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게이 파라자노프와 더불어 아르메니아 영화를 대표하는 거장으로 꼽히는 아르타바즈드 펠레시안은 한국에선 아직 좀 낯선 이름이다. 소비에트 무성영화 시기 몽타주 이론의 유산을 창조적으로 계승, 파라자노프의 독특한 영화적 화법에 필적할 만큼의 혁신적이고 전위적인 영화언어를 만들어낸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펠레시안은 안타깝게도 그간 소문으로밖에 전해들을 수 없는 미지의 감독으로 남아 있었다.
펠레시안의 이름이 국제적으로 - 특히 유럽에서 - 널리 알려지는 데 적지 않은 기여를 한 인물 가운데 하나가 다름 아닌 장 뤽 고다르다. 그의 영화에 깊이 감화된 고다르는 펠레시안과의 대담을 자청하고 나섰는가 하면 최근엔 <아워 뮤직>의 첫 번째 장에 해당하는 ‘지옥’편의 음악적(교향악적) 영화형식을 구상하는 데 펠레시안을 중요한 참조점으로 삼았음을 솔직히 밝힌 바 있다(게다가 펠레시안이 모스크바국립영화학교 재학시절 만든 작품이자 그의 첫 번째 걸작인 <시작>(1967)의 한 장면을 삽입하여 그에 대한 존경을 표하기도 했다). 고다르가 ‘지옥’편 작업 당시 시도한 작업방식, 즉 전체 작품이 지향하는 의미에 맞게 음악을 먼저 편집하고 그에 맞춰 사용될 이미지를 몽타주하는 작업방식은 사실 펠레시안의 영화작업을 특징짓는 것이다.
하지만 동시대의 지배적 사유들에 저항하는 고독한 단독자의 보편적 사유의 형식을 개척했다고 할 수 있는 고다르의 영화와 개별적이고 특수한 존재들을 포괄하는 일반화를 지향하는 펠레시안의 영화 사이에는 아무래도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이 많아 보이는 게 사실이다. 특히 펠레시안 스스로가 이론화하고 영화적으로 실천해 보인 유명한 ‘거리의 몽타주’(distance montage)는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의 자장 하에서 ‘사유하는 영화’의 형식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이는 고다르적 기획에는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는다(그들의 대담을 잘 살펴보면 펠레시안을 독특한 존재로 인정하면서도 에이젠슈타인, 파라자노프, 그리고 쿠바의 산티아고 알바레즈 등과 같은 감독들의 계보를 통해 그를 이해하려는 고다르의 생각에 펠레시안이 은근히 저항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도식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펠레시안의 ‘거리의 몽타주’ 이론을 약술하자면, 두 개의 인접한 의미단위(숏이나 씬)의 충돌과 대비를 통해 제3의 의미를 창출해내고자 하는 고전적 소비에트 몽타주와 달리, 그 의미단위들 간의 거리를 벌려 놓고 - “중요한 의미들을 담은 두 개의 장면이 있다고 할 때, 나의 목표는 그들 사이에 거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펠레시안, ‘거리의 몽타주 혹은 거리의 이론’) - 그 사이에 그 의미단위들과 직접적 연관이 없는 또 다른 의미단위들을 삽입함으로써 영화를 보는 이가 연상적 종합을 통해 보다 일반화된 의미에 도달하게 하는 몽타주를 말하는 것이다. 다만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는 의미단위들 속에서 (유사한 형상이나 움직임 혹은 제스처 등의) ‘주제적 요소’를 발견하는 것이 가능해야 하며 이러한 요소들에 의해 작품은 거대한 의미망으로 이루어진 유기체와 비슷한 것이 된다. 사실 펠레시안의 영화는 이런 식의 건조한 이론적 접근이 주는 선입견을 단박에 일소해 버리는 웅장한 감정의 해일로 뒤덮여 있다. 아무런 대사도 내레이션도 없이 오직 이미지와 음악 및 현실에서 채록된 사운드만으로 구성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존재, 삼라만상 그리고 역사에 대한 감각을 무한히 일깨우는 그의 영화들은, 그야말로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을 실감케 하고도 남음이 있다.
1915년 터키인들에 의해 200만 명 가까운 아르메니아인들이 학살된 사건(<우리>(1969)), 러시아 10월 혁명(<시작>(1967)), 우주비행과 그 전사(前史)(<우리 세기>(1983)) 등의 구체적 사건들로부터 출발해 20세기 역사, 나아가 역사라는 관념 자체와 인류에 대한 인식으로 나아가는 작품들에선 펠레시안의 ‘거리의 몽타주’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그런가 하면 ‘거리의 몽타주’의 엄격한 적용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원숙한 후기 작품들(<끝>(1992) <생명>(1993))을 보고 나면 이토록 짧은 (10분도 채 되지 않는 러닝타임의) 영화를 통해서도 탄생과 존재에 대한 통찰이 가능하다는 데 놀라게 된다. 아르메니아 문화에 대한 감독의 깊은 애정이 느껴지는 <사계>(1972)는 개인적으로 펠레시안의 최고걸작이라 여기는 작품인데, 여기서 자연과 인간이 함께 만들어내는 삶의 리듬과 작품의 음악적 구성 원리는 완벽하게 어우러진다.
1970년대 초, 펠레시안은 그의 몽타주 이론을 부모가 없는, 혹은 부모를 먹어치우는 ‘괴물’의 이미지를 통해 묘사했다. 에이젠슈타인이나 베르토프의 몽타주로부터 자양을 얻어 만들어진 ‘거리의 몽타주’는 결국 그들의 몽타주가 운용 가능한 범위를 점점 좁혀버릴 거라는 야심찬 단언과 함께. 나아가 그는 “영화예술은 다른 예술들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이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상의 역사적 과정이 어떠했건 간에 다른 예술들은 영화로부터 태어난 것이 틀림없다”고까지 주장하기도 했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되는 7편의 작품들은, 기존의 예술을 넘어서고 영화적 선구자들을 넘어서려 노력함으로써 진정 자신만의 영화적 우주라 할 만한 세계를 창조한 영화사의 괴물과 대면할 드문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