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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은 지금 영화의 세계 지도를 완성하는 중이다”
진행 김도훈 정리 김민경 사진 오계옥 2007-07-12

2인의 프로그래머가 말하는 제11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개막을 하루 앞둔 7월11일. 보슬비가 그쳤다 내렸다를 반복한 이날, 촉촉하게 젖어가는 대지와 달리 권용민, 박진형 프로그래머의 속은 바짝바짝 타들어가고 있었다. 프랑스에서 어렵게 데려온 회고전 프린트는 온통 시뻘건 불량품이었고, 주말 일기예보도 두 사람을 불안하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간의 노고의 성과를 관객에게 선보일 생각을 하면 가슴이 두근거릴 뿐. 프로그래머도 몰랐던 감독들의 전작 정보를 챙겨주는 열성 고정 관객들이나 고생 끝에 완성한 근사한 몬테 헬만 회고전 라인업을 말할 때면 두 프로그래머의 눈빛이 흥분으로 번뜩였다. 영화제의 야전캠프 복사골문화센터에서 만난 권용민, 박진형 프로그래머가 그간의 준비과정을 정리하며 소회를 들려줬다.

권용민=나는 작년부터, 박진형 프로그래머는 올해부터 프로그래머로 참여했다. 우리 둘과 한상준 집행위원장님이 선정 작업을 했다. 올해의 주안점 중 하나는, 흔히 ‘부천판타스틱영화제’하면 생각하는 호러, 스릴러 등을 넘어서 넓은 의미의 장르 영화들을 포괄하려 했다는 점이다. 정말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영화들을 하고 싶다는데 세 사람의 공감대가 있었다.

박진형=부천영화제의 대중적인 색깔을 지키되, 동시에 세계 각 지역 장르 영화들의 흐름을 잡아주는 것도 우리 영화제의 역할이라고 봤다. 아시아 영화들은 최근 이 지역의 특수한 현황을 반영하는 작품 위주로 고르고, 미주 쪽에선 장르영화의 오랜 전통을 지닌 독립영화의 계보를 염두에 뒀다. 유럽 경우 아트시네마와 대중영화 사이에 존재하는, 오랜 역사의 판타스틱 영화들이 있다. 이런 식으로 맥을 잡아주는 것도 우리 영화제가 할 일이라 생각한다.

권용민=어떤 분야에 대해서 잘 안다는 것은, 나름대로 보편적으로 납득할만한 지도를 그릴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각 지역을 다니며 세계 지도를 완성하는 중이다. 단순히 우리의 개성과 취향만으로 고르는게 아니라, 현재 영화들의 판도를 짚어가려 한다.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해갈 작업이다.

박진형=그리고 그 세계지도를 만들때 관객과 함께한는 점이 부천영화제의 특징이 아닐까. 영화제가 ‘페다고지컬’하게 관객에게 영화를 소개하고 가르친다기 보다는 아무래도 대중이 좀더 주도하는 편이다. 프로그래머가 ‘이걸 드셔요’, 한다고 그게 영화제의 흐름이 되는 게 아니다. 그래서 우리가 차려놓은 이 메뉴판 중에 관객이 어떤 영화를 택하고 입소문을 내주실지 굉장히 궁금하고 설레인다.

대중성을 지키면서, 세계 장르영화의 흐름을 잡는 작업

권용민=월드판타스틱시네마 부분은 세 사람이 함께 맡았고 특별전은 각자 분담했다. 물론 세 사람이 보는 눈이 다르니 선정 과정에서 상충되는 부분도 있었다. 위원장은 <그림 러브 스토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난 꼭 가져오고 싶었다. <러브 마이 라이프> 경우 이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의견이 분분해서 외부에 의견을 묻기도 했고.

박진형=<환상의 주부, 비바>도 그런 “아리까리” 한 영화였다. 영화를 본 열의 아홉이 ‘이 영화는 삼십분은 들어내야겠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언니(안나 빌러 감독)의 발랄함이 영화제에 잘 들어맞는다고 생각했다. 정말정말 즐거운 영화다.

권용민=섹션을 구분할때 부천은 한국영화나 독립영화 섹션을 따로 두지 않는다. 이런 분류법이 장점이 있다고 본다.

박진형= 내가 밀었던 <도살자>와 <도시락>은 한국독립장편장르영화로 눈에 띈 케이스인데, 한국영화 섹션, 독립영화 섹션 이렇게 따로 뺄 수도 있었지만, 그보다 ‘승격’시켜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도살자>는 금지구역에 넣었는데 그건 이 영화가 <폴트리가이스트> <그림러브스토리>와 어깨를 견준다는 의미고, 월드판타스틱시네마에 들어간 <도시락>도 마찬가지다.

권용민=전반적인 예매율은 좋다. 오늘 오전까지 전체 평균 36%였는데, 하루 평균 3%씩 올라가고 있다. 지금까지 27,8편이 매진됐다.

박진형=예매율 높은 특정 작품들이 있긴 하다. 하지만 예매율을 보고 관객의 성향을 예단하기는 힘들다. 영화제에서의 반응과 이후 상황은 달라진다. 개봉됐을 때, DVD로 출시됐을 때의 반응은 다르게 나올 수 있다.

권용민=수입사와 배급사 관계자들이 부천영화제에선 꼭 한 편 정도는 개봉해서 크게 성공한 영화가 나온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 2년 동안은 그러지 못했다. 영화제 동향 보고 크게 걸었다가 흥행 안되는 영화도 많고 해서, 요즘은 관계자들도 영화제 분위기에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관찰하는 것 같다. 영화제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잘 되는 영화와 현실적으로 흥행할 영화들을 잘 병행하면서 짜나가면 흥미롭겠다는 생각도 든다.

박진형=그런데 부천이란 도시 자체는 좀 애매한 게 있다. “부천의 먹거리를 소개해 주시겠어요? 어떤 특색을 가진 도시인가요?” 하는 질문을 자주 받는데 아… 이거 참…. (웃음)

권용민=회도 없고 비빔밥도 없는 데다 부천이라는 도시 공간 자체가 이상한 느낌을 준다. 신도시 특유의 유흥가로 가득하고. 이런 공간의 영화제는 다른 데 없다.

박진형=그래도 여러번 온 관객들은 어떻게 즐겨야 할지 은근히 잘 안다. 맛집이 많은 건 아니지만 싸고 맛있는 술집이 있다거나. 엉뚱한 데서 기쁨을 찾는 분도 있다. 우리 고민 중 하나가 상영관들이 서로 멀다는 건데, 게시판에 어떤 분이 “왜요, 거기 버스 타고 다니는 거 너무 재밌잖아요, 무료로 막 타고 다니는게 맛이에요~” 하더라. 혹시 내부자가 올린 글이 아닌가도 싶지만.(웃음)

두 프로그래머의 아주아주 개인적인 추천작

권용민 프로그래머

<파헬리>. 낯선 볼리우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즐겁게 볼 수 있다. 진정한 판타스틱 장르 영화는 장르의 즐거움을 찾아가면서 색다른 깊이를 추구하는 영화인데, <마스터즈 오브 호러><폴트리가이스트>같은 작품이 그런 예다. <마츠가네 난사사건>은 도쿄영화제에서 봤을때부터 밀고 싶은 영화였다. 이 감독이 서른 두살인데 벌써 영화를 이렇게 만든다. 판타스틱 감독백서는 특별전이지만 대부분 신작으로 구성됐다. 허먼 여우의 <팔선반점의 인육만두>나 히로키 류이치의 <마왕가>같은 걸 한국에서 극장 화면으로 볼 수 있다는 건 정말 대단한 기회 아닌가. 사무실에서 보고 있으면 사람들이 역겹다고 나가긴 하지만. <바쿠시>는 말할 것도 없는 추천작. <성공작가십일담>은 성 노동자들의 일생에 대한 이야기로 선정적이지 않고 드라마가 재미있다.

박진형 프로그래머

<로만>. 주인공 로만을 맡은 배우가 미국 호러 독립영화계의 스타 감독 러키 매키스다. 고정적인 지지층을 거느린 사람인데 장르의 틀 안에서 새로운 요소들을 계속 만들어내며 완성도를 지킨다. 몬테 헬만 회고전은 정말 추천이다. 한국에서 서부극은 고전 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없는 장른데, 이번 회고전 중 세편이 서부극이다. 하지만 장르에 대한 지식이 특별히 없는 관객이라도 편견을 일단 걷으면 정말 재밌게 볼 수 있다. 장르에 익숙한 기존 팬들에겐 관습적 코드를 뒤엎어 분해한다는 점에서 색다른 즐거움을 줄 것. 뉴아메리칸시네마와 다르면서 같은 정서가 있다. <이지라이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를 좋아한 분이라면 <닭싸움꿈>이나 <자유의 이차선> 같은 작품을 추천한다. <도시락><도살자>는 애초부터 적극 밀었던 사람으로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셋 중에서 내가 제일 먼저 보고, 나머지 두 사람에게 ‘우리 이런 영화는 꼭 함께 고민해 봐야 한다’고 강력 추천했다. 한국의 독립영화면서 장편 장르영화를 시도한 놀라운 작품이니까. 이봉래의 <육체의 문>은 꼭 봐야 한다. 김혜정을 재발견하는 건 한국에서 영화 보는 사람으로서의 의무다.

두 사람이 함께 뽑은 “주목할 만한 단편들”

걸작, 또는 ‘걸작스러운’ 작품이 몇 편 있다. <>, <불안당> 등. 아메나바르 감독이 열광했다는 <영혼의 매듭>도 좋고 장편경쟁작 <리빙 앤 데드>의 사이먼 럼리 감독이 출품한 <핸디맨>도 추천작다. 루이스 니에토 감독의 <니에토 교수의 애니메이션 강의> <니에토 교수의 바퀴벌레 강의>라는 단편도 골때린다. 이 감독이 <니에토 교수> 시리즈로 매년 부천에 출품을 했는데, 니에토 교수가 나와 온갖 강의를 하는 게 내용이다. <에드워드 제임스의 기억>은 아주 전형적인 히치콕 스릴러. 같은 감독의 <악마적 욕망>은 더 ‘판타스틱’하다. 여주인공이 엄마 죽이고 자기 좋아하는 남자한테 오줌 마시라고 요구하고, 옥상에 외계인까지 사육하는 주제에 혼자 공주짓은 다 한다. 감독이 오는데 정신세계가 아주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