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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객', '미스터 초밥왕'을 만나다

만화가 허영만과 데라사와 다이스케의 대담 전문 공개

대담 전 악수를 나누는 허영만과 데라사와 다이스케(오른쪽)

<미스터 초밥왕>의 쇼타와 <식객>의 성찬이 한 식당에서 일한다면 어떨까. 프레임 속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는 두 사람은 하지만 현실에서는 만날 수 없다. 대신 그들을 창조한 <식객>의 허영만과 <미스터 초밥왕>의 데라사와 다이스케가 만났다. 데라사와 다이스케의 드라마와 애니메이션 상영전, 전시회가 열렸던 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2월 3일 토요일 오후 계단에서 아이들에게 싸인을 해주는 얼굴이 낯익다. 허영만. 한국만화의 대표선수, 충무로의 블루칩 원작자로 불리는 그는 데라사와 다이스케와의 대담을 위해 안국동 공보문화원을 찾아왔다.

1947년생 허영만과 1959년생 데라사와 다이스케는 띠동갑이다. 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의 청중들에 대한 고압적인 태도와 다소 미숙했던 진행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하지만 현해탄을 넘어 이어진 두 만화가의 따뜻한 애정이 담긴 대화들을 한마디라도 놓칠까봐 관객들의 눈빛은 두시간 가까이 초롱초롱 빛났다. 그 눈빛에 화답하듯 요리와 만화에 대한 두 남자의 열정 또한 끊이지 않고 흘러나왔다. 지면에는 미처 실지 못한 허영만과 데라사와 다이스케 대담의 풀 스토리를 공개한다.

-각자가 느낀 한·일 양국의 음식에 대한 인상은?

데라사와 다이스케 일본사람 입맛으로는 맵다는 인상이 아무래도 강하다. 일본사람들이 한국음식을 본격적으로 먹기 시작한 건 20여년 전부터다. 야끼니꾸(일본식 불고기)를 포함해도 30년. 그래서 아직은 익숙치 않고 접한 지 얼마 안되는 음식이라는 인상이 남아있다. 불고기, 부침개, 파전 같은 음식은 일본사람들에게 인기가 많다.

이제까지 먹은 것 중에는 낚지볶음이 가장 매웠다. 처음에는 매운 줄 모르고 먹었는데 먹다가 한참 후에 뒤통수를 맞은 듯한 느낌이 들고 머리 속에서부터 땀이 배어나오는 듯 했다. 한번은 남동생이 한국에 와서 식당에서 풋고추를 먹은 적이 있다. 동생도 여행을 많이 해서 매운 음식에는 자신있는 편인데 주인장이 매우니까 구워먹으라고 하더라. 동생이 괜찮다며 그냥 풋고추를 먹었는데, 잠시 후 얼굴 벌개지더니 밖으로 뛰쳐나갔다. 나중에 동생이 말하기를 ‘입에 불이 붙고 침으로 마구 찌르는 듯한 느낌이었다’고 하더라. 그걸 보고 나는 먹지 않았다. 아마 풋고추가 제일 매울 것 같다.(웃음)

허영만 일본에는 스무 번 정도 방문했다. 일본인 친구도 많고 일본 만화에 대한 관심 때문에 자주 가는 편이다. 유럽이나 미국에 비해서는 견딜만하고 괜찮은 음식들이 많다. 내 입맛이나 취향에도 맞다. 일본 음식은 한국과 달리 모양과 색깔을 중시한다. 자극적이진 않고 대체로 달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음식에 비하면 반찬 수는 적은데 음식마다 계란이 빠지는 경우가 드물더라. 같이 갔던 후배가 돌아와서는 ‘며칠 동안 계란은 질려서 못먹을 것 같다’고 말할 만큼 계란이 들어간 음식이 많았다.

생선회를 아주 좋아해서 한국에서도 많이 먹는데, 일본은 숙성시켜서 맛 위주로 먹는 듯하다. 우리는 활어를 좋아하고 씹는 맛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식사할 때도 일본은 개인상을 하나씩 내준다. 우리는 반찬 하나를 놓고 여러 사람이 같이 먹는 경우가 흔하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는 비위생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물김치 같은 음식은 숟가락이 몇번 들락거리면 이물질이 생기는 상황이 있다(웃음). 요즘은 그래서 물김치는 따로 나눠주고 국이나 탕도 개인별로 떠먹는 방식으로 변해가는 것 같다. 하지만 감정적으로는 정을 나누는 따뜻한 식문화라 할 수 있다.

밥을 먹는 방식도 일본과 중국은 공기를 들고 먹고 우리는 상 위에 올려놓은 채 먹는다. 그래서 그쪽에서는 한국사람들이 밥에다 절을 하며 식사한다며 사대사상이 농후해서 그렇다고 우스개소리를 하기도 한다. 우리 입장에서는 옛어른들이 ‘공기를 들고 먹는 건 예의에 어긋나고 상스럽다’고 타박하는 문화가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소한 부분에서도 이렇게 문화적 차이가 존재한다.

데라사와 다이스케 일본 가정요리와 식당요리의 차이 때문에 허선생님이 받은 인상이 생겨나는 듯하다. 일본 요리가 색상과 형태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경향은 분명히 있다. 그러나 가정요리에서는 그러한 경향을 찾아보기 어렵다.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서 문화적 차이를 찾는다면, 일본에서는 조림에 여러 가지 재료를 사용하더라도 하나의 맛으로 통일시키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재료 하나 하나의 맛을 느끼도록 만들지 못하면 제대로 된 요리가 아니라고 여기는 듯하다.

젓가락도 원래 한반도를 통해 들어왔다. 그런데 왜 숟가락은 전해지지 않았을까하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일본에는 젓가락만 있기 때문에 모든 음식을 집어먹는 일이 여의치 않다. 그래서 밥공기를 들고 먹는 식문화가 생겨났다. 또한 어려서부터 밥을 먹을 때, 몸을 구부려서는 안된다고 교육을 받는다. 한국요리에서는 국물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매우 뜨겁다. 일본 국물요리처럼 공기 채로 들고 마실 수 없다. 그래서 처음에는 어떻게 먹을까 고민했는데 숟가락를 사용하니까 편하게 먹을 수 있더라.

허영만 과거와는 달리 젊은 친구들은 밥먹는 방식에 대한 그러한 엄격한 태도나 간섭을 싫어한다. 과거에는 이를 쿵쿵 부딪히거나 짭짭 먹는 소리를 내는 것은 물론, 밥상머리에서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도 금기시되는 게 일반적이었다. <식객>의 독자들은 대여섯살의 어린이부터 6~70세의 노년층까지 폭넓게 존재해서 그러한 세대간의 태도 차이를 감안해서 조화하거나 충돌시키면서 그려가고 있다.

데라사와 다이스케 물론 요리만화를 그린다고 특별히 요리에 대한 시선이 바뀌지는 않는다. 요리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는 건 당연하다. 이를테면 고급요리와 자연 식재료 만으로 만드는 것이 과연 최고의 요리인지를 고민한다. 브로일러에서 닭을 키우는 문제만 해도 그런 범주다. 농가의 마당에 자연스럽게 뛰노는 닭이 브로일러에서 키우는 닭보다 더 맛있고 몸에 좋은 건 당연하다. 하지만 모두가 마당에서 키운 닭만 먹으려고 든다면 닭은 지구에서 멸종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저 혼자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식재료를 만드는 사람과 먹는 사람 혹은 소비자의 요구가 충돌하는 지점이다. 그러한 것들에 대해 고민해서 상황을 보여주거나 대안을 모색하려고 노력한다.

편의점 도시락을 생각해보자. 도시락을 일본에서 가장 좋은 고시쌀로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편의점 도시락은 유통기한을 넘기면 즉각 폐기처분된다. 무조건 좋은 재료로만 음식을 만드는 게 능사는 아니다. 현실적인 조건을 고민해야 한다.

한국에 오기 직전에 <식객>을 읽었다. 서울에 세번째 방문하는데 과거에는 한국과 일본이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에 <식객>을 읽으면서 어떤 부분이 다른 지를 실감했다. 음식과 음식 문화의 차이를 실감했다. 문화적 격차는 아시아라는 범주에서는 전체적으로 비슷할 수 있지만 요리를 통해서 느껴진 양국의 문화적 차이는 생생하게 느껴졌다.

-요리만화를 끌어가는 방식과 스타일은 어떻게 발굴했는 지 궁금합니다.

허영만 의식주 중에 식생활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먹지 않으면 당장 죽어야 하니까. 세계적으로 25%의 식재료가 과잉생산된다는 내용을 읽은 적이 있다. 아프리카에서는 기아 때문에 죽는 사람이 수백만명이다. 이러한 양극화 현상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따라서 제철 음식을 제 때만 먹으며 그런 맛을 기다리는 태도도 필요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만화가 <식객>이다. 인간이 태어나서 처음 맛보는 음식은 어머니의 젖이다. 그리고 평생 그 사람의 입맛을 지배하는 것도 어머니의 마음으로 만들어지는 어머니의 음식이다. 그렇다면 세상에 살아계신 어머니의 수 만큼 맛의 수도 존재하리라고 생각했다. 그 수많은 맛에서 공통분모를 찾아내는 것이 <식객>이 보여주고자 하는 음식의 세계일 것이다.

일단 만화는 흑백이기 때문에 색깔과 맛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없다는 약점을 안고 있다. 늘 함께 일하는 네 명의 문하생에게 매번 이야기를 한다. 칼싸움을 표현하려면 칼을 섬뜩하도록 그려야 하고, 전쟁만화에서는 무기를 실감나게 그려야 한다. 따라서 요리만화라면 음식을 잘 그려야 한다. 음식을 정확히 그리지 못하면 어떠한 것도 제대로 표현할 수 없다. 음식이 가진 맛을 사람의 삶으로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일은 극히 어렵다. 그래서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을 먼저 포착하고 그것에 음식의 맛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식객>을 만들었다.

일본에서는 요리만화가 주류 장르지만, 당시만 해도 한국에는 제대로 된 음식만화가 없었다. 그래서 <식객>은 7년을 준비하고 3년을 취재한 끝에 동아일보에 5년을 연재했다. 시작할 당시에는 앞으로 국내에서도 이러한 요리만화가 좀 더 폭넓게 나오기를 기대했다. 데라사와 선생의 <미스터 초밥왕>은 처음부터 끝까지 대결구도로 진행된다. 예전에는 대결구도 만화를 나도 즐겨 그렸는데, 나이가 들수록 다른 방식을 찾게 되더라. <식객>도 소고기 전쟁처럼 정부가 너무 많은 대목은 대결구도로 가져갔지만, 가급적이면 삶의 모습에 음식이 녹아드는 방식으로 그렸다.

데라사와 다이스케 <미스터 초밥왕>은 일본의 중·고등학생들이 즐길 수 있는 소년만화라는 기존의 존재하는 장르다. 소년만화에는 성장스토리가 강하게 부여된다. 주인공이 성장하고 경쟁하면서 어려움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이 이야기의 요체다. 그러한 틀에 스포츠, 연애, 요리 등 무엇이든 들어갈 수 있다. <미스터 초밥왕>은 그러한 소년 만화의 틀 안에 요리가 결합된 것이다. 요리가 들어가면 전형성을 벗어난 실감나는 캐릭터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일본의 옛 요리책에는 ‘먹는 음식을 보면 그 사람을 안다’는 말이 있다. 가난하더라도 하루에 한번은 레스토랑에서 공주님 같이 밥을 먹는 소녀, 매번 컵라면만 먹는 소년을 상상해보라.

요리만화는 일본만화잡지마다 보통 1~2개씩 연재되는 주류 만화 장르다. 그러나 요리에 대한 데이터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독자 입장에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싸보이거나 얄팍한 만화들이 나올 수 밖에 없는 구조가 있다. 무엇인가 그러한 요리만화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이브닝의 편집자가 먼저 내게 제안을 했다. 저는 원래 코미디나 개그를 즐기고 그런 부분에 강한 만화가인데 <미스터 초밥왕>을 만든 이후에는 감동이나 눈물 쪽의 만화가로 인식되는 듯하다.

게다가 요리에는 사람의 기억이 함께 담겨있다. <미스터 초밥왕>의 초밥은 일본사람에게는 축제라는 의미가 강한 음식이다. 만화에 나오듯이 평소 자주 먹는 음식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초밥은 특별한 일이 있을 때, 즉 축제 때 먹는다. 그래서 초밥은 사람들에게 굉장한 행복을 의미하는 음식이다.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이처럼 마음에 와닿는 이미지가 요리마다 존재한다. ‘혼났을 때 먹었던 밥은 눈물과 콧물이 섞여서 짰지만 정말 맛있었다’와 같은 특별한 인상이 담겨있다. 스토리와 인물로만 전달할 수 없는 의미가 그렇게 음식을 통해 독자에게 전달된다.

설마 초밥만을 소재로 이렇게 연재를 오래할 줄은 저도 몰랐다.(웃음) 초밥이 담고 있는 행복한 이미지를 그려내고 싶었다. 예를 들면, 집안사정으로 서로의 사랑을 이루지 못한 소년과 소녀가 있다고 가정하자. 고등학교 졸업시즌이 되고 소녀는 결혼을 해야 한다. 소년은 마음을 담은 초밥을 선물하며 그것을 평생의 추억으로 남긴다.

한편 초밥은 또한 형태적으로도 독특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밥 위에 얹는 생선을 일본말로 ‘기즈케’라고 한다. 기즈케와 초에 절인 밥은 양쪽 모두 많은 손질이 필요하다. 등푸른 생선은 냄새를 제거하기 위해 소금과 식초를 넣고 맛을 정리하는 과정이 요구된다. 각각 다른 생선들이 각각 다른 과정을 통해 초밥 재료가 되고, 만드는 사람 손에서 밥과 하나가 되어 마지막에 초밥이 탄생한다.

-<식객>에서도 회가 표현된 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회를 다룰 생각이 있으신 지요?

허영만 달짝지근하다는 말이 통역이 됩니까(웃음) 일본여행을 가도 꼭 어디가서 어떤 생선을 먹어야지하고 정하고 가는 편이다. <식객>에서는 아직 회를 표현하지 않았다. 빙어이야기는 한번 다뤘던 적이 있다. 고향이 전남 여수고, 어렸을 때부터 회를 워낙 좋아했기 때문에 앞으로는 분명히 심층적으로 다룰 생각이다. 우리가 어렸을 때 먹었던 회는 초고추장안 무채를 섞어 먹는 무침이 전부였다. 한국과 일본 사람들이 모두 좋아하는 도미 같은 생선의 속성이나 차이점 등을 감안해서 새로운 회에 대한 내용을 끌어낼까한다.

요즘 회 먹는 문화에 대해선 하나의 바람이 있다. 여수 출신의 고향친구도 심지어 그렇게 먹는데 보통 상추에 고추, 마늘 등 온갖 양념을 얹고 회를 고추장에 듬뿍 찍어올려 먹는다. 그건은 야채의 품내에다가 초장맛으로 먹는 것이지 회를 먹는 게 아니다. 가급적이면 본재료보다 강한 양념은 사양하고 원래 재료 맛으로 먹는 것이 좋을 듯 싶다. 도미 같이 고급회도 그렇게 먹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미스터 초밥왕>이나 <식객>은 상세한 정보로도 유명합니다. 어떻게 정보를 수집하시는 지 궁금합니다.

허영만 정보가 너무 많기 때문에 취재한 그대로를 모두 전달하기는 힘들다. 통상 수집한 음식에 관한 정보 중 3분의 1 정도만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만화가가 그린 음식 그림을 독자가 보고 먹고 싶을 정도로 보이도록 그리려면 다양한 정보가 필요하다. 주위 배경도 정확히 묘사되어야 한다. 평소 취재팀장과 함께 돌아다니며 상당히 사진을 많이 찍는 편이다. 찍은 사진을 컴퓨터로 보는 게 현상하는 것보다 더 느릴 정도로 많은 사진을 촬영한다. 찍은 사진은 모조리 현상해서 검토한 후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스토리를 위해서는 언제 어디서든 메모하는 습관이 있다. 하고나서 그 메모가 어디 있는 지 몰라도 메모를 하지 않은 것보다는 낫다.

데라사와 다이스케 아무래도 정보가 많이 필요하다. 만화는 리얼리티를 위해 다각도의 표현이 요구되고, 그것을 위해 정보수집은 반드시 필요하다. <미스터 초밥왕>, <미스터 맛짱>을 그리기 시작할 무렵에는 정보를 많이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매주 금요일에 편집자와 만화가 모두가 모여 그것을 고민했다. 바른 정보가 없다면 올바른 만화도 나올 수 없다. 칼을 잘 못 쓰는 사람이 아무리 칼질을 해봐야 생선이나 초밥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가 전달되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그래서 초밥집에 가서 초밥을 만드는 사람을 관찰하는 일이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다. 모르는 것을 보고 느끼기 위해서였다. 400여번 초밥집을 방문했다. 그러다보니 시간이 제법 지난 후에는 그들에게 ‘다른 날과 다르게 왜 생선에 칼을 그렇게 넣었나요?’라고 묻는 순간이 생겨났다. 이 방법에도 난점은 존재했다. 계절에 맞는 신선한 국산 생선을 쓰는 건 그렇고 좋은 가게에서도 거의 1년에 한번 정도였다. 결국 각각의 생선은 10년을 그 초밥집을 매일 방문해도 열번 밖에 맛볼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맛있는 초밥집이 어디인지를 수소문했다. 덧붙여 살아있는 생선을 찾아 바닷가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묻기도 하고 식재료를 다루는 사람에게도 의견을 구한다. 마감 때문에 현실적으로 매일 가는 일이 어렵지만 빼먹어선 안 된다. 도저히 가야할 수 없는 상황에는 다른 사람에게 정보수집을 부탁한다. 책이나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구하는 일도 드물지만 있었다. 직접 가야하는 이유는 기존의 자료가 있더라도 책이나 남이 전하는 말에 존재하는 않는 정보나 사실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스터 초밥왕>에 한국 에피소드가 있나요?

데라사와 다이스케 신라호텔에서 미스터 초밥왕 축제를 개최한 적이 있다. 그 때 여러모로 도움을 받아서 한국의 재료를 사용한 만화를 그리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다시 한국을 방문해 취재를 시작했다. 그런데 한국에서 먹는 특별한 스시가 없다는 것을 알고 약간은 당황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회전초밥집에 들렀는데 기묘한 붉은 생선 초밥을 발견했다. 알고보니 개불이라는 해산물이었다. 부산에서 많이 먹는 음식이라고 해서 그날 밤 심야열차를 타고 부산으로 갔다.

청중 분들은 실제로 개불을 본 적이 있나요? 저는 처음 발견했을 때 수조 안에서 정말 무슨 벌레처럼 생긴 것이 움직여서 놀랬다. 그런 모양의 해산물이라고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마치 SF만화나 영화에 나오는 형상이었다.

-두 분 모두 자신의 원작만화가 드라마, 애니메이션, 영화화된 사례가 많습니다. 그 과정에서 어떻게 참여하시나요?

허영만 만화를 드라마로 옮기는 작업을 드라마를 만화로 만드는 것보다 사람들이 훨씬 어려워하는 것 같다. 요즘은 그 간격이 많이 좁아진 듯하다. 이러한 작업들은 대체로 결과를 예상하기가 조심스럽다. 옛날에는 충무로에서 어깨너머로 영화를 배운 사람이 많았는데 요즘은 제대로 공부한 분들이 많아진 것 같아 상대적으로 안심이 된다.

원작을 넘겨줄 때 그 회사의 연혁이나 작품을 꼼꼼히 살펴본다. 하지만 일단 넘긴 뒤에는 연출자에게 완전히 맡긴다. 영화를 만드는 전문가에게 일임하는 게 당연하다. 만화 그리는 사람이 원작자라고 이래라 저래라 하면서 나서면 배가 산으로 갈 수 있기 때문에 완전히 맡기고 뒤통수만 쳐다보고 있다.(웃음)

예전에 내 만화 중 하나를 영화화한 작품을 시사 하기 전에 필름으로 본 적이 있다. 저도 영화를 매우 많이 보는 편이다. 내가 보기에도 여기저기에 허점이 많이 드러나더라. 그런데 시사회를 가서는 감독에게 한마디 하려다가 그러지 못했다. 영화를 만든 스탭들이 스무명 가까이 감독과 함께 서 있더라. 감독님이 그들 중에 우두머리인인데 제가 그렇게 말할 수는 없더라. 또 괜히 잘못 이야기했다가 20명이나 있는데 맞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웃음) 남녀 간에 애를 낳아도 아이의 품성이 떨어진다고 해도 누구를 탓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영화를 제작하는 사람들도 만들 때 손해보려고 만들지는 않는다. 따라서 그 사람들의 작업을 믿어줘야 한다. 저하고 구조가 다른 사람들이 저와 같은 방식으로만 생각할 수는 없다. 그 분들은 그 분들 대로의 선택 방식이 있다.

데라사와 다이스케 처음에 제 만화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이나 드라마를 봤을 때는 정말 기뻤다. 그런데 갈수록 흥미를 잃었다. 개인적으로 만화라는 매체가 제 자신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듯하다. 드라마는 특히 원작 만화와의 차이점이 현저히 드러난다. 캐릭터나 역할이 원작과 다르지만 제가 컨트롤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그런 경우는 드라마를 만드는 다른 사람과의 역학 관계가 있기 때문에 쉽게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드라마 <절대미각 식탐정>도 시청자로써는 재밌게 봤지만 의아한 점도 있었다. 담담하고 쿨하게 표현된 캐릭터가 있더라. 그래서 내가 저런 캐릭터를 표현했나 싶었더니 알고보니 드라마 연출자가 자기 생각대로 삽입한 인물이었다. 만화의 캐릭터가 각색, 연출자, 배우를 거치면서 처음에 제가 의도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캐릭터로 변하는 경우가 흔하다. 애니메이션화된 제 작품도 시청자로서 재밌다는 정도인 것 같다.

-두분께서는 공통점도 많으시고 각자에게 궁금한 부분도 있으실 듯 합니다. 질문이 있으시다면?

허영만 일단 초밥 하나로 그렇게 장기간 연재하셨다는 것에 대해 경의를 표한다. 나도 처음에는 <식객>을 김치로만 이야기를 끌고 나가려 했는데 그걸로 모자라서 다른 음식은 물론 결과적으로는 음료, 술까지 다루게 됐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음식점에서 젓가락도 댈 수 없을 정도로 단맛이 나는 음식을 자주 경험한다. 그런 경우에 집에 가서 밥을 다시 먹으며 식구들에게 환영받지 못할 행동을 한다.(웃음)

한국이나 일본 뿐만 아니라 세계의 식탁은 거의 단맛에 점령당한 상황이다. 한국 음식도 1960년대 아지노모도를 필두로 화학조미료가 유입되면서 그렇게 된 경향이 있는데 일본음식은 언제부터 그렇게 단맛이 강해졌는 지 궁금하다. 또한 일본은 화학조미료에 어떤 영향을 받았는 지 궁금하다.

데라사와 다이스케 일본요리가 달다는 말씀인 것 같다. 생선을 찍어먹는 장이 그냥 간장이 아니라 다시국물(육수)를 내서 만든 것이다. 초밥을 달게 맛보기 위해 그렇게 만든다. 물론 제가 먹는 식당에서는 도미를 먹을 때는 소금을 뿌려먹는 게 좋다고 말하기도 한다. 지금 일본사람들은 달게 먹는 것을 맛있다고 생각한다. 한때는 일본의 화학조미료가 미치는 영향이 컸지만 현재는 좋은 재료와 화학조미료를 거의 쓰지 않은 음식을 찾는 경향으로 돌아오는 상황인 듯하다.

이상적인 방법은 좋은 재료를 값싸게 사서 매일 정성스럽게 국물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러나, 직장에 다니는 여성이 매일 국물을 만드는 것은 무리다. 음식 전부에 화학조미료로 사용하는 건 문제겠지만 일부 도움받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다. 무엇을 어느 정도로 어떻게 사용하는가하는 문제가 관건이라 생각한다.

-데라사와 선생은 초밥을 직접 만든 적이 있으신가요? 두 분이 좋아하는 음식도 궁금합니다.

데라사와 다이스케 초밥을 직접 만든 적은 없다. 일본에서도 초밥을 어머니들이 집에서 만드는 경우도 간혹 있지만, 프로가 만드는 것을 감안하면 초밥은 밖에서 먹는 게 좋다. 가정에서 초밥을 만드는 건 식탁의 변화를 주기 위해서지만 프로와는 비교가 안 된다. 초밥은 한번 눌러주면 끝나는 음식인데, 집에서 만들면 실력이 부족해서 일곱 여덟 번씩 누르게 된다. 절대로 같은 맛이 나오지 않는다.

저는 스무살까지 날생선을 먹지 못했다. 초밥 중에도 관서지방의 오시스시(초로 맛을 내고 숙성된 회를 위에서 눌러주는 틀로 만든 초밥)를 좋아한다. 그래서 아나고 초밥이나 김밥은 굉장히 익숙하다. 참치대뱃살을 구운 스테이크 초밥도 좋아한다. 역시 어릴 때부터 먹는 취향은 잘 바뀌지 않는다. 취재를 다니면서 모양새가 신기한 초밥은 많이 봤는데 군함말이를 하고 조그만 오징어가 살아움직이는 초밥은 먹지 못하기도 했다.

허영만 전어를 제일 좋아한다. 일단 싸다. 우리가 어렸을 때 무우채를 썰어넣고 전어회에 초장을 넣고 밥에 비벼먹는 걸 좋아했다. 상당히 엽기적일 수 있는데 어렸을 때 먹었기 때문에 아직도 그 맛을 잊을 수 없다. 소금을 뿌려 전어를 구워먹는 것도 좋아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5000원만 주면 삽으로 들통에 한삽을 퍼 줬는데, 요즘은 1킬로그램에 3만원이나 하더라. 여수에 사는 여동생은 ‘여수 사람들이나 맘껏 먹게 놔둘 것이지 서울 사람들까지 전어맛을 알게 해서 비싸졌다’고 최근에 원망하기도 했다. (웃음)

-한일 양국 만화, 혹은 허영만 선생과 데라사와 선생의 작품 간의 다른 점이 있다면?

데라사와 다이스케 <식객>은 굉장히 묵직하고 작가의 주제의식이 강하게 느껴진다. 저는 소년만화의 틀에서 요리만화를 다뤘기 때문에 작은 기쁨이나 행복을 그려내는데 집중했다. 저는 그렇게 굵직한 목소리로 발언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고, 제 만화도 그러한 측면은 거의 없다. 그래서 <식객>이 만들어내는 음식의 세계는 굉장히 근사하고 멋지다.

세밀한 모티브, 그리고 작은 동작, 아줌마들의 대화 같은 요소들이 <식객>을 읽으면서 이런 것이 일본과 다른 한국문화라고 느꼈고 재밌게 읽었다.

허영만 일단 차이점은 책을 반대로 넘긴다(웃음). 아쉬운 이야기지만 우리 만화가 시작된 것이 일제강점기 말쯤이다. 가까운 40대 만화가 후배 중에 예전에는 <바벨 2세>가 한국만화였다고 믿었던 친구가 있을 정도다. 그래서 한국과 일본 사이에 크게 만화적 경향의 차이는 미미하다고 생각하고 아직도 그 영향은 계속된다고 본다.

<식객>을 시작하면서 <맛의 달인>, <미스터 초밥왕>같은 만화의 아류가 되지 않을까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러던 중 어느 대학교수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그 분이 일본에서 권투만화를 처음 그렸다고 모든 권투만화가 일본권투만화의 아류인가라고 격려하더라. 테마는 비슷해도 주된 소재인 음식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조언을 해줘서 용기를 얻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음식을 다루는 점도 그렇다. 처음 대결구도를 몇번 다뤘을 때 아류라는 논쟁도 나오면서 상당히 독자분들이 경계의 눈초리로 보셨는데 2,3편이 넘어가면서 허영만식의 요리만화라고 인정해주셨다.

저는 컴맹이다. 저는 그래서 연재 관련 게시판 같은 건 절대 보지 않는다. “작은 논쟁에 큰 흐름이 흔들린다”는 말이 있다. 작은 일이라도 스토리에 예민해 있을 때는 영향을 받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가끔 문하생들이 도움이 될만하거나 중요한 일일 때만 가끔 보여주는 경우는 있다.

각자의 개성과 화풍이 다르기 때문에 일본만화를 한마디로 규정할 수도 없다. 데라사와 선생에게 궁금한 것이 있다. 한 가지만 그렇게 오래 그리고 있으면 거기서 탈출해보고 싶은 생각이 생긴다. 음식 말고 다른 소재는 사장시켜야 하는 상황이 자주 벌어질 텐데. 다른 장르로 도망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는지 궁금하다.

데라사와 다이스케 몇번 도전해봤다. 하지만 완전히 망했다(웃음). 미스터 맛짱과 미스터 초밥왕 사이에 몇번 시도를 했다. 네권짜리 단행본도 내보고 했지만 결국 독자들이 저에게 원하는 것은 요리에 관한 만화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요리를 기반으로 다른 요소를 더하는 방식을 고민했다. <절대미각 식탐정>에서는 추리 요소를 더했다. 그래서, 유머를 비롯해 여러가지 재밌는 요소가 가미되서 즐겁게 그렸다. 이러한 요소를 준비해서 다른 장르에도 도전해보고 싶다. 허영만 선생님처럼.

-<미스터 초밥왕>의 쇼타, <식객>의 성찬은 두 분과 얼마나 닮은 캐릭터인가요?

데라사와 다이스케 작가가 그려내는 인물은 그 작가의 마음 속에 있는 인물 밖에 표현을 못할 것이다. 타인의 캐릭터를 이해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매일 똑같은 인물만 그려야겠죠. 그래서 어떤 모델이 되는 인물. 친구건 주변인물을 그대로 그려서도 안 된다. 내가 그런 입장이라면 어떻게 할까를 이해하고 캐릭터화해야 한다. 주인공과 작가 사이에는 비슷한 점도 있고, 차이점도 있을 듯하다.

저는 쇼타처럼 성실하지도 탐정처럼 여유있고 낙천적이지도 못하다. 한 사람의 인물에는 여러가지 성격이 있다. 만화에서 인물을 창조할 때는 그 중에서는 어떤 한 측면을 강조해서 만들어내는 것이다.

허영만 이야기는 결국 자신의 성격에서 출발할 것이다. 창작만 고려하면 상당히 변덕스러워야 더 좋을 것 같다. 실제 생활은 굉장히 불편하겠지만. 사실 나는 성격이 굉장히 급하다. 성찬은 유순하고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인물이다. 독자가 이런 나를 보면 그리는 인물과 너무 동떨어졌다고 비난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주인공과 작가의 성격이 같다면 지금까지 그린 만화들의 캐릭터가 너무 비슷해서 일찌감치 만화가의 수명이 끊어졌을 것이다. (웃음) 그리고 나는 성찬처럼 음식을 잘 만들지 못한다. 먹는 일 전문이다. (웃음)

-좋은 요리나 음식 문화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허영만 요리는 맛도 중요하지만, 그 뒤에는 정성이 있어야 한다. 물론 정성이 들어가도 맛이 없으면 정성이 묻히기도 한다. 총각 때 하숙집을 오랫동안 전전했다. 매우 자주 옮겼는데 대부분 음식 때문이었다. 한번은 집주인이 충청도 분이었는데, 굉장히 정성스럽게 요리를 했다. 그런데 맛이 너무 없었다. 결국 보름 만에 그 집을 나왔다. 정성이 필요하지만 맛으로 직결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정성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요즘 햄버거 하나를 만들려고 소를 키우는 과정에서 남미의 삼림을 훼손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먹는 게 아닌가하고 생각한다. 좀 더 적게 먹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잘못하면 전지구가 쓰레기로 뒤덮일 지 모른다는 공포에 시달리면서 만화를 그리고 있다.

데라사와 다이스케 맛있다고 다 좋은 요리가 아니다. <절대미각 식탐정>의 에피소드에 몸이 일주일 내내 붓는 음식이 나온다. 그런데 그 음식은 사실 저에게는 맞지 않았지만 다수의 사람들은 맛있다고 말했던 요리다. 너무 맛있는 건 나쁠 수도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최고의 쇠고기를 사서 최고의 국물을 내면 어느 정도 맛은 내지만 그게 모든 상황에 맞는 요리인지는 생각해봐야 한다.

그 사람의 인생, 가치관이 먹는 행위에 나타난다. 다시 말해 먹는 것은 인격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맛있는 걸 먹는다는 게 전부가 아니라 같이 먹는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세계적인 식량위기 같은 것을 생각하면 음식을 만들고 먹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고 평소 우리의 도시락이 남는다고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던져주면 된다는 도식적인 발상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보다 심각하게 여러 관점에서 생각해 볼 문제다.

- 두 분은 대학에서 무엇을 전공해서 만화가가 되셨나요?

허영만 여러분들 가정에서도 자녀분들을 지켜보면 한동안 만화를 열심히 그리는 시기가 있다. 어느 학부형이 내게 면담을 하며 ‘우리애는 만화가로 꼭 키우고 싶다’고 말하면 몇학년이냐고 묻는다. 중학교 일학년이라고 말한다. 그러면 저는 조금 더 지켜보라고 나중에 달라질 것이라고 조언을 한다. 저도 중고등학교 때는 만화를 열심히 그렸고 나중에는 서양화 공부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김영삼 대통령은 부친께서 멸치 사업을 잘하셔서 대통령에 이르렀지만 우리집은 멸치 사업을 망해서 대학을 못 갔다.(웃음) 그래서 바로 만화의 길로 들어섰다.

데라사와 다이스케 대학에서는 문학을 전공했다. 졸업한 후 일반회사에 취직을 했다. 만화는 물론 그렸지만 대학졸업시까지 만화가가 되겠다거나 미술공부를 한 적은 없었다. 취직을 해서 회사를 다닐 때 만원전철에 시달리기 싫었다. 굉장히 창피한 동기인데 일러스트나 만화로 먹고 살겠다고 가볍게 생각했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없이 그렸다. 미술해부학을 공부를 했더니 근육의 움직임을 표현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그 이후에는 저에게 도움이 되는 미술은 공부를 하는 편이다. 꼭 미대를 나온다고 만화를 잘 그리는 것은 아니다. 만화를 잘 그리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구조를 발견할 때까지 그리는 게 좋다. 만화를 좋아하기 때문에 무작정 많이 그려서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