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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의 세계 역시 내겐 똑같은 ‘퓨어’다
진행 김봉석(영화평론가) 정리 김도훈 사진 오계옥 2007-07-15

히로키 류이치 인터뷰

-한국에서 지금까지 개봉한 감독님 영화는 아직 <바이브레이터>밖에 없다. 이번 회고전 작품들, 특히 <바쿠시, SM 로프마스터>(이하 <바쿠시>)를 보게 되면 혼란을 느낄만한 관객도 있을 것 같다. 조언을 해준다면. =여성을 그리는 것은 나의 영원한 테마다. <바이브레이터>에서 보여줬던 여성의 이미지도 있지만, 나는 <바쿠시>에서 보여지는 그런 여성도 있을 수 있다는 걸 드러내고 싶었다. 그런 여성들은 현실에 존재하며 남녀 불문하고 인간 자체가 신비로운 존재다. 그저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바쿠시>의 여성들은 묶이는 행위에서 오히려 마음의 안정을 찾는 여성들이다. 그렇게 보면 <바이브레이터>에서 보여줬던 여성상과 그렇게 다르지는 않다.

-한국에서는 김기덕의 <나쁜남자>, 이창동의 <오아시스> 같은 영화들은 여성을 폭력적으로 바라본다는 비판이 거셌다. 묶는 행위를 의미하는 ‘바쿠시’는 극단적인 모습이고 어쨌거나 여성에게 가해지는 물리적 폭력이다. 일본에서는 비판같은 게 없었나. =일본에서는 영화속의 묶는 행위가 폭력 행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바쿠시가 특이한 아웃사이더들의 행위이긴 하지만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이기 때문에 폭력이라 보지 않는다. 강제가 아니라 합의하에 하는 것이다. 아무 문제 없다.

-핑크영화로 데뷔하셨다. 감독님이 생각하시는 핑크영화란 뭔가. 또 그 시절을 기억한다면 뭐가 가장 먼저 떠오르나. =그때는 데뷔할 길이 핑크영화밖에 없었기 때문에 핑크영화로 데뷔했다. 당시에 핑크영화는 정해진 베드신만 지켜주면 아무런 간섭없이 테마같은 걸 자유롭게 표출할 수 있었다. 사실 남녀가 만나서 키스와 섹스를 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니겠나. 둘이 만나서 식사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므로 그런 걸 영화로 다루지 않는 게 더 이상할거다.

-한국에서는 핑크영화를 에로영화라고 일컫는데, 여성을 성의 대상으로 보여준다고해서 비판이 많다. 일본영화에도 폭력적인 강간이 많지 않나. 당신의 작품들은 사이코 에로스의 세계를 다룬다고 일본에서도 이야기들을 하는데, 핑크영화를 벗어나서도 왜 사이코 에로스에 관심을 갖는건가. =<마왕가>나 <당신과 언제까지>같은 작품들이 사이코 에로스 장르에 속하는 영화들인데, 그건 정신적인 에로스, 관계성의 에로스다. 이를테면 근친상간, SM, 강간 등 터부시되는 관계성의 에로스를 그리고 싶었다. 여성이 성의 대상으로 그려진다고 비판들을 한다고? 왜 그러지? 어차피 영화이지 않나. 어차피 픽션의 세계다. 남녀가 행위를 통해서 뭔가 만들어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는 생각치 않는다.

-감독님은 부드러운 영화 혹은 파괴적인 영화를 찍는다. 단순히 그런것이 존재하기 때문에 영화로 만드는 거라고 했는데, 왜 그것에 이끌리는지를 듣고 싶다. =퓨어(순수)한 세계의 반대편에 있는 극단의 세계도 똑같은 퓨어다. 폭력을 사용해야만 사랑을 손에 넣을 수 밖에 없는 것 역시 퓨어의 세계다. 내 마음속에선 같은 세계다. 인간은 어차피 양면을 가지고 있고, 그걸 교차해서 보여주는게 재미있다. 모순을 지닌 세계를 교차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왔다갔다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도 퓨어, 저기도 퓨어일 수 있다. 영화를 볼 때 ‘이것이 해답이다’라는 식으로 관객을 해답에 도달시키는 영화는 싫다.

-<M>도 여성이 화자다. 사실 남자 감독이 여성을 화자로 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일본 영화의 역사를 보자면,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에서도 여자가 주인공인 경우가 많지 않나. 그걸 동경했다. 그리고 나는 남자의 시선으로 본 여자를 그리고 싶은 것이 아니라, 여자의 진짜 감정을 그리고 싶다. 여자가 보는 남자라는 존재와 여자가 보는 세계를 그리고 싶다.

-하지만 여성의 이야기는 여성만이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고, 남성이 만들면 뭘 잘 모른다고 비판하는 경우도 많지 않나. =전혀 신경 안쓴다. 여자 감독인 니시카와 미와는 <유레루>에서 남자 형제의 이야기를 다뤘고, 앞으로도 여자 이야기는 전혀 할 생각이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취향의 문제일 뿐이고, 나는 여배우랑 일하는 게 훨씬 즐겁다.(웃음)

-몸을 묶는 성행위인 바쿠시가 예술로서까지 승화된 것은 아주 일본적인 특징이다. 일본에서 발달한 이유가 뭘까. =역사적인 배경을 말하자면, 에도시대에 범죄자를 꽁꽁 묶어서 자백을 시킨다거나 그런 장면을 그린 그림들이 유행했다. 사실 그건 반체제적인 행동이었다. 터부시하는 것을 드러냄으로써 사회에 반기를 드는 행위였고, 그래서 그린 사람들은 외설죄로 잡히기도 했다.

-왜 그런 그림이 인기가 있었을까. =역시, 그런 그림을 보고서 흥분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지.(웃음) 여자를 좋아하는 남자가 있고 남자를 좋아하는 남자도 있고 여자를 좋아하는 여자도 있고, 그저 취향이다. 소아애같은 것은 범죄가 맞지만 SM은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다. 둘만의 긴밀한 세계다. 또한, 우리가 누군가를 때린다면 상대방은 얼마나 화를 내겠나. SM은 오히려 더 때리라고 하는 거니까 일반인들의 어중간한 사랑보다도 훨씬 치열한 사랑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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