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나에겐 한 가지 미신이 있었다. 중간 혹은 기말고사 기간에는 바닥에 누워 자면 안 되고, 잠을 자더라도 의자에 앉은 채로, 엎드려 자야만 한다는 것이 그것이었다. 아마도 당시, 성철 스님이 입적하시면서 세상에 회자되던 수행방식, ‘장좌불와(長坐不臥)’에서 영감을 받고 생각해낸 미신이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랬는지, 무슨 효과가 있었는지 증명된 바도 없지만, 당시의 나에게 그것은 중요한 문제였다. 몸이 고되긴 했지만, 그렇게 해야 마음이 편했다.
부산국제영화제에 있어서도 나에겐 떨쳐내기 어려운 미신 하나가 있다. 1회 때 참석하고, 이번이 두 번째 이긴 하지만 10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고, 난 하루에 영화를 꼭 4편씩 봐야만 한다. 물론 아이디카드가 있어 가능한 일이겠지만, 어쨌거나 나는 몸과 눈을 혹사시켜가며 꼬박꼬박 하루에 4편 씩의 영화를 보아오고 있다. 왜 그래야만 하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그래야 맘이 편하다. 많은 영화를 볼 수 있어 좋긴 하지만, 사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장점보단 단점이 더 많다. 영화를 다 음미하기도 전에 다른 영화를 봐야하고, 그러다보면 각 영화의 주인공들이 섞이고, 사건도 섞인다. <관타나모로 가는 길>에 아일랜드 독립군들이 등장하고,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에 탈레반이 등장하는 등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하곤 한다. 나도 이 미신을 그만두고 싶지만, 몸이 먼저 기억하고 있는 이 미신을 어찌 떨쳐버릴 수 있단 말인가..!