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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마감하는 한 ‘인간’의 일상
김민경 2007-05-02

<크리구>의 공동 감독 얀 가스만 감독이 들려주는 제작기

21살의 청년이 불치병 선고를 받는다. 주말의 파티와 장래 희망에 설레이는 평범한 젊은이가, 어쩌면 내일 하루가 될지 모를 여생을 어떻게 보낼 수 있을까. 크리스티앙 치외르옌(크리구)의 선택은 죽어가는 자신의 죽음을 다큐멘터리로 찍는 것이었다. 스탭은 과거 영화작업을 함께한 동갑내기 친구 얀 가스만. 촬영이 종료된 날은 한 친구가 죽고 한 친구가 남는 날이었다. 제8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크리구>는 사전예매부터 전 회차 매진을 기록하며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씨네21>은 전주에서 <크리구> 공동감독 얀 가스만을 만날 수 있었다. 독일어권 스위스에서 날아온 26살의 청년은 한없이 밝고 유쾌하기만 했다. 운동화 발걸음은 날아갈 듯 했고 야구모자 아래로 보이는 금발머리는 경쾌하게 하늘을 향해 뻗쳐있었다. 그 해맑은 얼굴을 지켜보는 기분은 영화 <크리구>를 보고 나올 때와 비슷했다.

“같이 영화를 찍자. 그러다가 난 그냥 중간에 빠질게.”

크리스티앙 치외르옌은 1982년 10월 7일, 스위스 산자락에서 목축하는 집시의 아들로 태어났다. 15세부터 영상집단 ‘비디오갱’을 결성해 영화를 만들었다. 당시의 크리구는 “세상을 바꿔야 한다. 영화는 오락 이상의 무언가가 되야 한다”고 믿는 비디오키드였다. 명문 경영대를 자퇴하고 영화학교에서 합격 통지를 받았던 2004년 3월, 크리구는 PNET라는 희귀 종양을 진단받았다. 살아남을 가능성은 없었다. 크리구는 자신의 남은 삶을 다큐로 남기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영화의 ‘후반부’를 친구 얀에게 맡긴다. “내 영화가 미완성으로 남겨지는 건 싫거든...” 2005년 7월부터 얀은 카메라를 잡았다. 카메라 앞의 크리구는 대체로 의연했지만 때로 위험한 감상에 빠지기도 했다. 어머니는 죽음을 기정사실화하는 아들의 태도를 이해하지 못했다. 모자는 자주 다퉜다. 어떤 경우든 얀은 묵묵히 카메라를 돌렸다. 개인의 삶에 카메라를 들이미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극도로 사적인 영역을 파고드는 이 촬영은 찍히고 찍는 양쪽 모두에게 불편할 법했지만, 의외로 촬영 과정은 순조로웠다. 촬영 초기 크리구는 카메라에 비친 자신을 곧잘 의식했지만, 영화를 촬영하는 동안 죽음을 서서히 실감하게 되면서 초반의 자의식을 버리게 된 것 같다고 얀은 회상한다. 촬영을 거듭할수록 크리구와 친구들은 카메라의 존재에 금새 익숙해졌다. 얀은 크리구와 자신이 배우와 연출자 관계가 되지 않게 하려고 일부러 그 자신도 카메라 앞에 자주 섰다. 그를 대상화하지 않도록 스스로 경계하기 위해서였다.

“오늘 몸에 연결된 링거줄을 뺐어. 움직일 수 있다는 게 이렇게 행복할 줄이야.”

영화는 지나치다 싶을만큼 감상을 경계한다. 영화 속에서 파티를 열고 대마초를 피우며 즐거워하는 이들의 모습에서 죽음의 그림자를 찾기란 어렵다. 하지만 혼수상태에서 회복할 때마다 삶의 절실함을 깨닫는 크리구의 독백을 듣고 나면 평범한 기차 여행과 일상적으로 쬐는 햇살도 예사로이 보아 넘길 수 없게 된다. 음악은 드럼앤베이스가 주를 이루고 바깥 풍경은 줄곧 따뜻하고 화사하다. 그리고 본인은 볼 수 없을 영화 <크리구>의 DVD 표지를 매만지는 장면처럼, 연출되지 않은 날것의 현실이 묵직한 파문을 언뜻언뜻 던진다. 눈물바다를 연출하기 딱 좋은 임종의 순간은 생략된다. <크리구>는 어머니가 크리구에게 이불을 덮어주는 평범한 장면 다음에 유골을 뿌리는 강가 장면을 배치한다. 마음의 준비를 허락치 않은 회색빛 유골의 숏은 관객에게 먹먹한 상실감을 안긴다. 얀은 이불을 덮는 장면이 크리구와 어머니의 화해로 느껴졌고, 그즈음 친구의 마지막을 예감하고 카메라를 내려놨다고 한다. 임종은 영화에 꼭 필요한 장면이 아니었다. 실제로 크리구는 이불 장면으로부터 몇 시간 후에 숨을 거뒀다. 2004년 11월 27일이었다.

“매일 오늘이 마지막날인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 혼수상태에서 회복할 때마다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절실히 느끼게 되지. 난 계속 살고 싶어. 삶이란 그럴 만한 가치가 있어.”

유골은 그의 소망대로 동쪽으로 흐르는 강에 뿌려졌다. 영화를 찍으면서 한번도 눈물을 흘린 적 없는 얀은 그때 처음으로 울음을 터뜨렸다. 촬영하며 의견을 나눌 그가 이제 없다는 걸 깨닫고 나서야 죽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눈물을 닦고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아..이제 편집을 해야 하는구나..”였다. 장례를 치르고 남겨진 140시간 분량의 테이프 앞에 그는 홀로 앉았다. A4용지 300여장 분량의 코멘터리를 작성하고 40시간 분량을 1차로 추려내는데 1년이 걸렸다. 사건을 시간 순이 아닌 테마별로 구분하고, 크리구와 자신을 객관적으로 봐줄 수 있는 친구들의 도움으로 드라마를 만들어갔다. 시퀀스들은 ‘죽음의 수용’과 ‘생의 즐거움’이라는 두 테마로 정리됐다. 영화는 화학요법으로 창백해진 그의 독백과 아직 움트지 않은 병마의 씨앗이 도사린 수년 전의 건강한 육체를 수시로 병치한다. 오프닝에서 크리구가 인도 여행 중 찍은 배와 강의 이미지로 문을 연 영화는 시간대를 이리저리 뛰어넘으며 크리구의 마지막 생을 재구성하다가, 다시 인도여행 시절 그의 건강한 미소로 막을 내린다. 이 순환구조는 말기에 동양의 윤회 사상에 관심을 가졌던 크리구에게 주는 작은 선물이란 의미도 있었다. 완성된 얀의 구성안은 취리히 시 정부의 문화기금 프로그램에 의해 제작지원작으로 당선됐다. 87분짜리 최종본 완성 즈음 때맞춰 베를린영화제 작품 접수가 시작됐고, 단지 때가 맞아서 출품했던 <크리구>는 제57회 베를린영화제 포럼 부문에 선정됐다. 높은 호응에 힘입어, 크리구는 스위스 뿐 아니라 그리스 아테네, 우크라이나 키에프와 한국의 전주에서 다시 관객을 만나게 됐다.

“이 영화는 슬퍼선 안돼. 도덕적이어서도 안돼. 이 영화는 재미있어야 해.”

<크리구>의 인기는 불치병 소재의 관습적 최루성에 대한 대중적 기대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에 대해 얀은 자신이 찍은 건 죽음의 관찰일지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와 크리구가 보여주고 싶었던 건 죽어가는 한 인간의 일상이었다. 다만 방점이 ‘죽어가는’이 아니라 ‘인간’에 찍혀있을 뿐이다. 이 영화의 헤드 카피는 “같이 영화를 찍자. 그러다가 난 그냥 중간에 빠질게”이다. 애초 크리구의 관심은 못다 핀 자기 삶에 바치는 연민어린 진혼곡이 아니었다. 다만 행여 이 영화가 여러 사람에게 보여진다면, 이 작품으로 죽음을 보는 시선을 변화시킬 수 있기를 그는 바랐다. “일반 영화에서 죽음은 비현실적으로 묘사된다. 진짜 죽음은 그렇지 않다. 그들도 다른 사람들처럼 웃을 수 있고 즐길 수 있다.” 죽음과 통증은 혐오나 동정의 대상이 아니다. 크리구는 카메라로 죽음을 찍는게 비윤리적인 행동이 아니라고 생전에 얀에게 말했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보호돼야 할 추하고 약한 모습이 아니라, 한 사람의 자연스러운 삶의 한 장면임을 이해해 달라고. “이 영화의 내용은 친구와 가족들이 병실의 나를 잠깐 방문하는 것만으로는 알 수 없는 것이다. 진짜 나의 내면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내가 어떤 변화를 겪고 있는지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런 병에 걸리면 생각하게 돼. ‘왜 나지? 왜 내가 이런 병에?’ 그럼 ‘내가 뭘 잘못했던 걸까? 그래서 벌을 받는 게 아닐까?’ 이런 생각에 빠져들지. 결국 아무 잘못도 없는 데도 죄의식을 느끼게 돼. 그러니까 ‘왜 내가?’라는 질문은 금지야.”

<크리구>는 희망을 말하지 않는다. 죽음에 저항하는 대신 희망을 포기하고 주어진 삶을 즐기라고 한다. 초반에 ‘병세가 악화되면 고통을 감내하느니 차라리 자살하겠다’고 선언하던 그는 영화를 찍는 동안 죽음이 불가항력적임을 깨닫고 오히려 활짝 웃게 된다. “나 아직 자살 안했어. 그러기엔 삶이 너무 아름답더라.” 모르핀 과용의 후유증에 지쳐 ‘더 이상 영화도 찍고 싶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얀과 크리구는 카메라를 끄지 않는다. 영화를 만드는 것은 남은 삶을 살아내는 원동력이 된다. 삶과 죽음에 대한 사려깊은 철학을 녹여넣음으로써, 그는 삶을 긍정하라는 추상적인 명제를 그 누구보다도 깊이 이해하고 실천한다. 죽어가는 시간 동안 그는 인생의 어느 순간보다도 아름답게 성숙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내게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자책하지마. 해줄 게 없는 건 당연한 일이야. 죄의식을 느끼면 안돼.”

인터뷰를 마치고 기자는 얀에게 크리구에게 보내는 짧은 편지글을 부탁했다. 주저 끝에 그러마고 약속했던 그는 다음날 약속을 못 지켜 미안하다는 이메일을 보내왔다. 편지라는 형식은 키치적인 감상을 피해갈 수 없을 것 같다며, <크리구>만이 그에게 보내는 자신의 편지라는 내용이었다. 그 이상의 어떤 메시지도 사족일 뿐이라 했다. 편지 형식의 애틋함으로 지면 구색을 맞추길 은근히 기대한 기자는 뜨끔한 기색을 감추고 ‘이해한다’는 답신을 보냈다. 영화를 사랑했던 크리구는 영화를 가장 행복한 방식으로 누리고 가는 셈이다. <크리구>를 만들고, 발표하고, 세계의 사람들과 함께 보는 일련의 경험은 이들이 친구를 추억하는 가장 멋진 방법이 된다. 이들은 <크리구>와 많이 웃었고. 적게 울었다. “어찌 보면 우리는 지나칠 만큼 덜 울었다. <크리구>를 만드는 건 정말 순수한 즐거움이었다.” 그는 가고, 우리는 남았다. 보석 같은 추억이 은막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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