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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보다 낯선-하룬 파로키 특별전
2007-05-01

하룬 파로키의 영화를 즐겁게 보는 세가지 방법

1960년대 후반부터 정치, 사회적인 문제들에 관한 실험적인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오고 있는 독일의 영화작가 하룬 파로키는 전쟁, 노동, 자본주의, 실업, 권력관계 등의 많은 사회적 이슈들이 어떻게 영화적으로 수렴될 수 있는가를 지속적으로 탐구해오고 있다. 이미지를 통한 이데올로기의 재생산 문제를 핵심적으로 다루고 있는 그는, 시각적 노출 자체가 본질적으로 포르노그라픽한 속성을 지닐 수 있다는 위험성에 공감하면서, ‘방법론 자체에 관한 탐구’와 단순한 이미지적 재현을 넘어선 ‘관객의 동시대적이고 실천적인 동참’을 강조한다. 그러나 어렵다고 지레 겁먹지 말자. 그의 영화를 즐기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첫째, 현재진행형의 과정을 즐기자! <인터뷰>에서 그는 1996년 여름 직업소개소에 모인 대학면접 실패자, 장기간 실업 상태에 있던 실업자, 약물 중독 치료자 등을 인터뷰한다. 이미지 메이킹을 통해 ‘새로운 나’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이 다큐멘터리는 면접의 성패가 결국 얼마나 빨리 자신의 개성과 특징을 포기하느냐에 달려있음을 보여준다. 그의 영화적 방법론은 이미지나 이슈의 재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으로 지금 만들어 지고 있는 또 하나의 영화라는 노동을 축하하며 그 진행형의 과정을 즐기기를 제시한다.

둘째, 이미지의 즐거움을 포기하자! 파로키의 영화는 하나의 시각을 지지하는 다양하고 풍부한 이미지 언어들이라고 불릴 수 있지만, 그들은 결코 단일한 의미들로 협상되지는 않는다. <두 전쟁 사이에서>의 노트에서 그는 “이미지를 살 돈이 없을 때, 우리는 분리된 요소들의 연결을 위한 지성에 투자를 해야 한다. 그것은 생각들의 몽타쥬다.” 라고 밝히고 있는데, 이런 태도는 그의 영화적 소재와 주제뿐 아니라 편집과 구조들을 결정한다. 그의 영화는 오래된 아마츄어 비디오 소스나 뉴스, 사진, 인터뷰, 일기체적인 나레이션 등 혼합적인 요소들 사이를 오고 가지만 결코 이미지 표면의 즐거움 자체를 선사하지는 않는다. 소개된 이미지, 동기, 씬 등은 이후에 다시 조금씩 재변용되어 다른 맥락으로 등장하면서, 관객의 지속적인 사유 과정을 자극한다. 당신이 시각적인 즐거움에 젖어들려고 하는 순간 그는 결코 그 유희적 공간에 머물게 하지 않을 것이다.

셋째, 대답에 대한 궁금증보다 자신만의 공상을 하자! 파로키 영화의 대부분의 주제들은 네이팜탄의 생산, 베트남전쟁, 고속도로 건설, 포르노그라피, 자본주의에서 노동의 문제 등 진지한 사회적 맥락 속에 있다. 하지만 그는 영화에서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정확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네이팜탄의 제조와 베트남전쟁에 관한 이슈를 다루는 <꺼지지 않는 불꽃>에서 그는 네이팜탄으로 인해 상처를 입은 육체의 전시나 처참한 전쟁의 이미지들을 직접적으로 전시하는 대신 어떻게 극도로 분업화된 노동구조가 전쟁에 대한 개인적인 기여, 네이팜탄을 만들고 있을지도 모르는 노동적인 기여를 은폐하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전쟁의 비인간화가 정의되는 곳은 전쟁터 뿐 만 아니라, 개인적인 것 그리고 공적인 사업과 제조 실험실 등의 구체적인 지점이라고 지적한다. 파로키의 전략은 산업사회와 관련된 개인적 노동에 대한 책임감을 묻는 일체의 감정을 배제하는 것이다. 이는 영화를 보는 관객들 역시 희생에 대해 감정적인 공감만을 하는 존재가 아니라 이러한 도덕적 질문에서 면죄될 수 없으며 전쟁의 책임감에 동참해야하는 존재라는 것을 촉구한다. 우리가 그의 영화에서 문제에 대한 해답을 발견하기를 시도하지 않는다면, 영화가 진행되면서 스스로 구조화되고 다의적 의미가 만들어지고 있는 순간을 통해, 우리의 눈과 인식, 또한 상상이 확장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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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정/서울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 프로그래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