스포르투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번창하는 판타스틱영화제일 것이다.
대중성의 고려, 산업성 강화가 중요한 과제
씨네21/ 상영작 성격에 대해 어떻게 느꼈나. 어느 판타스틱영화제와 마찬가지로 부천영화제에도 무엇이 ‘판타스틱’영화인지 그 정의가 명확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 상영작 중엔 그다지 판타지적이지 않은 영화도 많았으니까.
마리오 도르민스키/ 14년 전?? 브뤼셀영화제에서도 비슷한 토론을 한 적이 있다. 어디까지가 판타스틱영화고 어디부터가 아닌지 경계가 확실히 나뉘는 건 아니다. 사실 현실이 아닌 모든 것은 다 판타지다. 그 경계를 구분하는 것은 결국 프로그래머의 시각, 취향에 달렸다.
기 델모트/ 결국 ‘장르영화란 무언인가’라는 얘긴데, 매우 복잡한 질문이다. 나와 형(함께 EFFFF 창설을 주도했던 조르주 델모트)조차도 여기에 대해선 의견 일치가 안 된다. 사람에 따라 무엇이 판타지이고 무엇이 장르영화인지 그 개념은 다를 수밖에 없다.
마리오 도르민스키/ 초기의 판타스틱영화제들은 대중에 친숙한 멜로드라마를 반반 섞어넣곤 했다. 그 결과 멜로-판타스틱영화제가 돼버렸지만(웃음), 프로그래머들에게 영화제를 대중에게 널리 알리는 건 굉장히 중요한 문제이다. 판타스포르투도 판타스틱영화 외에 ‘프로그래머의 선택’ 섹션을 만들어 장르영화 외의 다양한 영화들을 많이 배치했다. 판타스포르투가 발굴한 젊은 장르감독들의 차기작이 그다지 판타스틱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지만, 여전히 우리가 그 감독들을 좋아하고 지지하기 때문에 판타스포르투에 걸기도 했다.
권용민/ 우선 영화 선정에 대해선 우리도 고민이 많았다. 말하자면 <트랜스포머> 같은 메이저 스튜디오의 블록버스터도 판타지는 판타지 아닌가. 아시아 지역의 감독들도 점점 많은 판타스틱영화를 만들고 있는데, 무엇이 판타스틱이고 아닌지 그 기준을 가르기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이번에 기준이 애매한 경우 우리 프로그래머들의 직관에 의존한 부분이 많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기준을 가르는 것보다 중요했던 건, 판타스틱한 영화와 덜 판타스틱한 영화들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영화를 상영하려 했다.
마리오 도르민스키/ 중요한 문제다. 판타스틱영화제 프로그래머는 항상 대중성을 고민해야 한다. 판타스틱 장르영화뿐 아니라 좀더 상업적인, 예를 들면 블록버스터를 거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물론 영화제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은 일반 극장들이 걸지 않는 영화를 관객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중요한 기능은 영화 산업계와의 연계이다. 영화제는 좋은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수입·배급사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영화에 기회를 주는 장소이다. 그 기능을 십분 살려야 한다. 보통은 팔리지 않을 법한 영화라도 영화제에서 팍팍 밀어주면 세계의 수입사들이 사는 경우가 많지 않다. “제11회 부천영화제 인기작” 이런 타이틀을 붙여서 홍보하면 영화 제작자도 좋고 배급사도 좋고, 영화제에도 좋은 홍보효과 아닌가.
기 델모트/ 동의한다. 영화제 상영작들 사이에 섞여 있을 때는 주목받지 못해도 나중에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영화도 많다. 보통 유럽영화제는 미국영화에 야박한 편이지만, 그런 껍질을 깨고 좋은 미국 상업영화를 상영할 때 의외의 의미있는 성과를 얻을 수 있다. 브뤼셀에서 예전에 미국 호러영화를 폐막작으로 상영한 적이 있다. 당시 반응이 굉장히 좋아서 다들 난리였는데, 그 영화가 뭔지 아나? <양들의 침묵>이다. 다른 대륙의 배급자들이 자국에 돌아가서 “나 이거 브뤼셀에서 봤어. 진짜 괜찮아” 하고 다녔다. <양들의 침묵>이 뜨면서 우리의 존재도 각인시킬 수 있었다. 영화제에 상업영화를 데려오는 게 중요한 이유는 그런 것이다.
마리오 도르민스키/ 판타지영화 섹션과 그렇지 않은 영화를 위한 섹션이 둘 다 있으면 관객과 산업 관계자들 모두에게 어필하기 좋다. 만약 상업영화를 많이 편성하고 싶지 않다면, 적어도 인더스트리 스크리닝이라도 확장해야 한다. 제작자들이 자기 영화를 홍보하고, 사고팔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산업성을 강화하는 건 곧 영화제의 위상 강화와 연결된다. 그게 현실이다. 우리는 문화를 다루는 사람이지만, 산업적 고려에도 치밀해야 한다.
광장 역할을 하는 공간의 부재가 아쉬워
권용민/ 올해 부천영화제에서 느낀 문제점은 무엇인가.
기 델모트/ 전반적으로 잘 이루어졌다고 본다. 게스트들에게 세심한 배려도 해줬다.
마리오 도르민스키/ 나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아주 사소한 것들이 조금 걸리긴 했다. 예를 들면, 셔틀버스를 운영하는 데 비용을 굉장히 많이 들였을 것이다. 그러나 게스트들에겐 너무 어렵다. 그리고 이건 영화제쪽에서 바꿀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부천은 극장이 띄엄띄엄 흩어져 있는 탓에 사람들이 모일 만한 거리가 형성돼 있지가 않다. 극장, 식당, 문화공간이 밀집돼 있어서 영화제의 광장 역할을 하는 구역이 필요하다. 게스트들도 오가면서 마주치고, 친근한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도록.
권용민/ 맞다. 우디네영화제에 갔는데 정말 부럽더라. 규모가 작다보니 게스트들이 다 같이 몰려다니면서 점심도 저녁도 같이 먹는다. 도시 전체가 영화인들의 친밀한 공간이 되더라. 한편 부산처럼 큰 영화젠 그 나름의 장점이 있는데, 부천은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사이즈의 도시라 매회 고민이 많다.
마리오 도르민스키/ 해외 게스트를 감안하면, 부천이 서울과 가깝다는 걸 홍보하는 것도 중요하다. 인지도 면에서 그렇다. 많은 해외 게스트들이 여전히 부천을 잘 모르기 때문에, 서울과 가깝고 여행하기도 좋다는 걸 강조하는 게 중요하다. 영화제에 투어리즘이 필요한 것이다. 예를 들어, 이게 좋은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부천/서울판타스틱영화제로 홍보한다면 해외에 인지도를 더 높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기 델모트/ 난 그건 좋은 생각인지 잘 모르겠는데…. (웃음)
씨네21/ EFFFF 아시아 어워드 심사위원인 두분은 올해 부천영화제에서 온 한국영화들은 어떻게 봤나 궁금하다.
마리오 도르민스키/ 그동안 한국영화는 세계적으로 성공한 감독을 많이 배출했고 성과도 눈부셨다. 아쉬운 건 그 뒤로 젊은 신인감독들이 더이상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영화의 미래를 위해 좋은 현상은 아닌 것 같다. 이번 부천영화제에 나온 한국영화들은 모두 다 봤다. 젊은 감독 영화들 중 몇편은 인상적이지만, 미안하게도 정말 괜찮다 싶은, 그런 영화는 만나지 못했다. 앞으로 부천영화제가 노력해서 한국영화를 이끌어갈 다음 세대 감독을 찾아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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